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밀양연극촌 재건에 나선 이대영 예술감독과의 만남, 배우 육성에 힘 쓰겠다는 포부 밝혀
[인터뷰] 밀양연극촌 재건에 나선 이대영 예술감독과의 만남, 배우 육성에 힘 쓰겠다는 포부 밝혀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3.19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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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연극촌. 사진 = 육준수 기자
밀양연극촌.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밀양연극촌으로 가주세요.”라는 말에 택시기사는 고개를 돌려 기자의 얼굴을 한 번 바라봤다. 다시 정면을 쳐다보며 힘주어 엑셀을 밟은 택시기사는 “거기 이제 뭐 없지 않나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되묻자 기사는 밀양연극촌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윤택 전 감독의 성폭력 사건이 밝혀진 이후 그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어 운영이 아예 끝나버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

​택시기사의 말대로 밀양연극촌은 작년 2월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며 운영이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밀양시는 우리나라에서 연극 인력을 키워나가는 대표적인 장소인 밀양연극촌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는 판단으로, 공모를 진행하여 작년 8월경 새 예술감독을 뽑았다. 중앙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이대영 극작가이다. 이대영 감독은 연극계에 있어 상징적 공간인 밀양연극촌에 새로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성을 느꼈으며, 부임 직후 1기를 모집하여 작년 12월까지 교육 및 연극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올해는 새로이 2기를 구성하여 창조적 연극배우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대영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대영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는 지난 2월 밀양연극촌에 방문하여 이대영 감독에게 현재 어떠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떠한 목표와 각오를 가지고 연극촌을 운영할 예정인지 인터뷰했다.

​“작년 8월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성벽극장이 정말 무너진 성벽 같았고... 난파선 같은 곳이었습니다. 거미들만 잔뜩 살고 있고요. 단원을 뽑아서 제일 먼저 청소부터 시켰습니다. 청소할 때 너희들 마음에 있는 찌꺼기까지 청소하라고 했어요. 작년 저희는 세 편의 공연을 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청소를 하면서 준비한 연극입니다.”

성벽극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성벽극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대영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당시 연극촌은 그야말로 폐허와 다름없었다. 밀양 변두리에 위치한 데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겹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연극촌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이대영 감독은 단원들을 뽑아 가장 먼저 청소를 시키고 연극을 준비하였다. 폐허 같던 밀양연극촌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어느새 열다섯 개의 프로그램을 기획 및 진행하는 장소가 되었다. 현재는 시즌 공연과 문화 소외층(소방서, 경찰, 노인회관,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등)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공연, 연극촌에 찾아올 수 있도록 진행하는 상설공연, 밀양을 알리는 콘텐츠 공연, 밀양 연극 여름축제 등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이대영 감독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배우 개개인의 역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 역량은 발성법이나 자세를 취하고 시선처리를 하는 연기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대영 감독은 연극이 다른 장르와 차별화된 독자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시 제사장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옛날 제사장은 모든 부족원이 사냥이나 채집을 하고 돌아왔을 때 얻은 정보를 취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늪에 빠져 죽거나 파도에 죽지 않게끔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과 역사를 효과적으로 가르쳐주기 위해 연극이 시작됐다고 설명한 이대영 감독은 배우는 항시 지성을 함양해야 하며, “스스로가 훌륭하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감독의 교육 방식은 기존에 있는 연기술, 연극술과는 차이가 있다. 기존의 희곡이나 연기에 관한 책, 연극사를 익히는 것은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대영 감독은 배우가 스스로 경계를 허물지 못한다면 연극이 TV 아침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게 된다고 말하며 배우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이대영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대영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제 배우들은 연극을 진행시키기도 하고 중단시키기도 하는 연출형 배우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전처럼 작가가 쓴 글을 표현하기만 하는 삽화적 배우로서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삽화적 배우에서 연출적 배우로 넘어가야 하고, 연출적 배우에서는 자아적 배우로 넘어가야 합니다. 제사장 단계로 말입니다.”

​이대영 감독은 배우의 세 형태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극작가가 써놓은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고 잘 표현해내는 ‘삽화적 배우’이다. 두 번째는 연극을 진행시키거나 중단시키기도 하는 ‘연출적 배우’이다. 세 번째는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극에 자신의 삶을 넣어버리는 ‘자아적 배우’이다.

​이대영 감독은 그동안의 배우들이 개개인의 역량 차는 있었으나 마치 인공지능과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작가가 써놓은 작품을 연출이 배우에게 입혀 배우가 효과적으로 발현시키는 데에 그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영 감독은 연극이 그 무엇보다도 현장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4차 산업시대에 맞는 다공간, 다매체 연극이 나올 때”가 됐으니 “결말을 알 수 없고 오늘 본 연극이 내일 본 연극과 다른 연극. 그 순간, 그 시공간을 고유한 자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연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밀양연극촌 2기 연습생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밀양연극촌 2기 연습생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감독의 교육방식이 정착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대영 감독은 밀양연극촌을 기수제로 운영하지만 각 기수가 서로 단절되지 않게끔 전 기수에서 일부의 인원을 뽑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배우들이 감독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이대영 감독은 밀양연극촌이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다면 감독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 스스로가 할 것을 찾고 연극촌 자체가 자생할 힘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끝으로 이대영 감독은 밀양연극촌이 “연극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공연예술의 메카가 되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은 공연 위주의 행사만을 열어왔지만 시낭송이나 발레 등 다양한 목적의 예술가가 모이는 장소가 되면서, 동시에 연극과 관련한 책들이 모이는 작은 도서관의 역할도 겸하여 모든 연극인들의 허브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밀양연극촌. 사진 = 육준수 기자
밀양연극촌. 사진 = 육준수 기자

지금 밀양연극촌은 폐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다. 목조 단상과 무대, 구조물들은 새것처럼 깨끗하게 닦여 있으며 어디 하나 얼룩진 데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겨울의 낌새가 가시지 않았는지 건물들의 표면이 얼어붙은 듯 단단해 보이고, 주변에는 이파리 없는 나무들만 드문드문 자라나 있다. 나무들은 입을 꾹 다문 듯 적막하다. 과거 밀양연극촌에서는 관객들에게 기쁨과 슬픔을 전해줄 다양한 이야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연극을 선보이고 단상에서는 단원들이 극을 연습하며, 벤치에서는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토의가 이어졌을 것이다. 이제 곧 봄이 오고 날씨가 풀리면 나무들에서는 푸른 이파리가 자라나고 풀벌레소리나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단원들의 활기 찬 목소리도 밀양연극촌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나갈 것이다.

하루하루 활기를 더해가고 있는 밀양연극촌이 예전처럼 많은 연극인들을 육성하고, 이대영 감독의 바람처럼 예술인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