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대 상황과 문학은 무관하지 않아’ “한국 현대 시문학사” 개정증보판 발간 앞장선 이승하 교수와의 만남
[인터뷰] ‘시대 상황과 문학은 무관하지 않아’ “한국 현대 시문학사” 개정증보판 발간 앞장선 이승하 교수와의 만남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3.2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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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910년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문학사를 망라한 “한국 현대 시문학사”가 초판 발행 후 14년 만에 개정 증보판을 발행했다. 개정 증보판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2005년 판이 1990년대까지의 시사만을 다뤘던 것을 극복하고자 2000년대 이후의 시사와 한국 시사의 미래를 점친 글을 새로이 수록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제목처럼 한국의 시문학사를 현장의 평론가와 학자 11명이 면밀하고 풍성하게 다루고 있다. 1910년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10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문학 운동과 역사적 사건,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시 문학사는 소설에 비해 적게 취급된 경향이 있었기에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증보판 출간은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문학사는 문학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며, 문학 교육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선에서 창작하는 젊은 문학인들은 문학사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문학사를 배우는 것이 창작과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학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문예창작과에서도 문학사는 교육과정에서 제외되거나 축소되는 등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학사를 배우는 것이 정말 창작과 무관한 것일까?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개정증보판 발간에 앞장선 이승하 교수는 문학과 역사가 무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뉴스페이퍼는 이승하 교수와 만나 “한국 현대 시문학사” 개정증보판의 의의와 문학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이승하 교수 “시대상황과 문학은 무관하지 않아... 문학사 모른다면 문학의 흐름 알 수 없어”

​문학이 역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순수론자나 창작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론이나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실리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승하 교수는 “책을 기술한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문학사를 쓸 때 제일 앞머리에 시대상황을 기술했다.”고 이야기했다.

1910년대를 기술한 이명찬 교수(덕성여대)는 191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근대로의 이행기’라고 규정하고 근대성을 얻고자 했던 작가와 작품을 사건과 기술했다. 1940년대 문학사를 기술한 유성호 교수는 혼돈과 불확실이 지속되고 있던 해방 직후의 상황을 언급하며 조선문학가동맹과 청년문학가협회를 대비하여 살펴보았다.

이승하 교수는 상의하지 않은 채 기술했던 각각의 학자들이 모두 약속한 것처럼 시대적 배경을 쓴다는 것은 문학과 역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나타내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문학에 있어서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들여다보면 그것과 무관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의식하며 반대편에 서려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순수를 지향하려 했던 청록파조차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을 발표할 수가 없었다며 역사와 문학은 무관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승하 교수는 문학사를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 문학의 흐름을 전혀 모른 채 근년의 등단작이나 약간의 화제성 시집을 보면서 습작기를 보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근년의 등단작이나 화제성 시집만을 본 채 보내게 되면 시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협소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방의 시인으로 김소월과 백석만 알고 김동환과 이용약을 모르면 되겠습니까. 김소월과 김영랑도 현실참여시를 썼고 모더니스트 김규동과 전봉건과 휴머니스트 구상이 이산가족의 일원으로서 애끓는 사모곡을 쓰기도 한 시인임을 문학사는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4.19 혁명이 김춘수, 조지훈, 박목월, 김남조 등에게 혁명 기념시를 쓰게 했습니다. 문학사를 알아야지 박노해, 김남주, 김신용, 김해화, 박영근 노동시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 2000년대 한국 시사부터 시단의 미래까지. 한국 시사 망라한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교수는 “한국 현대 시문학사”가 다른 문학사 책과 구분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시문학사의 전범(典範) 같은 책으로 김용직의 “한국현대시사”, 김재홍의 “한국 현대시의 사적 탐구”, 최동호의 “한국현대시사의 감각”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세 도서는 연대가 60~70년대까지만 이르러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현대’라고 할 수 없어 아쉬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현대문학사”가 현대문학사나 민음사, 집문당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출간됐으나 소설에 비해 시는 적게 취급된 감이 없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1910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긴 시간의 시사를 담으면서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개정증보판은 2000년대 이후의 시사를 더하고 미래의 시사를 전망하며 내용을 더욱 충실히 했으며, 가독성을 살리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하였고 사진을 여럿 첨부하여 현장의 실감성을 높였다. 특히 사진을 100장 이상 찾아내어 수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시인의 인물 사진 뿐 아니라 행사 사진이나 시집 표지 등 다양한 사진을 포함했다.

증보판에서 눈여겨볼 것은 2000년대 시문학사와 시단의 미래를 살펴보는 세 편의 글이다. 이경수 교수(중앙대)는 “탈경계 시대 현대시의 모색과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탈경계’를 키워드로 잡고 2000년대 시문학사를 정리했다. 

이경수 교수는 “2000년대의 문학은 이념의 차이는 물론 국가와 민족,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가르던 경계를 횡단하여 탈국가, 탈민족, 탈경계의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며 “오랫동안 한국의 시단을 가르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분할,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던 에콜인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 그룹의 구별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것 또한 2000년대 시단의 변화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신세대 시인의 약진과 정치적 상상력의 갱신은 2000년대 시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탈국가, 탈민족, 탈서정, 탈장르, 탈경계의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들로는 황병승, 김민정, 장석원, 이민하, 김행숙, 진은영, 김이듬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미래파 시인들의 출연은 신세대의 약진을 읽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2000년대에는 촛불시위와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사업,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투쟁, 한진중공업 사태,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등 무수히 많은 정치적 사건이 잇따랐고,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들의 선언과 문학적 실천이 이뤄졌다. 작가들의 문학적 실천은 생존자와 희생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2017년 이후에는 ‘참고문헌없음’ 및 페미라이터 활동,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등 페미니즘 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경수 교수는 “윤리와 탈경계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2000년대의 시단은 이제 비로소 시의 윤리 감각을 제대로 시험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아픈 상처를 도려내고 단단해진 자기 성찰의 근육질을 회복할 것인가, 은폐하고 봉합해온 관습에 따라 시가 추구하는 정신과 이율배반의 길을 갈 것인가.”에 따라 한국 시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문예지는 논쟁적 힘 잃고 독자의 영향력은 방대해져’ 미래의 문학 환경 점검한 이승하 교수

이승하 교수는 “새로운 독자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 21세기의 시와 시인과 독자”라는 글에서 문학 환경의 변화를 점검했다. 이승하 교수는 텍스트의 위상이 추락하는데 반해 독자의 위상은 크게 향상되고 있으며 “독자들이 문학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 생산자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는 문학을 둘러싼 제반 질서, 즉 생산-유통-소비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보았다. 독자는 능동적 생산자의 역할뿐 아니라 배급자의 역할, 문학 평론가의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던 쌍방향 소통은 이제 독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작가와 독자가 바로 연결되는 구조에서 작가는 독자의 입맛에 맞춘 작품을 쓸 수밖에 없고, 이는 문학의 사유와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하 교수는 우리 시의 전망을 다소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독자가 지배적으로 위치하게 된 구조적 변화에 더해 미당문학상의 중단, 고은 사태, 신춘문예 당선 시의 잇따른 취소 사태 등 악재가 더해졌고,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예지에서 담론을 이끌지 못하고 평론이 제 힘을 잃어버린 것 또한 문제점이다. 문예지에서 청탁되는 글의 95%는 해설과 서평 유의 글이며, 문제를 제기할 자리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하 교수는 “문예지와 문학평론가들은 현재의 쟁점을 논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를 점검하고, 지금 이 시대에 좋은 시가 어떤 시인지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기를 바란다.”며 한국 시의 문제는 독자만을 탓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에는 사회비판의 기능, 미학의 기능, 애매성을 탐구하는 분석의 기능, 모국어에 대한 확인과 사랑 등의 기능이 있으므로 “우리 시가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하 교수는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국어국문과 학생이나 문예창작과 학생뿐 아니라 지난 110년 동안의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 또한 유의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문학사가 필연적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각 연대의 앞머리는 문학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장식하고 있기 떄문이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나 학원의 국어 혹은 논술 강사선생님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읽어보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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