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연극 “리더스", 검열 앞에서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책 읽어주는 연극 “리더스", 검열 앞에서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4.10 00:57
  • 댓글 0
  • 조회수 10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깝바니 역할의 홍수영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깝바니 역할의 홍수영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19세기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상인 아부깔리 알 깝바니는 서양에서 연극 ‘꼬미디 데 라르떼’를 보고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리아에는 그림자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리아로 돌아온 깝바니는 사람들에게 연극을 선보였고 극장 내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난입하여 괴한들을 무찌르고 주인공을 구출해낸 것이다. ‘연극’은 당시 시리아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보수주의자들은 서구 연극이 위협이 된다고 느꼈고 오스만제국 정부는 시리아에서 연극 공연을 금지시켰다.

시리아에서 사람들이 무대 위에 난입하여 주인공을 구출해낼 때 깝바니나 다른 연극 예술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래, 이거야!”, “됐다!”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이전까지 시리아에는 외설적인 내용의 그림자극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극이라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엄혹한 상황 속에서 연극은 불온한 것, 불순한 것으로 취급 받고 금지되기에 이른다.

유니스 역할의 길정석 배우(좌)와 핫산 역할의 고현준 배우(우)가 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유니스 역할의 길정석 배우(좌)와 핫산 역할의 고현준 배우(우)가 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3월 공연을 시작한 책 읽어주는 연극 “리더스”는 깝바니의 일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극단 ‘종로예술극장’의 성천모 연출가가 연출 및 작품 집필을 했으며 이양호, 홍수영, 고현준, 길정석 배우가 출연했다. 

종로예술극장은 깝바니가 극을 올렸을 장소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장소이다. 이곳에는 뚜렷한 무대 대신 두런두런 앉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놓여 있다. 어디서 공연이 진행되는 걸까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한 명의 배우가 나와 커피 한 잔을 내어준다. 커피를 마시면서 극장 내부에 꽂힌 수천 권의 책들을 읽을 수도 있다. 관객들이 한 권, 두 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할 때 즈음 불이 꺼지고 카페와 같던 공간을 가로지르며 연극이 시작된다. 

극단 "종로예술극장" 공간. 사진 = 육준수 기자
극단 "종로예술극장" 공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리더스”는 연극이 금지된 시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극단의 일원인 깝바니, 핫산, 유니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은 극장 내부에 막 하나를 쳐놓고 그곳에서 인형극을 진행하고 있다. 남녀의 사랑을 어떻게 더 농밀하고 외설스럽게 표현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의 안에는 사회의 불안 등을 연극으로 선보이고 싶은 욕구가 잠들어 있다. 

외설적인 인형극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외설적인 인형극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핫산은 강경하게 연극을 무대에 올려 국가에 잡혀간 ‘하킴’을 동경하여 극단에 들어온 인물이다. 핫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끔찍하게 여기고 있으며 잡혀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깝바니는 당장 목숨을 잃게 되면 조금이라도 있는 미래의 가능성이 날아갈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워한다. 

둘의 대립이 커질 때 유니스는 관객들을 모아두고 “책을 읽어주자”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연극이나 외설이 아닌 ‘책을 읽어준다.’는 방법으로 관객의 마음속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처음 핫산과 깝바니는 이 제안을 듣고 의문을 느낀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줄 수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 ‘읽어준다’는 행위가 관객들 스스로 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그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려 사회적 부조리함을 알게끔 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니스 길정석 배우가 관객들에게 책을 읽어주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유니스 길정석 배우가 관객들에게 책을 읽어주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작품에서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성천모 연출가는 “책 한 권에는 한 사람 삶의 액기스가 녹아 있다.”며 “그 하나의 우주가 사람을 접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체험이며, 타인을 알게 해주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연극의 제목인 ‘리더스’ 또한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reader‘s가 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을 이끌어준다는 의미에서는 leader’s가 된다. 작중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행위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킴 역할의 이양호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하킴 역할의 이양호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연극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발하고 이겨낼 힘을 준다는 것이 성천모 연출가의 생각이다. 연극이 좋은 판타지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연극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면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역할을 할 때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천모 연출가는 극단을 만들고 연극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한 일은 시위 현장에 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여러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시위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성천모 연출가는 연극 ‘리더스’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성천모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성천모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종로예술극장이 선보인 ‘책 읽는 연극’은 사회적 문제에 맞서는 ‘연극에 대한 연극’인 동시에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천모 연출가는 연극인의 경제자립도가 낮아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연극인들이 “지속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창조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됐고 지금 종로예술극장과 같은 독특한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천모 연출가는 자신들이 한 행동이 현재도 카페와 갤러리, 복합 문화공간에서 노력하고 있을 젊은 예술가들에게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책 읽어주는 연극 ‘리더스’의 공연은 오는 4월 28일까지 이어지며 인터파크 및 네이버에서 예매할 수 있다. 관람료는 2만 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