‘시 배우며 삶의 재미 찾은 칠곡의 할머니들’ 영화 “칠곡 가시나들”, 문학인 대상으로 한 특별 시사회 성황리에 마쳐
‘시 배우며 삶의 재미 찾은 칠곡의 할머니들’ 영화 “칠곡 가시나들”, 문학인 대상으로 한 특별 시사회 성황리에 마쳐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2.2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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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칠곡 가시나들" 포스터.
영화 "칠곡 가시나들" 포스터.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8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에 앞서 특별한 시사회가 열렸다. 영상보다 활자가 더 익숙할 것 같은 문학인들이 모여 앉아 칠곡 할머니들이 시를 배워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를 관람한 것이다. 이번 시사회에는 김훈 소설가와 송경동 시인 등의 문학인과 영화 속 할머니들처럼 늦은 나이에 야학에서 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이 함께했다.

언어를 통해 타인과 접촉하는 일이 생업인 문학인들과 한 번도 글을 배우지 못한, 혹은 이제 막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은 그 사이가 대단히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스크린 속 할머니들이 농담을 던지면 객석에서는 문학인과 어르신 구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들이 시를 배우며 일상에서 발견한 순간들이 그들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들은 일기에 가까운 형태로 시를 쓰고 그것을 낭독한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경상북도에 위치한 칠곡군 복성리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늘배움학교’에 다니며 시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은 노년에 와서야 학교에 다니고 시를 배울 수 있었다. 할머니들은 글을 익히고 시를 쓰는 등의 경험을 통해 이전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을 체험한다. 박금분 할머니는 나서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시가 천지삐까리다”라는 시를 쓰기도 한다. 시를 배우고 써보기 전까지는 생각조차 못 했던 일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을 억압과 폭력의 시대를 거쳐왔으나 할머니들의 ‘시’에는 구김살이 없다. 영화를 관람한 김훈 소설가는 문학인 대표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김훈 소설가는 할머니들이 “한국전쟁을 겪고 말할 수 없는 억압과 남녀차별을 받은 세대”라며, 칠곡은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방어전투라는 참사를 직접 겪은 곳인 데다 당시는 남녀차별이 매우 심했던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영화 속 할머니들의 밝은 모습에 놀라움을 표하며 “과거의 기억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발랄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았다.”는 감상을 전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훈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훈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영화를 제작한 김재환 감독은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이 모두 30년대에 태어난 분들로 “여성이라는 존재가 차별받던 엄혹한 시기”를 견뎌낸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결혼을 한 이후 시댁에서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쳐서 뭐하냐. 친정에 시댁 흉보는 편지나 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독은 그런 차원에서 영화 제목인 “칠곡 가시나들”은 “그래, 우리가 칠곡 가시나들이다 어쩔래!”라며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마음으로 정한 것이라 밝혔다.

- 김재환 감독, 시를 앎으로써 풍부해지는 할머니들의 삶 다루고 싶었다

김재환 감독은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통해 시를 알게 된 할머니들의 삶이 어떻게 풍족해지는지를 다루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노인에 대해서는 죽음에 사로잡힌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김재환 감독은 “과연 그것밖에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촬영에 임했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시를 배워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보는 단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이 본 것들을 표현해가는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김재환 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재환 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재환 감독은 할머니들의 설렘을 영화로 만들었다며 “이 영화는 예를 들면 쉘 위 댄스의 칠곡 할머니들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할머니들이 쓴 시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사랑이라고 말하려니 부끄럽다’, ‘어릴 때 가수했으면 좋았겠다’는 솔직한 감정이 담겨있어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김재환 감독은 시가 할머니들 삶의 지평을 더 넓게 해준다고 이야기했다. 시를 쓰는 작업이 다른 시선을 갖게끔 돕는다는 것이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

한 할머니는 영화에서 글을 배우며 우체국이라는 공간에 처음 들어와 봤다고 이야기한다. 긴 삶에서 단 한 번 들어가 볼 엄두조차 못 냈던 공간이다. 그러나 시를 앎으로써 편지를 쓸 일이 생기고, 우체국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가 볼 계기를 얻게 된다. 김재환 감독은 지금은 “글을 안다는 것이 누구나 당연히 어릴 때부터 거쳐 가는 과정”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시사회는 우리가 이전 세대와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전 세대 할머니들이 ‘배움’의 과정을 거치며 삶이 어떻게 넓어지는지를 보여준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관람하며 그들의 삶을 직접 확인해보자. 그들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