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상은, 어느 날 아침
(9) 이상은, 어느 날 아침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6.1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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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봄 볕에 마주친 고운 눈매

내 어린 마음 가득히 물결이 지며 빛나

이제는 슬픈 흰 눈이 내리고

미소는 얼어붙은 하늘처럼 

-이상은, 「어느 날 아침」

 

새들이 먼저 새벽을 알아차린다. 높이 날면서 멀리서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알아보는 것일까. 나는 종종 새벽의 기미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알아챈다. 아직 하늘을 캄캄한데 숲 저 쪽에서는 새들이 요란스레 울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저편이 트인다. 햇살이 잎새처럼 돋아나며, 창가에 간신히 닿을 무렵이다. 아직 햇살이 몸 구석구석을 찌르지 않는 시간이다. 진주하는 군대처럼 햇살이 닥쳐오지 않는 시간이다. 흐린 날이든, 흐리지 않는 날이든 새들은 새벽이 오기 전에 운다. 우리가 새벽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에 운다. 운이 좋으면 새들이 날개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제각기 다른 소리가 한데 모여 새벽의 숲 속에 퍼지는 것을 듣는 일은 매혹적이다.

가끔 새들의 부리 끝에 붙은 햇살을 생각한다. 햇빛 한 점이 새들의 부리에 붙어있어서 새들이 입을 여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 유순함이 다른 유순함으로 스며들어 목소리가 된다. 한 사람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마주치는 것, 한 사람의 진심이 다른 사람의 진심으로 번지는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살에서 살로, 상처에서 상처로, 그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상은의 앨범을 모두 좋아하지만, 3집에 대해선 좀 각별한 감정이 인다. 내가 최초로 온전히 들은 이상은의 앨범이 이 앨범이었고, 내가 이 앨범을 꺼내들은 시기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MT날 아침이면, 나는 자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펜션을 나와 혼자서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는 버릇이 있었다. 전날 있었던 일에 비하면 모든 일들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한결 더 따듯해보였다. 펜션이야 계곡 같은 곳에 있다보니, 근처 동네는 텃밭이나, 계곡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배춧잎에 어리는 햇살을 보는 게 좋았다. 전날의 찌끼들이 햇살 속에서 기화되고, 나는 어느 정도 왔을 때, 걸음을 멈추었다. 늘 산의 다음 굽이가 나오거나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펜션 문을 나올 때 들었던 시디피가 막 이 곡을 재생할 무렵이었다. 모든 것을 남겨두고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햇살 사이로 맑은 바람이 불어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때가 그랬다.

슬픔은 새를 기르지 않는다. 슬픈 마음이 손을 들어 새를 쓰다듬어도 새의 깃털을 스치는 것은 오직 맑은 바람 뿐인 것이다. 그 사실이 몸서리치도록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다시 내 작은 새에게로 돌아온다. 어쩌면 새들의 부리가 하늘의 옆구리를 쪼면서 새벽을 몰고 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하늘이 온 몸을 뒤채면서 밝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상은의 노래는 그런 '새'들이 많았다. 비범하게 날아다니면서 새벽을 구하는 구도자로서의 새. 생각은 질문을 물고 돌아온다. 나는 어떤가. 하늘을 날기 위해 가벼워 본 일이 있었던가. 자유롭기 위해 모든 걸 벗어버릴 수 있을까. 

여름의 가운데에서 나는 무심코 잊고 지냈던 지난 겨울날을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 영엉 멀어져 볼 수 없는 그 계절을. 그 계절의 고요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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