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시] 2. 영원과 하루 - 육호수 시인
[3.1절 100주년 기념시] 2. 영원과 하루 - 육호수 시인
  • 육호수 시인
  • 승인 2019.03.0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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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세 명의 시인에게 3.1 운동 기념 시를 청탁하였습니다. 세 명의 시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3.1 운동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이하는 육호수 시인의 시 ‘영원과 하루’입니다.

육호수 시인의 시 '영원과 하루'.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육호수 시인의 시 '영원과 하루'.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영원과 하루 


천사 K는 말을 헤맸다  

천사 K에겐 겨자씨만 한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콩알만 한 의심이 있었다고 한다. 암실 속에서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콩나물들이 있었다고  

 콩나물이 뿌리를 박은 궁지, 어둠보다 단단한 어둠. 콩나물이 갈증으로 더듬어 감각하는 반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엎드려 천사 K는   

어둠과, 어둠의 어둠을 구분해내야…  
했다고  
말을 헤맸다   
   
신의 아침상에 오를 콩나물 머리를 따기 위해  

콩나물 줄기와 콩나물 머리를 
어둠과 어둠의 티눈을    
백치가 되어 백치인양  
골라내던 천사 K가 

영원의 턱밑까지 참아온 수도를 멈추고  
어둠의 가장 먼 곳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앙상해진 두 손을  
햇고사리처럼 오므리며  
바닥에 쌓인 콩나물들을 마구 밟다  
넘어져 
어둠 속의 고라니 같은 절규를  
내지르고  
다시  
소용없는 영원  
즈음이 지났을 때  

나는 천사 K에게 들려온 첫 번째 메아리라고 한다  

나는  
좁쌀만 한 의심을 잊으려 시작된 침묵 속에서  
머리를 든 콩나물 머리 하나  
어둠의 울혈에 뿌리를 박고 
빼곡히 불어나는 콩나물머리들  

당신의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달라고 
천사 K의 귀에 대고 기도를 전하면  
이곳에서 당신의 음성 말고는 지킬 것이 없다고  
천사 K를 통해 응답이 왔다  

만 년의 미래를 향해 뻗은 오른팔과  
백년의 과거를 향해 뻗은 왼팔이 나란했다  

비명과 메아리가  
영원과 하루가 나란했다  

기도가 묵음으로 수렴하는 궁지에서  
가장 눈 밝은 천사 K가 나를 지켰다 

 


육호수 시인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출간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기록사진 위로 떨어지는 것, 기혁 시인>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헌시, 하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