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훤 시인, 이방인의 감정 풀어낸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출간
[인터뷰] 이훤 시인, 이방인의 감정 풀어낸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출간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3.05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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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2017년 기준 재외동포의 수는 약 743만 명으로, 매년 마다 수만 명 이상이 이민의 길을 떠나고 있다. 거주하는 국가를 바꾸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학업, 가정, 직장 등을 이유로 한국을 떠나고 있지만, 이민한 국가에서 항상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종과 문화, 언어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일부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민한 국가와 고국 사이에서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이훤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사진 = 육준수 기자
이훤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사진 = 육준수 기자

18년 11월 출판사 시인동네에서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를 출간한 이훤 시인은 스스로가 두 나라 모두에 속하면서 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고국을 떠나온 지 10년이 넘었기에 언어로 불편함을 겪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은 마음을 붙이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훤 시인은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공항에서 문득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던 모국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도 없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함께 웃거나 울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모국어로 쓰인 책을 펼치는 순간 등 “작고 왠지 당연히 가능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무력감과 정서적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는 모국과 거주국 어디에나 속하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이민자의 심리가 들어가 있다. 뉴스페이퍼에서는 이훤 시인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시인의 삶과 이방인으로서의 정서, 한국어로 시를 쓰는 의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Q.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해외에 나가셨나요? 또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A. 미국엔 열아홉의 나이로 왔어요. 가족은 남고 혼자 건너왔어요. 메사추세츠 주의 엠허스트라는 작은 타운으로 먼저 갔어요. 입시 제도가 숨 막힌다고 생각했어요. 왜 공부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그것을 어디에서나 강요당하고 어딜 가도 그게 전부인 듯 대하는 삶에 회의감을 느꼈어요. 오래 고민하다 엠허스트로 갔어요. 부모님 아시는 분 댁의 지하 방에서 홈스테이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조지아 주는 대학 때문에 왔어요.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석사 과정 중 쓰는 일이 하고 싶어 휴학하고 습작하면서 문화월간지 에디터로 서너 해 일했어요. 현재는 조지아공대 우주항공학과에서 데이터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Q.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에 수록된 시에는 한국과 거주국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한 심리가 드러난 듯합니다. 작가님에게 ‘한국’이 어떤 공간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아버지께서 학위 때문에 미시건에 계실 때 어머니와 긴 시간 머무셨는데 그때 제가 태어나면서 얼떨결에 이곳 국적을 갖게 됐어요. 제가 세 살 될 즈음 마치고 귀국하셨어요. 후로 주욱 한국에 머물다가 열아홉이 되던 해에 혼자 미국으로 다시 왔고요. 언어도 문화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였어요. 

처음 왔을 땐 소속되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영어도 짧았고. 마음을 언어로 옮기지 못하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음식은 괜찮았지만 내밀한 대화를 하지 못해 속상했고 문화도 생소했어요. 작은 동네여서 인종차별도 있었어요. 이전보다 낫지만 동양인은 지금도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이에요. 사람을 대할 때 그런 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죠. 대개 무의식적인 행동들이고 가끔 의도적이지만요. 공개적인 적대감은 드물어졌지만 모종의 거리감이 있어요. 거주하는 대부분이 느껴본 적 있는 표정이나 말투 같은 작은 것부터 인식 정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태도 같은 거요. 

잘 스며들지 못한 건 아니에요. 더 이상 언어가 불편하거나 적응을 해야 하지 않죠. 표면적으론 잘 적응한 편이에요. 귀한 직장에 소속돼 가까운 사람들과 아무 일 없는 듯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야 할 것 같은 환경에서요. 한동안은 그랬어요. 잡지사 일을 그만두고 시작한 데이터 분석 일도 좋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일 때까지 이곳이 나의 첫 번째 집이고 한국이 떠나온 집이라 생각하며 지냈어요. 

자연스레 한국은 일이 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두 번째 집이 되었는데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마음이 찾아왔어요. 집 같이 편했던 공항에서요.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던 모국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도 없는 거예요. 그게 한 번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공항 한복판에서 갑자기 이상하더라고요. 멀리 있다고 체감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아무렇지 않던 사람은 이후로 공항에만 가면 이상한 기분에 입장해요. 이곳이 집이 되었다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하면서 슬픈 마음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미국으로 온 지 거의 십년 만에 찾아온 슬픔이죠. 

Q. 모국에 대해 많은 그리움이나 소속감을 느끼는 편이신지요? 

A. 그리움 같은 단어는 끊임없이 길어졌다 짧아지는 이런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어요. 하나의 단어일 뿐이죠. 편의를 위해 그립다는 말로 축약해 이야기하면 한때 간편했던 일들이 반복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순간 모국이 가장 그리워요. 가장 당연한 일들 있잖아요. 서점을 가고 모국어로 쓰인 책을 펼치거나 책 모서리를 만지고 품에 담아 구매하는, 사람들과 갑자기 만나기로 약속하는, 그들의 기쁨과 비명에 동참하는, 같이 웃는, 같이 우는, 배달 음식이 먹고 싶으면 아무렇지 않게 전화로 배달할 수 있는, 그런 작고 왠지 당연히 가능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을 때, 쓸쓸함을 느껴요. 허한 마음에 가까운 그런 마음이에요. 정서적인 허기 비슷한 것 같아요.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에는 이방인의 정서가 느껴지는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시 ‘이민자’에서는 시인이 말한 ‘집이 되었다는 현실’의 정황이 드러난다. 이민자인 화자는 “모국에 있는 서점과 밥집과 과일 가게들”을 떠올리고는 집이었던 모국과 집이 되어버린 이민국의 간격을 떠올려본다.  

바깥이 돼버린 모국과 
모국의 국기와 
그 가장자리 

주목된 적 없는 세 줄의 독백을 생각한다. 어느새  
집이 돼버린 곳에서 

집에 대해 생각한다. 소화 안 된 언어들이 뒤섞인 채로 쏟아지고 

- 이훤, ‘이민자’,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22p

이훤 시인. 사진 제공 = 이훤 시인
이훤 시인. 사진 제공 = 이훤 시인

Q. 시집에는 이방인의 정서가 느껴지는 시가 다수 수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 ‘이민자’에서 화자는 “바깥이 돼버린 모국과/모국의 국기와/그 가장자리”라고 모국을 생각합니다. 이민자가 모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모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감정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스스로가 이방인이라고 자각하고, 그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는 사람의 감정과 견주기에는, 모국에 살아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 방문하는 것과 사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사는 건 맘을 붙이고 사람을 입장하고 퇴장하고 다치고 일어나고 장 보고 고지서도 내며 직접 생활하는 일이잖아요. 성인이 되고 모국에 두 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온전히 헤아리진 못할 것 같아요. 

소년이었긴 했지만 떠나기 전의 마음을 돌이켜 보면 그땐 모든 게 당연했어요. 선배를 만나고, 친구와 식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들이 성사되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만 하면 됐으니까요. 물리적으로 저도 한국에 있고 전부 한국에 있으니까. 그때는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크게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어리기도 했고 모두에게 가능한 일들이었으니까. 아끼는 사람을 보기 위해 열네 시간씩 비행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자장면이나 치킨을 한 번 먹기 위해 두 시간씩 운전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바깥에 머무는 사람은 환경이 변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자꾸 자각하고 놓쳐요. 그냥 놓치기로 해요.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해요. 포기하지 않으면 자꾸 그런 게 서러우니까. 서럽다는 말은 그런 마음에 비해 너무 작은 말이지만, 그래요. 어떤 일은 원래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단념하는 것 같아요. 그럼 더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처음엔 단순히 슬프지만, 같은 슬픔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고 또 마주하다 보면, 그게 구멍에 가까워져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괴로워하게 되는 구멍은 아니고 별 일 없이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분명하고 정확하게 텅 비어 있는, 아무도 모르게 이미 다 비어져 있는 부분을 보게 돼요. 

‘모국의 국기와 그 가장자리’ 같은 은유는 시적 사유일 뿐이지 그런 마음을 다 대변하지 못해요. 가장자리는 어쨌든 붙어 있는 상태이잖아요. 멀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거잖아요. 더는 같은 공간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돼요. 열네 시간씩 바다를 건너야 할 때마다 본인도 모르게 각인하는 것 같아요. 실재하는 그 물리적 거리 같은 걸요.    

오랜 시간을 거쳐 이민한 나라와 그 환경은 ‘집’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이 모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우연히 정지의 순간들과 마주칠 때마다 시인은 자신이 이방에 있다는 것을 불현 깨닫는다. 이를테면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과 레퍼런스들은 시인을 멈춰버리게 만든다. 시 ‘Abstraction’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잘못된 문법’이며 ‘어느 나라에서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곳에서는 그렇다. 그때는 그렇다. 이 시에서는 그렇다. 어떤 날의 나는 잘못된 문법. 어느 나라에서도 성립되지 않는다. 순서 없는 사람들의 구분하기 어려운 This is this. That is that. 말은 보이지 않아서 아름다울 수 없다. 보이지 않으니까 기록될 수 없다.” 

-이훤, ‘Abstraction’ 일부,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92p

Q. 시 ‘Abstraction’에서 화자는 “어떤 날의 나는 잘못된 문법. 어느 나라에서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때에 가장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절절하게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A. ‘‘Abstraction’이라는 작품은 이민 초기에 느꼈던 마음을 적은 시였어요. 어디에서도 틀린 사람 같았죠. 지금은 대부분의 생활이 무난해요. 비교적 여유 있고, 화려하지 않아도 가족적이고 조용해요. 내가 이방에 있다 싶은 순간은 가끔 와요. 갑자기 와요. 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만 아는 레퍼런스가 나온다거나, 그런 맥락을 이해 못해 혼자 멈추게 되는 순간들. 피곤한데 단순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주어와 술어의 자리를 바꾸려 애쓰는 시간들. ‘서럽다’ ‘허하다’ ‘속상하다’ ‘서운하다’ 같은 여러 결의 감정들이 ’empty’ 같은 뭉툭한 단어 하나로 치환돼야 하는 순간들에요. 예민하지 못한 언어의 구석구석을 문장으로 덧붙여가며 메꿔야 할 때의 피로감과 답답함. 짜증. 어떤 표현은 영어가 더 편하고 어떤 표현은 한글이 더 편해져서 두 언어를 섞어가며 이상한 화법을 구사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들에요. 그런 상태가 본인의 정체를 대변하는 것 같아 얼버무리고 스스로 모른척하는 순간에 문득 이방에 머물고 있구나 실감하곤 해요.  

“어떤 날의 나는 잘못된 문법”이라는 감정은 어디에 있든 당도하는 감정이라 생각해요. ‘어느 나라에도 성립되지 않는’ 각자의 구체적이고 타인에게 이해될 수 없는 사유가 저마다의 생활을 점철하고 있겠죠. 말로 다 하지 않을 뿐. 설명하지 않을 뿐. 모국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도 타국에 머무는 이의 생활에도요.  

이훤 시인의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에는 한글과 영어가 뒤섞여있거나 아예 영어로만 작성된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두 언어를 번갈아가며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한글로 시를 쓰는 것들을 이어오는 이훤 시인에게 '시작'이란 “속으로만 쌓아둔 것을 끄집어내는 일”이며, 자신의 시는 “엇나간 환경에서 오는 마음”을 담는 데에 집중하는 일이다. 영어로 사고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사이 방치되어버린 모국어와 그 말에 담긴 마음을 꺼내는 작업인 셈이다. 

이훤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재지 말아요”를 발표한 후 다소 느슨해진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이훤 시인은 앞으로도 “그때그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훤 시인은 사진가로 활동하며 3년 가까이 작업하고 묶은 ‘사진 산문집’ 4월 중순에서 말 즈음에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