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신동엽 50주기... 신동엽학회, 신동엽 문학의 진가 재인식하는 ‘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 성료
2019년은 신동엽 50주기... 신동엽학회, 신동엽 문학의 진가 재인식하는 ‘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 성료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4.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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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 '따로 다르게 - 새로 읽는 신동엽문학'이 열린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 [사진 = 김상훈 기자] 
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 '따로 다르게 - 새로 읽는 신동엽문학'이 열린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19년은 신동엽 시인의 50주기가 되는 해로, 신동엽 시인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연중 계속된다. 4월 5일 금요일에는 신동엽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신동엽학회가 주관하는 ‘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 – 따로, 다르게, 새로 읽는 신동엽 문학’이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에서 개최됐다.

신동엽 시인은 대중들에게는 ‘껍데기는 가라’를 쓴 시인, 민중의 저항 의식을 시로 형상화 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문단에 나왔다. ‘껍데기는 가라’ 외에도 서사시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1968년 발표한 ‘금강’은 1894년의 동학혁명과 당대를 잇고 과거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음을 지적한다. 최원식 평론가는 “이 서사시의 출현을 계기로 비로소 근대주의의 환상을 거절한 민족문학, 민중문학의 흐름이 1970년대 이후 도도한 대세를 이루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행사를 주관한 신동엽학회는 2009년 신동엽 시인의 40주기를 기념해 결성되었으며 지난 10년 동안 신동엽 연구는 물론 대중들에게 신동엽 시인을 알리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번 학술대회는 신동엽 시인의 위치를 확인하는 연구부터 젊은 연구자들이 바라본 신동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발표됐다.

인사말을 전하는 창비 한기욱 주간 [사진 = 김상훈 기자] 
인사말을 전하는 창비 한기욱 주간 [사진 = 김상훈 기자] 

행사에 앞서 인사말을 전한 창비 한기욱 주간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서구중심의 문학관과 역사관, 주류담론의 관점을 넘어 새로이 신동엽문학을 조명할 것이라 기대한다.”며 “특히 신동엽문학이 촛불혁명을 겪고 난 이후 더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촛불혁명의 빛과 기운으로 신동엽 문학의 진가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엽기념사업회 강형철 이사장은 “올해는 신동엽 시인이 돌아가신 지 50주기가 되는 해인데, 돌아가신 행사 자리는 추모의 성격이 크겠으나 신동엽 시인은 저희가 사는 오늘날에도 도움을 주는 분으로 여전히 살아계신다.”라며 “50주기 추모 행사가 아니라 50주기를 맞아 신동엽 시인과 함께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학술대회를 축하하고자 백낙청 평론가, 신동엽 시인의 아들인 신좌섭 교수, 역대 신동엽학회 학회장 등이 자리하였으며, 1부 발표는 강형철, 김형수가, 2부 발표는 김윤태, 이대성, 김희정, 한상철이 맡았으며 종합토론에는 오창은, 최현식, 박은미, 김진희, 박수연이 참여했다.

 - 강형철 교수, ‘한반도 문학에서 신동엽 시인은 맨 첫 위치에 있어야 할 분’

첫 발표는 강형철 교수(숭의여대)가 맡아 통일문학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문학’에서 신동엽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먼저 “한반도가 통일에 이르고 한반도문학이 자리한다면 맨 처음 위치에 있어야 할 분은 신동엽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다.”라며 “남과 북의 자리와 지향을 전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발표 중인 강형철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강형철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강형철 교수는 세월호 천막이 사라진 광화문 광장에 ‘주한 미군 철수 반대’나 ‘종전선언 결사반대’라는 글자가 펄럭이는 것을 보며 “세월호나 분단이나 전쟁은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한국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제시했다. 한국이 분할된 큰 계기였던 3.8선을 긋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미국이었으며, 미국은 자본주의 확장과 확보를 위해 동아시아에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고, 독립이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강형철 교수는 미국에게 한국은 “점령의 대상이었기에 적으로 여겼고, 적으로 여겼기에 민주주의 운동, 자치운동에 결사반대했으며 분쇄하려는 것이 기본태도였다.”며 “47년 3월 1일 벌어졌던 사건의 실제 책임은 미군정에 있으며, 48년 4.3사건으로 살육이 일어나는데, 살육을 저지른 정부를 만든 것은 미국이었다.”고 지적했다.

강형철 교수는 “이런 지점들을 생각하면 미국에 대해 우리 문학이 어떤 대항을 해야 할 것인가는 가장 큰 화두라 생각한다.”며 “신동엽의 문학을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새 세상으로 이어나가는데 키워드로 삼아 생각해보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신동엽 시인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부여가 북한에 점령당하자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을 맡게 된다. 1950년 7월 10일부터 9월 하순까지 부여인민위원회의 선전선동부에서 일했는데 부여가 수복된 후에는 산으로 피신했고, 이후 국민방위군에 입대했다가 국민방위군 사건이 터지자 떠돌이 생활을 하다 부여로 돌아온다. 몇 차례 조사를 받고 입건되지는 않았지만 학도호국단이나 대한청년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했으며, 국민방위군 때 얻은 간디스토마와 폐디스토마로 인해 1969년 사망하게 된다.

​강형철 교수는 신동엽의 행적과 데뷔작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아사녀” 판본 및 조선일보본과 투고본을 보완해 살펴보며 신동엽 시인이 한국전쟁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비극을 극복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데뷔작인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이 한국전쟁을 매개로 쓰여진 것이며, 전쟁의 극복이 무엇인가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6개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1화에서는 운명적인 남자와 여인의 만남의 이야기가 형상된다. 강형철 교수는 이를 문명이 시작되고 사적 소유제도가 생기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큰 체제로 체계화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보았다. 2화부터는 싸움의 풍경과 전쟁의 실상을 이야기하며 “까마귀는 내려와 선달이 가슴 위에/구데기를 쪼아서 주둥일 닦을게고/장군님의 존안 위에 평소히 앉아서 눈알을 빼먹고선 갸웃거릴 것이다.” 등으로 표현한다. “성자 종주의 이름으로/국가와 인류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모든 세련된 미덕의 이름으로 강제와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이십억 점잖은 병신들이여” 같은 부분은 전쟁에 가담하는 외세, 특히 미국을 겨냥한 표현으로 읽혀진다고 보았다.

강형철 교수는 “이미 종결되어 굳어지면서 서로에게 증오와 적대감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지금 당장의 증오를 거두고 눈을 들어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볼 것을 권유하며 새로운 세계인식을 촉구하는 시”라고 평했다. 이어 “신동엽 시인이 한국전쟁의 실질적 상징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극복한 상징이 되지 않는가. 그런 이야기들이 앞으로 여러 형식으로 변주될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 김형수 평론가, ‘신동엽은 영성적 해방 갈망했다’

김형수 평론가는 “신동엽의 고독한 길, 영성적 근대”에서 신동엽이 영성적 해방을 갈망했다고 보았다. 김형수 평론가는 신동엽이 서양이나 동양의 정전이 아니라 토착적 정전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고 보았으며, 신동엽이 남긴 수많은 시들에서 ‘생명의 모심’을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형수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김형수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신동엽은 동학혁명에서 3.1운동을 거쳐 4.19에 이르는 서사에도 ‘껍데기’가 있다고 보았다. 신동엽이 알맹이로 지목한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서사시 금강’에서 “자연과 생명의 힘에 용해된 토착적 영성”으로 노래된다. 김형수 평론가는 “신동엽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여성해방, 흑인해방 등 자아를 극대화하는 각종 정치적 기획들 속에서 자아의 극복, 자연과 합치를 잃지 않는, 즉 ‘구도(求道)’와 ‘구세(救世)’가 함께 가는 영성적 정치를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신동엽이 지향한 영성적 해방은 김수영과는 다른 근대를 걷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동엽은 서구적 근대가 “‘전문화된 분야들의 동굴’ 속으로 인간을 몰아넣는, 탄생의 순간부터 이미 몰락의 씨앗을 안고 있는 불행한 상극(相剋)의 현장”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신동엽은 영성적 관점에서 문명비판과 오래된 미래를 재조명하되, ‘봉건’이 아니라 ‘반봉건’을 지향했다. 김형수 평론가는 “신동엽이 그토록 선망해온 선배시인이 김수영이었고, 또 김수영의 총애와 충고를 안고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동엽은 김수영의 서구적 근대, 이성 중심의 근대를 따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형수 평론가는 신동엽의 영성적 근대를 주목하는 까닭은 현재에도 신동엽의 비판이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특히 문명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고립감 속에 놓이는 상황에서 각각의 자아가 타자와 연결되는 ‘회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신동엽의 영성적 근대에서 모색하고자 했다.

또한 분단 이후 정치체제가 야기한 정신사적 결여는 자생적 근대의 소멸과 영성적 요소의 소진으로 이어졌다고 보았으며, “미래를 향한 토작적, 자생적, 영성적 고민”이 없었던 것이 우리 지성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제를 제기했다.

- 신동엽 산문전집 편찬 과정 이야기한 김윤태 문학평론가

신동엽 산문전집의 편집에 참여한 김윤태 문학평론가는 “신동엽 산문전집의 위상”이라는 제목으로 산문전집을 편찬하는 과정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산문전집은 크게 3부로 나뉘어 1부에는 시극과 오페레타가 포함되었다. 2부는 평론 17편이 3부에는 수필이 수록됐으며 4부에는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쓴 일기, 5부는 부인인 인병선 여사와 주고받은 편지, 6부 제주도 기행문, 7부 라디오 방송대본이 묶였다.

발표 중인 김윤태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김윤태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김윤태 평론가는 1부에서 오페레타 ‘석가탑’을 엮을 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첫째는 ‘석가탑’의 정본을 확정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현진건 소설 ‘무영탑’과의 관계였다. ‘석가탑’의 판본은 “전집” 수록본과 신동엽문학관에 소장된 필경등사본 두 종류인데 어떤 판본을 정본으로 볼 것인가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윤태 평론가는 ‘석가탑’의 교열을 담당했던 편자인 강형철 시인이 “전집” 수록본을 정본으로 간주하자고 하여 “신동엽 산문전집”에는 “전집” 수록본의 ‘석가탑’이 수록되게 되었다.

​‘석가탑’에는 ‘무영탑’의 것을 그대로 혹은 유사하게 가져온 부분이 있었으며 신동엽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석가탑’이 ‘무영탑’의 표절이냐 아니냐는 고민 또한 발생했다. 김윤태 평론가는 “‘석가탑’과 ‘무영탑’이 각각 오페레타와 장편소설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이라는 점과, 신동엽이 ‘무영탑’의 서사를 차용하면서도 현진건과는 다르게 ‘아사달-아사녀 설화’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던 창작의도에 주목했다.”며 “산문전집”에 ‘석가탑’을 수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필은 육필원고와의 대조 과정을 통해 기존의 “전집” 및 “젊은 시인의 사랑”에서 나타났던 오류를 수정했으며, 특히 일기는 누락된 것들을 발견했으나 지나치게 사사롭거나 넋두리에 불과한 내용들이 많아 오류를 수정하는 선에서 그쳤다고 설명했다. 편지 또한 “젊은 시인의 사랑”에 수록된 것들을 교정하는 선에서 정리했다.

​“산문전집”에는 새로운 자료로 라디오방송 대본과 평론 ‘시 정신의 위기’, ‘만네리즘의 구경’, 석림 신동엽 실전 연보를 수록했다.

​라디오방송 대본은 ‘내 마음 끝까지’라는 프로그램의 대본 22편으로, 김윤태 평론가는 “이 방송 대본은 전통적인 문학 장르 바깥의 글쓰기라는 점에서도 흥미롭거니와, 라디오방송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구술성이 강한 장르라는 점에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로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론 ‘시 정신의 위기’는 1961년 발표된 모 시인의 작품이 신동엽의 등단작의 시구를 표절했음을 폭로하는 글이다. 신동엽이 발표하지 않았기에 묻혀있었던 글로, 김윤태 평론가는 이를 굳이 새로 찾아내 실은 까닭을 “당시의 문단 상황과 표절에 대한 신동엽 시인의 고뇌와 갈등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네리즘의 구경’은 ‘시 정신의 위기’를 제목과 논지를 다르게 바꿔 쓴 글로, 총 13장 중 5~8장, 10장이 빠져있었으나 5~8장이 작품 인용으로 보이고, 10장은 문맥상 오류, 정도로 보여 대부분 복원하였다고 밝혔다.

​석림 신동엽 실전 연보는 신동엽이 청년 시절 문학적 동지였던 노문이라는 사람이 남긴 증언(1993년)으로, 신동엽의 좌익 및 빨치산 활동 경력에 대한 기록이자 청년 신동엽의 교우관계를 짐작할 대목이 있는 자료다. 김윤태 평론가는 이 자료가 흥미로우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며 “내용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 자료는 청년 신동엽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될 만한 귀중한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전했다.

​김윤태 평론가는 이밖에도 신동엽이 지향했던 아나키즘 사상과 생태적 상상력을 ‘석림 실전 연보’, ‘금강’, 신동엽의 일기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발표 후 토론이 이어졌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후 토론이 이어졌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이날 학술대회에는 이밖에도 이대성(서강대 박사 수료)의 “신동엽 문학에 나타난 인유 양상 연구”, 김희정 “사건에의 충실성과 빼기의 정치 – 신동엽의 후기 시를 중심으로”, 한상철 “신동엽 시의 ‘백제’ 그리고 ‘동학’ - ‘아사달’과 ‘아사녀’의 변주 양상을 중심으로”가 발표됐다. 발표 이후에는 종합토론이 이어졌으며 종합토론에는 발표자들과 오창은, 최현식, 박은미, 김진희, 박수연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한편 신동엽기념사업회는 2019년 한 해 동안 지속해서 신동엽을 기억하는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6월과 10월에는 서울과 부여에서 각각 인문기행이 진행되며, 또한 50주기 문학제를 통해 그림전, 음악회,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신동엽학회 기념사진 촬영 [사진 = 김상훈 기자]
신동엽학회 기념사진 촬영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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