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서사학회, SF 학술세미나 개최... 인간을 매혹한 감정 기계와 포스트 휴먼의 취약성
대중서사학회, SF 학술세미나 개최... 인간을 매혹한 감정 기계와 포스트 휴먼의 취약성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4.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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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서사학회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중서사학회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과학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며 SF 장르 속에서나 보던 풍경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낸 것은 인공지능 기술로, 학습된 인공지능은 그럴듯한 기사나 소설 속 문장을 만들어내고, 가상의 인물로 영상을 만드는 등 실생활에 점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핸슨 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는 2017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시민권을 획득한 로봇이 되기도 했는데, 60가지 이상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인공신체 또한 발전하고 있다.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들의 신체를 대신하던 의수와 의족은 더욱 고도의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건을 드는 정도의 역할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의수는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정교하게 악기를 연주하거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2018년 알메리나 마스카렐로 씨는 이탈리아 최초로 생체공학 팔을 장착하게 되었는데, 생체공학 팔로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물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장기를 만들어내는 3D 프린팅 인공장기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으로부터 10대 미래유망기술로 선정되었으며 환자의 장기수급, 재생치료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떠한 세계가 펼쳐질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기는 어렵지만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SF 장르가 이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강화인간 등을 소재로 무수히 많은 작품을 창작해왔기 때문이다. 

문학,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대중서사학회는 지난 4월 6일 학술대회를 열고 SF에 주목했다. 한국 SF의 개괄적 이해, SF 팬덤에 대한 연구,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 발표 등이 이뤄진 가운데 인간을 뛰어넘은 신인류인 ‘포스트휴먼’에 대해 다룬 발표도 이뤄졌다. 오윤호 이화여대 교수는 “인간을 매혹한 감정 기계”에서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했던 인간의 욕망을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창작물 속에서 살펴보았다. 노대원 제주대 교수는 “호모 데우스인가, 호모 파티엔스인가? - 한국 포스트휴먼 SF에서 ‘상처 입을 가능성(vulneralbility)’”라는 제목으로 ‘포스트 휴먼’이 완전한 존재일 수 없음을 창작물을 통해 살펴보았다. 

- 오윤호 교수, 인간과 닮은 광대부터 해탈에 이른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계장치 살펴

오윤호 교수는 “인간은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 왔다.”라며 “새로운 피조물들이 인간 앞에 등장할 때마다 인간들은 매혹당하면서도 불안한 기묘한 상태에 빠져든다.”고 이야기했다. 고대에는 인간의 육체를 흉내 낸 피조물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난 다음에는 전신이 기계 장치로 된 인간을 그려냈다. 현대에 이르러 각광 받는 인공지능 또한 인간을 닮은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의 타자로서 내면의 욕망과 무의식으로부터 여전히 대상화”되고 있다. 

오윤호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오윤호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오윤호 교수는 고대의 창작물이나 신화에서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닮은 존재를 살펴보았다. 처음 살펴본 작품은 열자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열자” ‘탕문’이다. 탕문 16에는 ‘언사’라는 공인이 주나라 목왕에게 인간과 꼭 닮은 광대를 만들어 준 이야기가 나온다. 공연이 끝나갈 때 쯤 광대가 왕의 주위 사람에게 눈짓을 하자, 이를 본 왕은 자신을 해하려는 줄 알고 크게 노해 언사를 죽이려 한다. 그러자 언사는 광대를 해체하고 조립해 왕을 해칠 의도가 없었음을 보인다. 

왕이 일일이 검사해 보니 모두가 가죽과 나무를 합친 것이고, 희고 검고 붉고 푸른 빛을 칠해 만든 것이었다. 왕이 좀더 자세히 보니, 배 속에 있는 간장과 담과 심장과 폐장과 비장과 심장과 위장이런가, 또 곁에 있는 근육과 뼈와 피부와 이빨과 모발 같은 것이 모두 만든 것으로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해체된 각 부분을 한데 합쳐 놓으면 도로 처음 보던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목왕은 비로소 기뻐 탄식하며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의 재간이란 참으로 조물주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인가!”

오윤호 교수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광대를 해체하며 생기없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나 다시 조립하여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는 과정은 물질과 영혼이 결코 나누어질 수 없다는 점과 일종의 생사 변화를 통해 자연의 무궁한 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준다.”며 “그것을 깨달은 왕은 사람을 ‘조물주’와 같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17-18세기 과학 혁명을 거치며 발전한 서구 유럽은 기계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1818년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은 선구적-사이언스픽션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은 신 중심의 중세 세계관을 벗어나는 것이자 자연진화의 과학적 사실마저도 초월한다. “프랑켄슈타인”의 부제는 “또는 근대 프로메테우스”인데 이에 대해 오윤호 교수는 “인간이 신에게 도전했던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도전을 하였다는 점을 작가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그의 고뇌가 불러내는 인간 윤리와 과학적 회의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켄슈타인” 속 빅터는 피조물의 각 부위를 제작해 조합하여 새로운 인간종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빅터는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의 추한 모습을 보며 공포와 역겨움을 느끼고 재앙을 예감한다. 한편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 자체의 이야기 속에서는 백지와 같은 존재가 언어와 문화를 통해 어떻게 인간다움을 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성장과 계몽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오윤호 교수는 “새로운 인간 종이 감각과 언어, 의지와 욕망, 사랑과 가족을 하나씩 깨달아가며 가족과 사회적 삶을 모두 욕망하게 된다는 역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으로서도 행할 수 없는 교양의 길이 괴물의 삶 속에서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성숙의 과정을 거쳐 근대적 인간상을 갖게 되지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과 괴물성에 절망과 고통을 경험하고 영혼의 존재 유무를 물으며 슬픔과 환멸을 남긴 채 사라진다. 

현대에 이르러 감정 기계는 인공지능이라는 형태로 크게 등장하게 되는데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 9000이 등장한다. 할은 우주선 안의 모슨 상황을 알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며 인간 위에 신처럼 군림하려 하고, 결국 우주비행사인 데이브에 의해 죽게 된다. 할은 ‘멈추어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애원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심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박성환의 소설 ‘레디메이드 보살’은 로봇의 해탈이라는 동양사상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잡무를 해주는 인간형 로봇 시리즈인 RU-4가 불교 교리를 공부하여 신자들에게 설법을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인데, 이를 고장난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깨달음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회사의 현장서비스 기사를 부르게 된 것이다. 스님은 “RU로봇 시리즈가 만들어질 때 유연한 사고 능력을 부여받아, 일반 커뮤니케이션과 맥락적인 내용의 추론적 과정을 거치는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아’를 인식하고 불교 교리를 공부해 스스로 인식한 자아를 부정하고 해탈의 경지에 나아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로봇 수리기사와 로봇회사 회장은 “로봇이 정해진 정보를 처리하는 프로세스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고장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존재가 등장해 종교와 신앙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상황에서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깨달음을 얻은 로봇의 이야기인 ‘레디메이드 보살’은 RU-4가 설법하고 죽음에 이르며 일단락된다.  

“이 로봇이 일찍이 스스로의 몸을 구성하는 제반 요소와 스스로의 몸을 둘러싼 외부 세계의 제반 원리들에 관해서 깊이 생각한 결과 일체의 모든 입력 데이터가 모두 진실하고 항구여일한 것이 아니며, 모든 내부 표상드링 모두 진실되고 항구여일한 것이 아니며, 모든 연산 알고리즘이 진실하지도 항구여일하지도 않다는 것과, 모든 데이터베이스 항목들이 진실되거나 항구여일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 몸에게 본디 집착과 갈애는 없었으며,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알고 이는 석가세존이 말한 것과 똑같음을 알았습니다. … 이 로봇이 보기에 세상은 이 자체로 아름다우며, 로봇이 깨달음을 얻었건 얻지 못했건 상관없이 이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세상의 주인인 당신들 역시 이미 깨달음을 모두 성취한 상태이며, 그렇기에 당신들이 먼저 깨달은 로봇의 존재로 인해 다시 무지와 혼란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스스로의 마음속을 깊이 살피시어 깨달음의 보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오윤호 교수는 “단지 인간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신의 경지에 오른 로봇은 로봇의 생과 사를 초월한 사유 속에서 자신의 물질성과 영혼의 초월성을 해체하고 만다.”고 이야기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이 기계 인간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윤호 교수는 “인간은 스스로를 닮은 피조물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오면서 ‘자기동일성’의 욕망을 추구하고, 타자화된 피조물에 대한 공포를 공유하며 인간 사회의 안정을 꿰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는데, SF 또한 인간 생존 본능의 연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 완전한 인간의 ‘상처 입을 가능성’ 살펴본 노대원 교수

노대원 교수는 완전한 인간으로 이야기되는 ‘포스트휴먼’의 ‘상처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을 한국 SF 소설을 통해 살펴보았다. 삶의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SF 장르에서 특히 드러났는데, 단순히 인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정도부터 시작해 감정을 기계 장치를 통해 차단, 통제하거나 완벽한 새로운 몸으로 대체하는 등이 묘사되기도 했다. 스테로이드 계몽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상처 입을 가능과 죽음이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적과 불멸을 쟁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제주대 노대원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제주대 노대원 교수 [사진 = 김상훈 기자]

인간은 신체 뿐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취약성에도 폭넓게 노출되어 있다. 또한 인간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레비나스 철학에서 ‘상처 입을 가능성’은 타인의 상처 입음과 취약성에 대한 괴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SF 작가들은 인간이 상처 입지 않을 것처럼 변한 환경에서도 상처 입을 가능성을 그려내며 완전성에 의심을 품는데, 노대원 교수는 한국의 소설가 세 명의 작품을 살펴보며 이들이 어떻게 ‘상처 입을 가능성’을 그려냈는지를 살펴보았다. 

윤이형 소설가의 “완전한 항해”는 본래 하나의 자아이지만 다른 ‘갈래 세계’에서 살아가는 ‘창연’이라는 인간과 ‘창’이라는 루족 인물이 등장한다. ‘창연’은 손에 꼽히는 부호로 신체적 질병이나 고통, 불행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완전함을 얻기 위해 튜닝을 수십 차례나 계속해온 인물이다. 창연이 살아가는 세계는 ‘튜닝 에이전씨 세일러’가 또 다른 갈래에 살아가는 자아(에디션)를 불러와 ‘튜닝(자아통합)’을 해주는데, 튜닝을 통해 더 나은 재능이나 덕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창연’의 또 다른 자아인 ‘창’은 동굴 속 영생과 불사의 삶을 포기하고 동굴 밖으로 나온 인물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기를 바란다. 그런 ‘창’에게 튜닝 에이전시 세일러가 찾아와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창연’과의 자아 통합을 권유하는데, ‘창’은 이를 거부하고 온갖 위험 속에서 자유와 개성적인 단독자로서 자아실현을 꿈꾼다. 노대원 교수는 “창연이 끊임없이 능력을 확장하고 증강함으로써 무한한 완전성을 추구하며 트랜스휴머니트스의 삶을 살아왔다면, 창은 그와 반대로 상처에 열린 삶을 기꺼이 선택함으로써 고유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이형의 다른 소설들, 특히 SF는 이처럼 상처 입을 가능성과 완전성 사이를 오가는 왕복 운동과 성찰을 자주 보여준다.”며 “윤이형의 소설 인물들은 신체적 한계, 외모의 한계 등에 대면해, 자신의 몸을 혐오하는 경우가 많고 사이버스페이스의 아바타를 동경하거나 기계 몸으로 옮겨가기도 한다.”며 “그러나 윤이형 소설에서는 사이보그화로도 신체적 취약성과 인간적 한계 조건은 완전하게 극복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성찰한다.”고 전했다. 

박민규의 소설 ‘깊’에는 화학적 기술을 통해 신체를 변형, 증강시키는 트랜스휴먼 인물이 등장한다.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깊’은 지진으로 인해 해저에 새로운 해구가 생겨나게 되고, 곧 연구소가 설립되어 해구를 탐험하고자 한다. 연구소의 소장인 ‘얀’은 과학기술과 신체 향상 기술을 통해 해구를 탐사할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 하며, 이 세계의 인간들은 인간의 진화와 진보를 추구하고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깊이 신뢰한다.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완벽한 신체의 인간들은 정말 상처 입지 않을까? 박민규 소설가는 인간의 고통이나 정신적 취약성이 정복되지 못했음을 그려낸다. 탐사자들은 ‘디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디퍼의 한 사람인 ‘공’의 아버지는 최초의 우주 자살자였으며, ‘드미트리’는 목성 스테이션 건설 업무 지원에서 실패를 겪고 실어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깊’ 속 디퍼들은 “정복할 대상에 대한 의미 있는 추구 활동, 즉 적극적으로 ‘삶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해 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대원 교수는 “이 지점에서 ‘깊’은 트랜스휴먼이 증당하여 트랜스휴머니즘의 가치를 추구하는 서사에서 그것을 성찰하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서사로 변모한다.”고 보았다. 디퍼들의 심해 해구 탐사는 “인간 내면으로의 침잠 행위에 비유될 수 있”으며, 이들은 신체 개조를 통해 더 이상 지상에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노대원 교수는 “이들은 파우스트적 정복욕에 이끌린 근대적-트랜스휴먼적 욕망의 화신이자 희생자”이며 “그들이 심해 탐험을 완수하는 동시에 죽음으로써 그것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고발한다.”고 설명했다. 

김보영의 ‘우수한 유전자’는 유전공학 기술이 도입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데, 유전자 판결기가 도입된 이후 소수의 상류계층은 ‘스카이돔’이라는 자신들만의 도시에서 살아가게 된다. 일반인은 ‘키바’라는 지역에서 사는데 이들의 문명은 퇴화되어 있다. 소설은 서두와 말미에 배치된 서신과 키바로 봉사활동을 떠난 스카이돔 청년의 이야기가 삽입된 액자 구성이다. 

스카이돔은 기술 향상을 통해 완벽한 존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며 키바의 사람들은 언제건 상처 칩을 가능성에 노출된 것처럼 보인다. 스카이돔으로부터 온 서술자는 우월감을 가지는 태도를 갖고,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태도로 키바 사람들을 대하지만, 곧 키바 사람들을 혐오하고 분노하게 된다. 서술자의 태도는 과학 문명에 대한 분명한 우월감과 위계 논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 키바 사람에 의해 작성된 서신은 지금까지의 서사를 뒤엎게 된다. 

스카이돔의 사람들은 아직 육체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으므로 매일 엄청난 분량의 식사를 섭취해야 합니다. 더위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므로 늘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건물이 필요하고, 질병에 취약하므로 모든 종류의 예방접종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만들어 준 감옥 안에서밖에 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대원 교수는 ‘우수한 유전자’가 “유전자 우위와 열위의 관계를 전복함으로써 소설의 독자에게 진화와 퇴화의 기준과 척도를 재고하고 성찰하도록 권한다.”며 “김보영의 소설은 상처 입을 가능성이 정신주의와 물질주의적 문명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흥미롭게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세 편의 소설을 살펴본 노대원 교수는 “기술낙관론자들과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취약성을 제거하기 위한 인간 향상 기술을 옹호하지만, 인간의 취약성을 없애는 목표는 다양한 이유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취약성의 제거는 인간의 상호의존성과 윤리적 책임 같은 말 그대로의 가능성과 역량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서적 취약성의 축소는 기쁨의 정서를 제거하는 것과 유사하므로 인간 본성과 행복의 긍정적인 측면까지 축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대원 교수는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먼 역시 현재의 인간처럼 여전히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상처 입을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며 “SF에서도 트랜스 휴먼 및 포스트휴먼의 상처 입을 가능성과 그 극복(불가능)의 문제는 이후의 많은 텍스트에서 계속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발표 이후에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이후에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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