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거부한 한국계 미군의 망명 과정을 추적하다... 이대환 장편 “총구에 핀 꽃” 출간
베트남전 거부한 한국계 미군의 망명 과정을 추적하다... 이대환 장편 “총구에 핀 꽃” 출간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4.1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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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군 탈주병 김진수에 대한 당시 언론보도.
한국계 미군 탈주병 김진수에 대한 당시 언론보도.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1967년 4월 주일쿠바대사관에 한국계 미군 탈주병이 망명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릭스, 한국 이름으로는 ‘김진수’이다. 김진수는 한국에서 출생한 고아로 한국전쟁 시기에 미국인에게 입양됐다. 청소년기를 거쳐 미군이 되었으며 베트남전에는 타이피스트 특기병으로 참전했다. 망명을 신청한 것은 참전 6개월 뒤 휴가를 나왔을 때이다. 그러나 망명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진수는 쿠바 대사관에서 유배되다시피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김진수는 작가이자 운동가인 ‘오다 마코토’의 도움을 받아 소련으로 건너가고, 이후 다시 스페인으로 이동한다. 

베트남전을 거부하고 망명을 택한 김진수의 삶을 각색해 소설로 만들어낸 작가가 있다. 이대환 작가는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에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의 길을 걸어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총구에 핀 꽃”이 ‘아시아 문학선 제21권’으로 출간된 가운데 8일에는 설가온에서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대환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대환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대환 소설가는 1980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장편소설 현상 공모에 당선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조그만 깃발 하나”와 “생선창자 속으로 들어간 時”, 장편소설 “새벽, 동틀 녘”, “겨울의 집”, 저서 “박태준 평전”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소설 “총구에 핀 꽃”은 김진수의 삶을 모티브 삼아 만든 가상의 인물 ‘손진호’의 삶을 추적한 작품이다. 작중인물 손진호는 실제의 김진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고아라는 점은 같지만 정 붙일 데 없던 김진수와 달리 손진호는 송정원(송정수녀원과 송정고아원 통칭)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에는 물질적 욕망을 절제하고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히피 문화에 심취했으며, 베트남전에는 타이피스트 특기병이 아닌 첨병분대 전투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그려진다. 손진호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큰 고통을 느끼고 고민한다. 

소설은 현재의 손진호와 과거의 손진호를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의 손진호는 스웨덴 말뫼에 살고 있는 73세 노인이다. 그는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난 뒤 자신의 옛 사진이 실린 오래된 시사지를 아들에게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의 현장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진으로 총구에는 히피를 상징하는 한 송이 꽃이 꽂혀있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손진호가 안고 있는 후회의 감정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손진호의 아들 손기영은 손진호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며, 그 안에서 ‘과거의 손진호’가 등장한다. “총구에 핀 꽃”은 전쟁의 현재와 이후를 액자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총구에 핀 꽃". 사진 = 뉴스페이퍼
소설 "총구에 핀 꽃". 사진 = 뉴스페이퍼

이대환 소설가는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오다 마코토와의 만남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다 마코토는 일본의 작가로 한국 유신독재 시절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 시인을 구하기 위해 지식인 국제연대를 조직했으며, 1960년대에는 베트남 평화를 위한 시민연합 ‘베헤이렌’을 이끈 인물이다. 이대환 소설가는 과거 오다 마코토와 만나 포항에 갔을 때 김진수를 소련으로 탈출시켜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대환 소설가는 “그때 저는 김진수라는 사람을 가슴에 넣고 살았다.”며 “마치 오래 만나지 못할 연인, 친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진수에 대한 이대환 소설가의 탐구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거대한 전쟁 앞에서 김진수는 그저 무력한 한 개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대환 소설가는 전쟁의 아픔과 어려움을 논할 때 ‘과연 이 개인을 떠나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정한 평화를 이야기하려면 그 안에 놓인 작은 개인을 떠나서는 안 된다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대환 소설가는 ‘송정원’이라는 장소를 적극적으로 등장시켰다. 손진호는 한국전쟁 피난길에서 포탄을 맞아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는 전투에 나가 생사불명이다. 그러던 중 수녀의 지갑을 탈취하다 붙잡히게 되고 그 인연으로 바닷가마을의 고아원 겸 수녀원인 ‘송정원’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는 흰 수염과 푸른 눈을 가진 프랑스 출신 신부와 수녀들, 고아원 친구들이 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송진호에게는 평화의 공간, 고향의 공간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송진호는 한국으로 돌아와 신부의 묘소 앞에 꿇어앉는다. 전쟁에서 멀리 벗어나고자 했던 개인에 불과했던 송진호가 다시금 자신의 마음이 머물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경재 문학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경재 문학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해설을 쓴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을 소설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손진호라는 인물이 단순히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을 거부한 히피가 아니라, 중국이나 소련 등의 공산주의도 거부한 것이 주목할 만 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을 떠나 스웨덴에 갔다는 기록 뿐인 김진수에 반해, 소설 속 손진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점을 짚으며 “이 소설은 ‘귀향한 소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진호가 되돌아온 ‘송정원’이 현실에 구현된 인류 평화의 땅을 의미하며, 평화를 의미하는 작가의 마음을 잘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대환 소설가는 행사를 마치며 이 작품을 쓴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는 “김진수 씨가 이 소설을 읽고 연락해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오다 마코토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전했다.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출발한 아시아 문학선은 소설 “총구에 핀 꽃”까지 총 21권이 출간된 상태이다. “총구에 핀 꽃”은 한국작가의 소설로는 처음으로 시리즈에 수록됐으며, 아시아 출판사는 앞으로 한국 작가의 장편소설과 창작집도 엄선하여 넣을 계획이다. 또한 제22권으로는 일본 오키나와의 작가 ‘메도루마 슌’의 장편소설 “무지개 새”를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