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하명희 소설가의 「달빛을 만진 날」
[미니픽션] 하명희 소설가의 「달빛을 만진 날」
  • 하명희 소설가
  • 승인 2019.03.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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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섭은 달렸다. 닭튀김을 배달통에 넣고 달렸다. 너무 늦게 도착하면 주문을 취소할 수도 있다. 취소한 닭과 닭값은 고스란히 준섭이 떠안아야 했다. 그러면 하루 일당이 훅 빠져나가고도 더 달려야 했다. 준섭은 달렸다. 자동차들 사이로 곡예하듯 달렸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닭을 먹기는 싫었다. 배달 취소된 닭은 욕을 먹어서 그런지 징그럽게 맛이 없었다. 친구들을 불러내 식은 닭을 주는 것도 한두 번 하다 보니 버리는 게 나았다. 준섭은 달렸다. 신호도 무시하고 달렸다. 이렇게 달려도 늘 늦었다. 주문한 집에 도착하면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했다. 준섭은 달렸다. 주문이 걸려 있는 집이 네 곳이었다. 모두 닭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닭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왜 이렇게 늦느냐고 짜증을 냈다. 달리는 중에도 주문 오더가 들어왔다. 준섭은 달렸다. 앞 차를 가볍게 제치고 차 사이로 방향을 틀어가며 달렸다. 신호에 걸리면 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치고 나갔다. 

준섭은 달렸다. 달리고 있었다. 키이익, 브레이크를 거는 앞 차가 보였지만 달리던 속도를 줄이기에는 늦었다. 준섭은 앞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핸들을 꺾었다. 뒤에서 달리던 차가 준섭의 오토바이를 살짝 건드리며 멈췄다. 준섭은 날았다. 몸이 떠올랐다. 눈을 떴던가. 눈을 감았던가. 머릿속에서 달빛 같은 전구가 터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터진 전구의 유리가 온몸에 박히는 것 같았다.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깊숙이 찔러댔지만 아픈 감각이 없었다. 준섭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박힌 유리를 뽑아내려고 손가락을 움직이려다 그대로 힘이 빠졌다. 

준섭이 눈을 떴을 때는 커다란 달이 보였다. 대로에 누워 눈을 감았다 뜨는 아주 잠깐 사이였다. 차들만 있던 도로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다. 준섭은 헬맷을 쓴 상태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멈춘 차들과 사람들 다리 사이로 돌덩이가 보였다. 그림자를 말아놓은 듯한 검은 돌이었다. 그 돌은 일어서려고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고개를 바로 하니 사람들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괜찮니?”

“정신이 드니?”

“이봐 배달?”

눈만 껌뻑이는 준섭에게 사람들이 한 마디씩 말을 걸었다. 준섭은 다시 바닥에서 고개만 돌려 몸을 떠는 돌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도 없이 일어나 걷고 있었다. 검은 돌이 움직였다. 돌이 걸었다. 돌은 절뚝이고 있었다. 준섭은 그것을 따라하듯 몸을 일으켰다. 

“얘? 정신이 드니?” 

준섭은 손을 뻗었다. “돌이……”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뭐라고? 이제 정신이 드니?”

준섭은 절뚝거리며 걷는 돌과 자기 앞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공중에 떠 있던 조금 전의 정신이 돌아온 건지 자동차 사이로 걷던 돌은 검은 개의 모습으로 변했다. 준섭은 검은 개가 그랬던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준섭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헬맷을 벗어 손에 들고 눈으로 오토바이를 찾았다. 길 한복판에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었다. 차에 치인 것은 닭인지 닭다리와 날개와 목과 가슴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준섭은 걸었다. 걸어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괜찮겠어? 병원에 가보자.”

누군가 말했다. 준섭은 고개를 저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주문 취소 문자가 두 건 있었다. 사장한테도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괜찮은가 보네.” 

준섭을 부축하던 남자가 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문제가 있으면 전화해. 안 그러면 뺑소니가 되니까 꼭 전화해라.” 

그러곤 명함 뒤에 만원을 깔고 준섭에게 건넸다.

“약국이라도 가라. 네가 방향을 틀어서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어. 근데 너 고등학생이냐?” 

준섭은 바닥에 떨어진 닭 날개를 주워 배달통에 던졌다. 만원은 배달을 다섯 군데는 돌아야 버는 돈이었다. 하지만 주문 취소된 것을 채우려면 사만원은 뱉어내야 했다. 준섭에게 시간은 돈이었다. 길에서 넘어지든 말든, 차에 치이든 말든, 그 시간을 채워줄 사만원이 필요했다.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고? 나는 사람 아니야?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나왔다. 준섭은 멈칫거리다 차로 돌아가려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저…….”

남자는 준섭이 잡은 손목을 보며 대구했다. “왜?” 그러곤 목소리를 바꿨다. 

“뭐?”

“아까 그거 주세요. 그리고…….” 준섭은 입술을 적셨다.

“더 주시면 안 돼요?”

준섭은 그 말을 하며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고개를 떨궜다. 더 달라고 해야지 주시면 안 돼요가 뭐야 멍청한 새끼야. 세게 말하지 못한 것이, 그냥 길에 드러누워 버리지 못한 게 화가 났다. 남자는 준섭을 위아래로 훑었다.

“괜히 나중에 병원에 입원했네 하지 말고 병원에 가자니까.”

준섭은 배달이 취소된 것은 자기가 채워 넣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남자는 지갑에서 오만원을 꺼내 건네며 병원에 가자는 좀 전과는 달리 딱 잘라 말했다. 

“너 보험도 안 들었냐?”

남자는 준섭의 손을 털어내며 재수가 없다는 듯 길에 침을 뱉었다. 준섭은 오만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남자의 차가 출발했다. 준섭은 이제야 항의하듯 명함을 차 꽁무니를 향해 던졌다. 명함은 준섭의 발 아래로 떨어졌다. 핸드폰이 울렸다. 준섭은 사장에게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장은 다른 배달한테 오더 넣었으니 오늘은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함을 꼭 받으라고 했다. 준섭은 발아래 떨어진 명함을 줍고 주문을 취소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다시 가져다 드리면 안 될까요?”

주문한 사람은 너나 먹으라고 소리쳤다. 준섭은 오토바이에 올랐다. 준섭은 천천히 달렸다. 오만원이라도 받았으니 됐다 싶었다. 오토바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점점 속도를 줄이고 화양공원 앞에서 멈추었다. 공원 안에서 누군가 밤의 발자국을 따라가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무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가 하면 벽을 두 발로 치고 날아올랐다. 무예를 하듯 심호흡을 하는가 하면 온몸의 에너지를 한 곳에 모으듯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나무 사다리로 가뿐히 뛰어올라 구름 위를 걷듯 네 발로 춤을 추다 미끄럼틀의 지붕 위로 쏜살같이 기어올라 땅으로 사뿐 뛰어내렸다. 달빛을 잡으며 노는 춤 같았다. 파쿠르라고 하던가. 준섭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것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놀이터 가장자리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낑낑거리는 동물의 울음소리였다. 낮은 관목 사이에 무언가 누워 있었다. 준섭은 관목을 제쳤다. 

검은 개다. 좀 전에 보았던 개가 돌처럼 누워 있었다. 개가 누운 자리의 마른 가지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준섭은 배달통에 던져 넣은 닭다리를 뜯어 손바닥에 올렸다. 개는 절뚝거리며 걸어나와 준섭의 손바닥까지 핥았다. 바닥에 쓸려 부어오르던 손바닥이 얼얼했다. 준섭은 닭 가슴살을 뜯어 내밀었다. 이번에도 개는 준섭의 손가락 끝까지 핥았다. 준섭은 남은 살을 자기 입으로도 가져갔다. 개가 한 입, 준섭이 한 입, 닭 가슴살은 금방 사라졌다. 개는 낑낑대며 몸을 일으켰다. 절뚝거리는 다리 사이로 꼬리가 살랑거리며 좌우로 움직였다. 

“너는 나를 닭 냄새로 보겠구나.”

개는 냄새로 본다는 과학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는 계속 낑낑댔다. 너는 뭐가 그렇게 바빴니? 준섭은 개를 들어올려 달빛에 비쳤다. 개의 다리와 배에는 핏자국이 엉겨 붙어 있었다. 준섭은 무릎 위에 개를 올렸다. 검은 개가 낑낑거리며 벌렁 드러누웠다. 개의 배 위로 달빛이 떨어졌다. 준섭은 개의 배를 쓸었다. 부어오르던 손바닥에 피가 돌았다. 달의 파편이 개의 몸에 박혀 있는 것처럼 배를 쓸어낼수록 준섭이 손이 더 따뜻해졌다. 달빛을 만지는 것 같아. 개는 좀 전에 준섭이 그랬듯 조는 듯 눈을 감았다. 파쿠르를 하던 남자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달빛이 그물망을 던진 것처럼 그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하명희(河明姬)
소설가.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 2014), 단편집 『불편한 온도』(강, 2018), 공동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걷는사람, 2018)가 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 2014년 전태일문학상, 2016년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2018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stonywind@naver.com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re_etc&ps_boid=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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