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우정아, 「주인공의 노래」
(8) 선우정아, 「주인공의 노래」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6.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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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나타나 날 비웃어도

쉽게 무릎 꿇지 않으리

Cause I`m the hero of my life

내가 믿은 선택이

항상 옳지 않다고 해도

절대 날 미워하지 않으리

-선우정아, 『주인공의 노래』

며칠새 좀 아팠다. 아픔과 동시에 무력감이 찾아왔다. 무력감의 정체를 찾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 무력감이 앉았다 간 자리에 내가 그대로 앉아있는 기분이다. 내가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었다. 아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었다. 수많은 침묵 속에서도 봄은 오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아무것도 이룬 일이 없었다. 시가 이루어지지도, 산문이 이뤄지지도 않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 많은 것을 들었으나,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김수영은 그 방에서 나오며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고 노래했다. 나는 그 노래에 가닿기도 전에 행복을 미리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나를 옥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프루스트는 ‘콩브레’의 첫 100페이지를 쓰기 직전까지 자신이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야만 했다. 그에게 절망과 무력감은 다르지 않았다. 이상도 그랬고, 이탈로 칼비노도 그랬다. 이상에겐 자신이 글을 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칼비노에겐 자신의 문체가 더이상 세상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절망의 위치와 무력감의 위치는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침내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이었다. 무력감의 정체가 절망이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절망의 파동이 무력감의 무게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어두운 숲을 지나갈 수 있다.

나는 온전히 고민했나? 나는 내가 온전히 고민할 시간에 잤고, 놀았고, 쓸데없이 살았다. 한 줄의 글을 쓰지 못해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취해 나 자신을 유기했다. 무력감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내가 나를 잡아먹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해줄 말이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날 일으켜세운다. 내가 한 짓거리가 무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때서야 글이 나오고, 쓸 생각이 나온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지.

선우정아의 노래들은 일견 속물성에 대한 자조로도 읽힌다. 나도 좀 날아보자며 외치는「뱁새」의 가사나, 「알 수 없는 작곡가」의 한탄들은 그런 의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그녀 또한 절망과 무력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 발버둥의 첫머리에, 바로 저 노래가 있다. 템포를 늦추며 차분하게 침착하게 걷는다. 그렇게 현현(顯現)한다.

나는 다시 나의 무력감을 나의 절망 쪽에 좀 더 밀어넣기로 했다. 간결하게 간절해지기로 했다. 거기서 말은 시작되고, 꽃은 피리라. 거저 얹은 평화, 거저 얹은 절망 쪽으로 내가 순순히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숲은 아직 멀다. 증오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꾸준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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