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1) 박일환 시인과 함께
[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1) 박일환 시인과 함께
  • 이성혁 평론가, 박일환 시인
  • 승인 2019.04.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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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9년 3월 25일

참석자 : 이성혁(인터뷰어, 문학평론가), 박일환(시인)

 

이성혁 :  박일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성혁입니다. 전엔 자주 뵈었는데 요즘은 자주 뵙지 못하네요. 웹진 <문화 다>에서 4월부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이란 제목으로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다달이 연재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순서로 선생님께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등 뒤의 시간』(반걸음 출간)이라는 시집을 막 출간하셨기 때문에 시집 출간 축하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선생님께서는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시 추천을 받아 등단하셨지요. 이번 낸 시집은 다섯 번째 시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집만 펴낸 게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도 아주 많이 내셨어요. 다년 간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계셨으니까 교육 현장 경험을 살린 교육 서적을 많이 내셨습니다. 제가 선생님 소개를 드리는 것보다는 선생님께서 직접 자기소개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문화 다>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박일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시인을 꿈꾸기 시작해 경희대 국문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흔히 말하는 범생이였고, 사회의식 같은 건 전혀 없었지요. 입학하자마자 문학회에 가입하고 싶어서 마침 신입회원 모집 공고문이 붙은 걸 보고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공고문의 문구가 ‘변혁시대의 문학’이라고 되어 있었다는 건데요. ‘변혁시대’라는 말이 뭘 말하는 건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그보다는 뒤에 붙은 ‘문학’이라는 말만 보고 찾아간 거지요. 그때가 1980년 3월이었습니다. 들어가서 선배들이 처음 읽으라고 권한 책이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면서 문학 공부보다는 사회과학 공부를 시키더군요. 이른바 이념서클이었던 셈인데요. 얼마 안 있어 광주가 터지고, 제 의식 속에도 서서히 운동권 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김지하의 『황토』부터 시작해 김수영, 신동엽, 김남주, 박노해를 비롯해 그 무렵 활동을 시작한 젊은 시인들이 만든 <시와 경제>, <오월시>, <분단시대> 동인들의 작품을 주로 찾아 읽었지요.

대학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마침 부전공으로 들었던 교직과목 덕분에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얼마 후 전교조 창립 조합원이 되면서 해직교사라는 신분을 얻게 됐습니다. 그 무렵에는 교육운동을 위해서라면 문학도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는데, 복직 후에 시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힘에 대해 다시 고민하면서 습작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7년에 비로소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교사와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관련 글들을 쓴 건 제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빚진 게 많아서 조금이나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보려고 했던 거고요. 지금은 교단에서 물러나 이런저런 글들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성혁 평론가

이성혁 : 선생님께서 등단하신 1997년이면 IMF가 시작되는 해군요. 이때부터 한국 사회는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사회로 돌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 90년대엔 문화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그 자유가 허상이었다는 건 IMF로 인해 드러났다고 봅니다. 말씀하셨듯이 선생님께서는 엄혹했던 80년대를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정치적 의식도 뚜렷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등단 이후 선생님께서는 리얼리즘을 지금까지 견지하면서 시작에 임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등단 이전 어떤 시를 쓰고 싶으셨으며 등단 이후 어떤 시를 써오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박일환 : 앞서 말한 것처럼 격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를 거쳐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그런 의식의 연장선에 놓인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시가 딱딱할 수밖에 없었지요. 더구나 교사라는 신분에서 오는 도덕적 강박 같은 것이 내면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법을 몰랐습니다. 등단 전에 교사 문인들과 몇 년에 걸쳐 합평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시는 관념이나 교훈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그런 한계를 돌파하려고 상당히 애를 쓴 편이지만, 여전히 그런 습성이 조금은 남아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문학이 선전 팸플릿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관념에만 기대는 것 역시 문학의 본령에서 어긋나는 태도라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90년대에 개인의 내면을 강조하면서, 80년대 문학과 단절을 시도하는 걸 보고 저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강했습니다. 물론 90년대 문학으로부터 언어를 부리는 기술이나 틀에 박힌 상상력의 틀을 깨는 힘 같은 건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대를 뚫고 나가는 언어가 아니라 시대를 외면하는 언어는 거짓 위안 혹은 자기 기만에 가까울 수밖에 없으리란 판단을 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시대에 밀착한 작품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건데요. 그런 점에서 기존의 언어와 낡은 형식에 기대려는 안이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리얼리즘은 특정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라고 할 때, 그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을 어떻게 빚을 것인가 하는 점은 저에게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박일환 시집 등 뒤의 시간 표지
박일환 시집 등 뒤의 시간 표지

이성혁 : 아마 말씀하신 리얼리즘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인으로서 사회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신 듯합니다. 사회참여적인 문학 집단 <리얼리스트 100> 활동도 열심히 하셨죠. 『등 뒤의 시간』에도 나오지만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장에 결합하시거나 ‘희망버스’에도 참가하셨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현장에 문인들이 어떻게 결합해왔는지 간단하게나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일환 : 시인은 작품으로만 말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거짓 주문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언어라는 건 내가 발명한 게 아니고 뭇 대중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의 삶을 일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생생한 언어로부터 멀어질수록 문학은 관념과 자족의 울타리에 갇히게 될 겁니다. 내가 모르는 걸 말할 수 없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사는 곳,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을 직접 도울 수는 없지만 그들이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잘 쓰는 사람 이전에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얼리스트100>이라는 문학 집단을 만들어 활동했던 건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벗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지금은 내부동력이 떨어져 활동을 중지하게 됐는데, 언젠가는 비슷한 집단이 새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성혁 : 그러면 시집 『등 뒤의 세계』의 시세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해설을 쓴 노지영 평론가도 시집 맨 처음에 실린 시 「핥아주는 혀」를 언급하면서 해설을 풀어가던데요, 저도 첫 장을 열자마자 읽게 된 이 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짧으니까 전문 인용할 수 있겠는데요,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을 위해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갓 태어나 송아지를 혀로 핥아주는
어미 소의 축축한 논망울 속에서
새끼 소가 천천히 뒷다리를 일으키고 있다

 

혀의 쓸모는 말을 할 때보다 핥아줄 때 더 빛난다

이 시는 선생님의 시론격인 시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지영 평론가도 그렇게 보았던 것 같고요. 어미 소가 새끼 소를 핥아주는 것과 같은 시 쓰기. 결국 시인도 말을 하는 자이니까 그의 혀는 저 어미 소처럼 빛날 수는 없겠지만, 해당 구절은 그 어미 소의 마음으로 혀를 써서 말을 하겠다는 선생님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작가께 작품을 해설해달라고 질문하는 것이 좀 어리석은 일일 수 있겠지만, 작가와의 대담이니까 이 시와 관련해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의 역할에 대해 질문 드릴게요. 

박일환 :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본질이나 진실을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만 본질이나 진실의 일단을 보여주거나 그쪽으로 향하는 입구를 제시해 줄 수 있을 뿐이죠. 그래도 작가들이 계속 글을 쓰면서 헛된(?) 작업을 이어가는 건 본질과 진실의 밑바닥에 도달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꿈을 포기한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언어, 더 좋은 언어를 탐색하면서 지금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거죠. 하지만 세상은 날로 비인간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고, 진실을 가리는 오염된 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터넷만 조금 들여다봐도 온갖 차별과 혐오의 말이 넘치는가 하면 정치인들의 말에서는 품위라는 것조차 찾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 삶의 양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미투 국면에서 진보 인사나 예술가들의 추악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게 그런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는 저는 정의로운 말보다 공감과 연민의 말이 훨씬 소중하고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신동엽 시인이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워가자고 한 건 아마도 그런 뜻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올바른 언어를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내 곁에 있는 수많은 너를 끌어안고 핥아주거나 같이 아파해주는 울음과 같은 언어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성혁 : 이 시집의 좋은 작품 중에서 표제작인 「등 뒤의 시간」이 제겐 특히 좋은 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시의 뒷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새순이 돋는 건/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기도 하지만/그 앞에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는 걸/슬쩍 밀쳐내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새 생명의 탄생만 주목하지만 생명의 탄생 뒤에 있는 죽음들은 외면합니다. 이 시를 읽고 우리가 얼마나 죽음들에 대해 무심했던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이 시를 표제작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박일환
박일환 시인

박일환 :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다른 말로 발전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눈부신 기계문명의 발전 이면에 가려진 수많은 고통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발전이란 게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 김용균 청년의 죽음이 큰 충격을 주었지만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속도에 대한 숭상, 편리함과 쾌락만 추구하는 온갖 욕망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그런 욕망의 덫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헛된 희망을 속삭이는 거짓 언어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 있다고나 할까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된다는 설화가 애초에 전승된 의도와는 달리, 우리 모두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불안감을 조성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우리에게 계속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앞만 보아서는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뒤돌아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봐야 똑바로 왔는지, 지그재그로 방황하며 왔는지, 혹은 엉뚱한 길로 왔는지, 나아가 길 중간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웃들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그렇게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독자들이 제 시를 읽고 잠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성혁 : 이 시집에는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시들이 적잖이 보입니다. 특히 학생들이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비판하고 마음 아파하시는 시들이 눈에 띄는데요, 다섯 편의 「정글시대 약사」 연작이 그러한 현실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가하고 있는 시들입니다. 중고등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 내몰려 “생기를 잃어버리고 마는”(「정글시대 약사 2」)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교직 생활을 하시면서 보아 왔던 여러 문제들, 특히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겠죠.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 겪으신 경험이나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박일환 : 현대 사회는 모든 걸 숫자로 환산해서 평가하는 체제로 만들어 왔습니다. 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교원능력평가라는 걸 실시해서 일정 점수를 얻지 못하면 재교육이나 퇴출을 시키고, 성과급 역시 업무평가 점수를 가지고 3단계로 나누어 차등지급합니다. 결근이나 조퇴 횟수, 연수 이수한 시간, 맡은 업무 등을 가지고 점수를 매기는데,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이들과 얼마나 친근하게 지냈는지 같은 건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 다른 직종은 모두 경쟁을 하는데 교사들은 왜 경쟁 대상에서 빠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반 기업의 경쟁 시스템은 괜찮은 건가 하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이 강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작년에 대입제도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결국 정시 비중을 높이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정시 비중을 높인다는 건 수능을 강화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결국 사교육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돈 많은 집 아이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로 강연을 간 적이 있는데, 그 학교에서는 정시로 대학을 가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수능으로는 도저히 대도시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거였어요. 결국 대입 문제에서 발언권이 큰 집단은 기득권을 가진 집단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계층에서도 수능이 제일 공정하다는 잘못된 신화에 물들어 있다는 겁니다.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포도 농장에서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급하는데, 농장 주인이 오후에 온 사람에게도 오전부터 와서 일한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주더라는 거죠. 사람들이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농장주에게 항의하자 예수는 농장주 편을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늦게 온 사람에게도 집에 딸린 식구들이 있고, 그들을 먹여 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은 품삯을 주는 게 당연하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요. 공정함에 대해 다른 시각을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기계적인 공정함이 아닌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진정한 공정함일 수 있다는 생각이 폭넓게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점수와 서열로 모든 것을 가리려는 방식은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멉니다.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저마다 기숙사를 짓고 있습니다. 집에서 통학을 할 수 있는 학생들도 기숙사에 들어가려 하고, 부모들도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선호합니다. 고등학생들에게 기숙사가 꼭 필요한지 역시 묻지 않습니다. 기숙사에 붙잡아놓고 엄격한 규율에 따라 학생들을 관리하면 대학 진학률이 높아질 거라는 믿음만 붙들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모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고학년이 저학년을 지도하게 규칙을 만들었다가 저학년 학생이 고학년 학생에게 맞아 숨진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 대학교수가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성혁 : 방금 드린 질문과도 연관되는 질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이제 4월이네요. 세월호 5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시집에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시편들이 있는데요, 「팽목항에서」라는 시가 제겐 뜨겁게 다가왔습니다. “누가 죽였는가?/끈질기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선생님께서는 쓰셨어요. 그리고 슬픔과 분노와 참회는 바로 “누가 죽였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해야 하고, 그렇게 “물으면서 가는 길에 당신을 만나” “함께 물어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마음을 찌르는 구절이었습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진상조사에 저 물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저 물음을 지금도 여전히 품고 계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니 현재 선생님께서는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폭 넓게 질문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박일환 : 당연히 물음을 품고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를 껍데기로 만들었던 세력이 있고,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 역시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정말 성역 없는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염려를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추모공원을 만드는 일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걸 보며, 암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김용균 청년의 죽음은 더 이상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 사회를 굴려 가면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이자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명령에 응답할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제 판단입니다. 말로만 생명과 안전을 외칠 게 아니라 제도와 의식으로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물론 아무리 멀고 험해도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러자면 시민사회의 토대가 더 넓고 단단해져야 합니다. 거기에 작가들도 당연히 힘을 보태야 하고, 작가들 스스로 자각된 시민의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작가이기 전에 시민이라는 걸 분명히 인식할 때,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혁 : 세월호 참사, 그리고 김용균 청년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한국 사회 전반이나 국가에 대한 거시적인 비판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의 정치적 참여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요즘은 많이 수그러졌지만, 시와 정치에 대한 담론이 문단에 무성했습니다. 시와 정치 담론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고, 또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박일환 : 삶과 관계된 모든 행동과 태도를 정치라고 한다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선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도 하나의 커다란 제도라고 할 때, 모든 제도는 억압을 전제로 하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도와 마주해서는 대화가 아니라 제도 자체를 깨뜨리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건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말과도 통하는 걸 텐데요. 작가들이 정치에 대해 말한다면 그건 지금과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식의 말을 하면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닌가, 혹은 아나키스트가 되라는 건가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군요. 하지만 깨뜨리지 않고 새로운 걸 만들 수는 없다는 점에서 저는 비판적 이성을 갖추는 일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새로운 세상의 싹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상상력의 뿌리도 현실이라는 땅에 깊게 내려야 합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언어는 힘을 잃고 맙니다. 아무리 휘황한 광채를 뽐내는 말도 그저 장식용 언어 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학과 정치라고 할 때 작가가 정치적 발언을 하라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려니와 작가가 직접 현실 문제에 개입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참여시나 목적시를 쓰라는 말은 더욱 아니고요. 모든 시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여시라는 용어 자체가 지닌 협소함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낡은 것과 이별하기, 부정의 정신을 벼리기, 이런 것들이 저는 문학이 정치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학은 정치적입니다. 기존 질서에 복무하거나 강화하는가, 반대로 기존 질서에 저항하거나 깨뜨리는가에 따라 정치성의 색깔이 결정되는 거겠죠. 물론 이때 질서라는 게 반드시 거대 구조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부딪치는 무수히 많은 거미줄 같은 것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꿔내는 게 정치제도를 바꿔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성혁 : 정치성에 대해 폭넓고 근본적으로 생각하시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선생님의 독특한 혁명관이 조금 이해가 될 듯합니다. 이 시집에는 한국 역사에서 스러져간 혁명가들을 잊지 않고 호명하는 시도 눈에 띄는데요, 혁명에 대한 사유를 궁글리는 시편도 있고요. 이런 시편들을 보면 어떤 혁명의 비전을 통해 선생님 시의 사회 또는 국가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능소화」가 그러한 비전을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저는 이 시집의 대표작 몇 편을 꼽으라면 이 시를 꼭 집어넣겠습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았을 때, 화자는 능소화에서 관능을 느끼고 “관능적인 혁명과 혁명적인 관능에 대한 생각을 궁글”립니다. 그리고는 “혁명은 고독한 것”이라는 김수영의 정의와는 달리 “혁명은 서로 눈멀게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계세요. 시의 마지막에는 “악착같은 관능만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눈빛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절을 남기십니다. 이 구절이 무척 제겐 강렬했습니다. 시에 표현된 선생님의 혁명에 대한 비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박일환 : 관능이라는 말은 매혹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을 텐데요. 둘 다 강렬함과 끌림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궁극이 바로 이런 지점에 맞닿아 있는 거 아닐까요? 시에서도 썼지만 능소화 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먼다는 말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두려워서 능소화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자리에서 사랑과 혁명이 싹 트는 거라고 생각해 보았어요. 강렬한 끌림을 외면하지 않고 다가가는 마음, 비록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말이죠. 그럴 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거겠죠. 

최근에 변홍철 시인이 펴낸 시집 『사계』를 펼쳐보던 중 시인의 말 마지막을 ‘사랑의 영구혁명을 위하여’라고 해놓은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혁명의 바탕은 사랑이며, 혁명도 사랑도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진짜 사랑, 진짜 혁명이라는 생각을 가만히 다시 새겨 봅니다. 

이성혁 : 이젠 대담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은 것은 현재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듣고 싶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시가 어떻게 나가면 좋겠는지 선생님의 ‘희망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후자의 질문은 선생님의 시작(詩作) 방향에 대한 질문도 되겠습니다.

박일환 : 앞에서 너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도 앞에서 웬만큼 이야기를 한 듯하고요. 한국 사회 혹은 한국 문단의 문제점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짧게 제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작업에 대한 이야기만 할까 합니다. 이번 시집 앞에 붙인 시인의 말에서 제가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결합보다는 분리에 집중해야겠다는 말을 했는데요. 저는 우리 사회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비정상적인 결합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지점들에 대한 사유가 필요할 것 같고, 능력껏, 조금씩,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성혁 : 그 말씀 저도 시집에서 읽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다시 질문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요. 하지만 이미 많은 질문을 내놓고 많은 답변을 하신 터라 여기서 인터넷 대담을 마치는 걸로 하겠습니다. 숙고할 만한 여러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구요, 그럼 오프라인에서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위 인터뷰는 웹진 "문화 다"에서 진행한 것으로, 웹진 문화 다와 뉴스페이퍼가 공동으로 게시하였습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power_interview&ps_boid=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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