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그 안에서 아픔을 겪는 인간의 모습, 문학으로 담아내다. 강민, 김태수 시인 출간기념회 열려
전쟁과 그 안에서 아픔을 겪는 인간의 모습, 문학으로 담아내다. 강민, 김태수 시인 출간기념회 열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3.1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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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 김태수 시인 합동 출판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강민, 김태수 시인 합동 출판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전쟁의 시기를 직접 경험한 시인들이 전쟁의 아픔에 대해 천착한 시선집, 시집을 출간 및 복간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강민 시인은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출간했으며, 베트남전쟁에 파병됐던 김태수 시인은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를 복간했다. 두 작가의 출간을 맞이하여 6일 용인 포은아트홀 이벤트홀에서는 합동 출판기념회 ‘전쟁과 인간과 문학’이 열렸다.

​합동 출판기념회에서 서로 다른 두 전쟁을 경험한 시인들은 각자가 바라본 인간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전쟁에 관한 생각을 공유했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해 발생한 전쟁 속에서 시인들은 큰 슬픔을 느끼고 전쟁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우리는 전쟁 앞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두 작가는 전쟁의 비참함과 어디에도 승리자가 없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체험과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다. 행사의 사회는 맹문재 푸른사상 주간이 맡았다.

맹문재 푸른사상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맹문재 푸른사상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 “백두에 머리를 두고” 강민 시인, 전쟁은 아무 의미 없이 사람들을 갈라낸다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에는 1962년 데뷔 이후 창작 활동을 해온 강민 시인의 시대의식과 역사의식,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1.4 후퇴와 4.19 혁명, 개발독재 시대의 철거, 촛불 광장까지 한국 현대사의 정황이 시로 드러난다.

이날 강민 시인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경험했으며 당시 서울이 3일 만에 북한군에게 점령됐다고 이야기했다. 1.4 후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남쪽으로 도망쳤으며 강민 시인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하염없이 남쪽으로 내려가던 강민 시인은 경안리의 한 주막에 머물던 날 북한군 소년병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전시상황이지만 둘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품지 않는다. 편안히 대화를 나누는 화자와 소년병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헤어지기 직전 소년병은 화자에게 불쑥 손을 내밀며 “우리 죽지 말자”는 말을 건넨다. 강민 시인은 이때의 경험을 살려 시 ‘경안리에서’를 집필했다.

강민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강민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고, 우리만
하염없는 얘기로 밤을 밝혔다
그리고 새벽에 그는 떠났다
“우리 죽지 말자”며 내밀던 그의 손
온기는 내 손아귀에 남아 있는데
그는 가고 없었다

- 강민, “백두에 머리를 두고”, ‘경안리에서’ 일부

“막말로 제 머리에 총을 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둘은 평범한 소년이었고,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강민 시인은 소년병을 보내고 혼자 남아 전쟁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전쟁이 없었다면 소년병과 나는 어떤 관계였을까, 전쟁은 어찌하여 사람을 대립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이다. 강민 시인은 전쟁이 개인을 의지와 상관없이 대립시키고 만다며 전쟁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김태수 시인, 전쟁에 의해 도구화된 사람들... ‘베트남전쟁, 해서는 안 됐을 잔혹한 경험’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김태수 시인이 한국의 군인으로서 겪은 참상을 사실적으로 증언한 시집이다. 시집에서 김태수 시인은 자신이 본 전쟁의 과정과 전쟁 속에서 아픔을 겪는 베트남 사람들, 도구로 전락해버린 군인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스스로가 느낀 죄의식을 털어놓는다.

김태수 시인은 베트남전이 자신의 일생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만, 동시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됐을 잔혹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김태수 시인을 아프게 한 것은 거대한 전쟁 속에서 개인의 고민이나 가치는 극도로 희미해진다는 점이다. 베트남 문학에서 한국군은 모두 ‘미군’으로 통칭된다며 김태수 시인은 우리 군인들은 백마, 청룡 마크를 달고 있을 뿐 전부 미국의 용역일꾼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베트남전에서는 도구처럼 사용된 용역일꾼에 의해 적게는 6천에서 많게는 9천에 달하는 양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김태수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태수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태수 시인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 교직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람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으나 이제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위치에 서게 됐다. 시 ‘편지’에서 화자는 기우는 집안 형편 탓에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여동생의 편지를 받고는, 그것을 만류하며 “이곳 병장 월급이/그곳 선생 월급보다는 낫다고”라는 답장을 보낸다. 그 짧은 문구를 적기까지 화자는 오랜 시간 글씨를 썼다 지웠다 하며 시간을 소비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고국에 돌아온 김태수 시인은 1987년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이 죽어나간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에 매복을 나가 구덩이에 철모를 깔고 앉으면 빗물이 목까지 차오른다. 김태수 시인은 전장의 모습을 아직도 떠올리고 있다. 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은 사건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달라지곤 한다. 사건의 충격 혹은 사건으로 인해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이전과 같은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행사에서 정우영 시인이 낭독한 시 ‘에필로그’에 선연히 드러난다. 시집 말미에 수록된 ‘에필로그’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김태수 시인이 베트남전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접한 상황에 대해 쓴 시이다.

김태수 시 '에필로그'를 낭독하는 정우영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태수 시 '에필로그'를 낭독하는 정우영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칠십삼년 정초의 혹독한 세상을
신문이 헝클이는 베트남전쟁 이야기
계속되는 구정 공세의 의미를 나는 안다
한 올 희망이 없는
베트남의 기억들로 매일이 추웠고
제대 후
다시 시골 학교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내가 두고 온 베트남은 통일되었다

- 김태수,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에필로그’ 일부

베트남 전쟁을 겪은 김태수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김태수 시인이 두고 온 나라인 베트남은 통일되었지만, 전쟁의 화마와 죽어간 이들의 피비린내는 여전히 시인의 내면에 남아 있다. 이는 비단 김태수 시인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다른 군인들, 죽은 군인이나 현지인의 가족들도 평생을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간을 등에 이고 살아가게 됐다. 김태수 시인은 특히 현지인의 마음속에서는 베트남전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라며, 전쟁이 남기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준태 시인이 평화를 위한 문학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준태 시인이 평화를 위한 문학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두 작가의 발언 뒤에는 참여 작가들의 시 낭송이 이어졌다. 한편 축사를 맡은 김준태 시인은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남과 북이 만나는 과정이 “나아가 한국의 평화가 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 세계평화로 이어지길 고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시인이 출간한 책이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두 분이 지향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인간과 문학이 가는 길”이라며 “두 시인의 책이 널리 읽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이념에 의한 대립은 개개인을 도구로 전락시키며, 이념 너머에 있는 무수한 아픔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강민 시인과 김태수 시인의 시집은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들의 시집은 우리가 두고 온, 혹은 보지 못했던 역사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민, 김태수 출판기념회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강민, 김태수 출판기념회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