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대한 사랑은 실재 너머를 폭 넓게 탐구하는 것’ 황여정 소설가, 책방이듬 낭독회에서 “알제리의 유령들” 함께 읽어
‘무언가에 대한 사랑은 실재 너머를 폭 넓게 탐구하는 것’ 황여정 소설가, 책방이듬 낭독회에서 “알제리의 유령들” 함께 읽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4.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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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우리는 무언가 알게 됐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말을 듣거나 정보를 얻었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재편집하여 기억에 저장한다.

​예컨대 공산주의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가 만년에 희곡을 집필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칼 마르크스는 알제리에 요양 차 방문하여 빅토리아에 머물던 중, 죽은 아내 ‘예니’의 이름을 물려준 딸 ‘예니’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희곡을 동봉한다. 그러나 심부름을 하는 소녀 ‘릴리’는 편지에 실링이 안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몰래 그의 희곡을 꺼내 필사한다. 이 영향으로 릴리는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되며 마르크스의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은 릴리의 에세이와 함께 출간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은 제일 먼저 ‘마르크스가 희곡을 썼다고?’라고 놀라며 사실을 확인해볼 것이며, 사실은 이것이 실제가 아닌 황여정 소설가의 장편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의 스토리임을 알게 된다.

황여정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황여정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황여정 소설가는 지난 2월 28일 책방이듬 일파만파 낭독회에서 독자들과 함께 “알제리의 유령들”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황여정 소설가는 황석영 소설가와 홍희담 소설가의 딸로 오랜 시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황여정 소설가의 데뷔작으로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이 “하나의 유령이-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하여 지은 소설이다.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가상의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의 진실을 찾아가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 책에 대해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말하기도 했다. 책의 이야기는 80년대에 탁오수라는 인물과 그가 속한 극단이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을 무대에 올린 것에서 시작한다. 탁오수와 극단의 인원들은 마르크스의 희곡을 공연했다는 혐의로 투옥되지만, 사실 그 희곡은 탁오수가 단원들을 놀려주기 위해 만든 가상의 희곡이다. 작품의 1부에서는 극단의 출신인 율과 징의 부모가 앓고 있는 80년대 검열의 후유증을 보여준다. 2부는 “알제리의 유령들”을 찾아 나선 연극인 철수의 이야기를 다루며, 3부에서는 탁오수의 시점에서 철수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4부 남은 이야기에서는 “알제리의 유령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이날 황여정 소설가는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것이 사실인지 탐구하며,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탐구한 과정만큼은 진실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알제리의 유령들’이 칼 마르크스의 희곡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이 사실을 찾아 헤맨 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칼 마르크스가 희곡을 썼다는 게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됐지만, 마르크스의 희곡을 찾기 위해 애쓰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은 사실이다.

황여정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 일부가 책방이듬 앞에 적혀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황여정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 일부가 책방이듬 앞에 적혀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작품에서 철수는 연극인 탁오수에 대해 찾던 중 그가 올린 연극 ‘알제리의 유령들’의 내용이 어느 논문에 인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원본을 읽기 위해 무작정 탁오수를 찾아 알제리에 간다. 철수와 만난 탁오수는 자신이 무대에 올린 희곡은 마르크스가 쓴 원본이 아닌, 마르크스의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말만 듣고 제목만 빌려 새롭게 작성한 희곡이라고 알려준다. 단원들을 놀려주려고 마르크스가 썼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거짓은 곧 사실처럼 퍼지게 되고 그들은 ‘칠현회’라는 불온 조직으로 몰려 잡혀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진실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의해 분명하게 결정되는 것일까? 황여정 소설가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실재하더라도 믿지 않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게 되며, 실재하지 않더라도 믿으면 사실이 된다. 마르크스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작품이라는 탁오수의 말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고, 그의 희곡은 정말로 마르크스의 작품이 되어 논문에 인용까지 되었다.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들만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접했을 때에 알아내려는 의지나 마음, 간절함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진실을 끝내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탐구의 과정이 동반되면 그것을 함부로 거짓이라 말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희곡을 어떻게 떠올리게 됐냐는 독자의 질문에 황여정 소설가는 “마르크스가 알제리에 요양을 떠나고 빅토리아에 머문 것은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도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가 희곡 비평을 했으며, 마르크스 전기를 보면 희곡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덧붙였으며, 이들 부부가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엄청난 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말해주었다. 허구인 부분은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작품의 존재 여부와, 마르크스의 희곡을 필사하여 책을 출간한 릴리의 존재이다.

책방이듬에서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여정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책방이듬에서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여정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황여정 소설가는 이 작품이 “사랑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내 예니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마르크스의 일화를 근거로, 사랑에 대해 보다 내밀하게 다루고 싶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검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이라니? 이는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작중 인물 ‘탁오수’의 삶에 집중하면 납득할 수 있다.

​“알제리의 유령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80년대에 큰 상처를 입거나, 그 후유증이 전달된 후속 세대이다. 탁오수의 오랜 친구인 ‘진정수’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진정수는 탁오수의 연극 “알제리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중에 또 보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지만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작품을 보러 오지 못하게 된다. 정황상 자살로 추정된다. 탁오수는 어린 시절부터 진정수를 보아온 사람으로서 진정수에게, 그리고 진정수의 딸 영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황여정 소설가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심지어 죽어도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반면, 탁오수는 자신의 책임도 아닌데도 미안해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 사진 = 뉴스페이퍼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 사진 = 뉴스페이퍼

이것이 황여정 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순히 어떤 대상 한두 명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된다면 사랑하게 된 대상의 인생 전체와 그 너머까지로 확장하게 된다. 그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을 만날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폭넓게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여정 소설가는 “넌 할 수 있어, 너만 잘하면 돼, 꿈을 이룰 수 있어.” 같은 말들은 모두 약간의 폭력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든 자신이 희망을 잃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지 않은 채 내뱉는 의례적 위로 같기 때문이다. 황여정 소설가는 이런 위로는 되레 모든 일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개인을 고립시킨다고 지적했다.

황여정 소설가가 낭독회를 마치고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황여정 소설가가 낭독회를 마치고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낭독회를 마치며 황여정 소설가는 “우리는 다 누군가를 잃게 된다. 죽음일 수도 있고, 만나서 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 해서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때때로 명확한 사실과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들은 한두 개의 답으로 뭉뚱그릴 수 없다. 명확한 사실과 답이라는 것은 대개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자신이 얼마나 믿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탁오수를 불온 세력으로 몰아 잡아간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은 탁오수에 대해 알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불온세력이길 바라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삶을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날 황여정 소설가는 어떤 대상을 생각할 때 답을 내리기보다는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