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6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②오딧세우스와 지적호기심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6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②오딧세우스와 지적호기심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9.03.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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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6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②오딧세우스와 지적호기심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6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②오딧세우스와 지적호기심

3회에 걸쳐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을 분재한다.   

②오딧세우스와 지적호기심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인문정신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였다 옛날에는 자연현상이 분명히 신의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신)의 탐구는 금기에 도전하는 일이기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고, 그 첫 희생자가 오이디푸스였다 그러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자, 오늘은 그 두 번째 오딧세우스편이다 그를 다룬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를 펼쳐보자

“들려주소서 무사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즉 <오딧세이아>는 시가, 노래가 아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다루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킬레스의 분노Achilles's Wrath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따라서 트로이 전쟁을 다루고 있는 <일리아스>가 점이자 격정이고 부족의 영웅에게 바치는 맹목적인 찬가라먼, ‘임기응변에 능한adaptable’ 영웅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오딧세이아>는 하나의 선이자 이성이고 그가 어티케 해서 갖은 모험을 뚫고 살아 돌아왔는지 이야기 하는 영웅적인 종족 서사다 여기, ‘어티케how’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신화의, 미망의 세계를 벗어난 서사의, 동화의 세계다 발터 벤야민('프란츠 카프카')이 <오딧세이아>는 신화와 동화를 갈라놓은 문턱에 서 있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냐하먼 시가 감정의 세계이고, 공간의, 영토의 세계를 상징하는 신정론이라먼, 소설은 이성의 세계이고, 시간의, 탈영토의 세계를 나타내는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 대상과의 합일의 정신을 담고 있는 동화同化의 멘탈리테를 대변한다먼, 대상과의 균열을 담고 있는 이성은 이화異化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이화의 정신구조, 이것이 ‘지적 호기심’에 해당한다 그 유명한 세이렌의 경우를 통해 잘 알 수 있듯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를 알기 위해 도전하되 살아 남아서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 바로 이것이 고전 문명을 이루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특징이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hard truth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진해서 똥개가 되것다고 닥치고 의사, 판사, 공무원이 되것다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젊음들을 보고 느낀 것 중의 하나도 과연 한 국가의 우수한 두뇌들이 이렇게 안정된 개밥그릇을 찾아 젊은 에너지와 열정을 소모하는 사회에 비전이 있을까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삼국지>의 조조처럼 ‘임기응변에 능한 자’라는 점이다 어떤 자가 임기응변에 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관우나 아킬레스 같은 인간형과는 무언가 다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즉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분노에 사로잡힌 아킬레스라는 감성형 인간과는 다른 결과 꽃무늬를 지닌 오딧세우스적 인간형을 확인할 수 있거니와, 그것은 이성적, 이지적 인간형이다 중요한 것은 아킬레스가 감성형 인간으로서 비극을 맞이하고 있는 죽음의 서사 주인공인 데 비해, 오딧세우스는 이성형 인간으로서 행복한 결말을 누리고 있는 성공서사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임기응변에 능한 유연한 대응력이 그를 성공서사의 주인공으로 이끌었던 것이고, 이것은 그만이 소유하고 있는 매우 두드러진 성격적 특징으로 중립적 성향을 지닌 ‘노트럴neutral'한 자질을 지닌 지성의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연하고 노트럴한 지성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함으로써 그를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모험에 뛰어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딧세우스 이래, 신화적 단계를 지나 헤로도투스를 거치고 저 탈레스 등 자연철학자들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이 일기 시작하고, 이것이 다시 소크라테스를 통해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심으로 바뀌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에 이르러 고전 그리스 황금시기 서구의 지성사가 드디어 하나의 원환을 이루기까지 오딧세우스의 이런 도전적인 정신적 기조가 하나의 감정구조로 서구인의 망탈리테를 형성하는데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함으로써 서구지성사의 졸졸졸 흐르는 샘물이 되었던 것이다 즉 동양의 문화유전자가 현세적인 ‘인의도덕’의 실천이라는 성격을 지녔다먼, 서양의 그것은 보다 이상적인 ‘형이상학’의 추구라는 특징을 지니게 된 것으로, 이의 문학적 원조가 바로 오딧세우스다 

이런 서구적 정서를 잘 대변하는 비근한 사례로 ‘스타벅스’를 들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커피는 이성음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이다 그런데 왜 하필 스타벅스일까 스타벅스, 그는 멜빌의 <흰 고래>에 나오는 일등항해사다 거기, 흰 고래에 미쳐 날뛰는 에이허브 선장은 그대로 분노에 사로잡힌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를 떠올리게 하고, 언제나 ‘침착하고 빈틈없으며, 용의주도한’ 일등항해사 스타벅스는 그대로 임기응변에 능한 이성적인 인간 오딧세우스를 연상케 한다 즉 우리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먼서 나 또한 하나의 스타벅스로서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처럼 ‘침착하고 빈틈없으며, 용의주도한’ 인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좀 냉혹하고 이지적인 모럴을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즉 스타벅스는 현대판 오딧세우스다 여기에 오딧세우스와 만났던 세이렌siren이라는 매혹적인 요정신화가 더해져 스타벅스라는 공전의 커피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런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상상의 세계가 결코 시대착오적인 옛날 야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신화는 지금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무미건조한 현실에 '시적 기억'을 일깨우고 논리가 가 닿지 모하는 시원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거기에 심지를 박고 있는 하나의 원석이자 토대로, 신화와 환타지가 대중문화의 거대한 매트릭스로 기능하고 있는 이유다 

전자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자주 듣는 ‘사이버cyber’라는 말을 또 생각해 보자 대개는 ‘인터넷 상’이라는 의미로 각종 신조어의 접두 어근으로 쓰이고 그 쓰임새 또한 날로 커지고 ‘사이버 바다’라는 비유적 표현도 자주 쓰이고 있다 ‘사이버’는 바다와 오랜 관련이 있는 워딩이다 사이버는 본래 그 기원이 배의 키잡이, 선장을 의미했다 플라톤이 지은 시론서, <이온Ion>을 보자 “소크라테스; 조선공의 작업은 누가 감독하지? 헤르모게네스; 선장이겠지요.” 여기 ‘선장’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이 ‘키잡이(조타수)’를 뜻하는 kybernetes다 선장은 곧 키를 조정하는 사람으로 이 키를 그리스어로 kybernan이라 했다 소통과 제어를 뜻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또한 여기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선박의 키를 뜻하던 kybernan에서 어형의 변화를 거쳐 오늘 cyber가 되기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다의 힘이다 익히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제국은 해상 무역으로 번성한 제국이었다 지중해 동서남북으로 배를 띄워 해적질과 전쟁, 또는 무역으로 큰돈을 벌고 수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회를 배에 곧잘 비유하곤 했다 배는 물살을 가르는 큰 나무판자를 회전시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 판자를 ‘키’라 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선장이 키를 회전시켜 방향을 잡고 배를 조정, 통제하듯이 컴퓨터를 쓰는 나 또한 컴퓨터 자판의 키와 마우스를 이리저리 조정하여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나의 방향을 결정한다 정부와 주지사도 사회와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권력이기 때문에 여기서 government와 governor이 나왔다 

대표적인 선장이자 지도자가 바로 <오딧세이아>의 주인공 오딧세우스(라틴명 율리시스)다 10여 년에 걸친 대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다시 고향 이타카Ithaca로 귀향하기까지 10여 년에 걸친 숱한 모험담을 담은 이 대서사시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세이렌의 유혹 등 수많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지성의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 냈다 여기, 그가 마주친 유혹과 위기, 그리고 극복의 드라마는 후일 그들이 또한 겪고 이겨내야만 했던 고독한 로빈슨 크루소와 탐험가 컬럼부스 선조들pre-Columbian explorers, ‘올바를 길’을 찾아 지옥의 순례를 마다하지 않는 단테, 지적 호기심을 얻고자 기꺼이 괴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마법사 파우스트 등과도 다르지 않으며, 또한 일상에서 늘 위기와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 나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바다처럼 넓지만 위험하기도 한 전자정보의 세계... 

우리는 지금 세이렌과 마주친 오딧세우스 이상으로 실체도 없고 형태도 없는 전자세계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허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오딧세우스인가 서사는 나갔다 돌아오는, 멀고 먼 항해와도 같은 고된 여정이다 하여 자전서사의 주인공인 나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 험난한 인생 항해를 뚫고 기어코 내 고향 이타카에 무사히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호기심이 넘치고 ‘임기응변에 능한adaptable’ 오딧세우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난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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