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대전작가회의, 대전의 문학과 역사 살펴보는 순례길 탐방 “산에 들에 피어날지어이” 개최
[탐방기] 대전작가회의, 대전의 문학과 역사 살펴보는 순례길 탐방 “산에 들에 피어날지어이” 개최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4.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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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3.1운동 100주년과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해 대전작가회의와 대전시민아카데미가 대전 지역의 문학과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 순례길 탐방 “산에 들에 피어날지어이”를 진행했다. 

대전작가회의는 2019 전국문학인대회 대전 행사로 대전시 승격 70주년, 2019 대전방문의 해, 3.1운동 100주년 기념, 신동엽 시인 50주기 추모 등의 다양한 뜻을 품고 대전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6개월에 걸쳐 행사를 진행한다. 그 첫 번째 자리인 역사 순례길 탐방은 해방 공간의 비극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를 탐방하는 것과 동시에 대전 지역 문인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며 문학과 역사의 관계,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꾸려졌다. 

대전 지역에는 어떤 문학인들이 활동했으며 어떤 역사적 비극을 담고 있을까. 뉴스페이퍼 기자가 순례길 탐방에 함께하며 이를 들어보았다. 

- 오전 09시 대전예술가의 집(대전 중구 중앙로 32) 한성기 시비

대전작가회의와 대전시민아카데미 구성원, 대전 지역 문인과 시민 등이 대거 참여한 이번 순례길은 대전 예술가의 집 한성기 시인의 시비를 살펴봄으로써 시작됐다. 대전 예술가의 집에 모인 이들이 먼저 대전 예술가의 집 인근에 위치한 한성기 시인의 시비를 찾았다. 

한성기 시비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해설을 맡은 김현정 문학평론가(세명대 교수)는 한성기 시인의 삶을 키워드로 살펴보면 ‘실향’이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함경남도 정평군 출생인 한성기 시인은 1942년 함흥사범학교를 졸업 후 충남 당진에 발령이 난다. 1947년에는 대전사범학교 교사로 부임하며 대전 지역에 거주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해방을 맞이한 상황이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시기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분단을 맞이하며 한성기 시인은 다시는 고향인 함경남도 정평을 찾아갈 수 없게 된다. 

김현정 평론가는 “한성기 시인은 늘 가슴 한 곳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을 담고 살았다고 한다.”라며 한성기 시인의 별명인 ‘둑길의 시인’이 바로 이 외로움과 그리움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실향으로 인한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둑길을 걷지 않으면 몹시 답답해했다는 것이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1952년 발표작인 ‘역’으로, 작은 역을 등장시켜 고독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향 이후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고통받았을 시인의 심정이 조그마한 역이 되어 그려지는 듯 하다. 

대전 예술가의집 뒤편에 위치한 한성기 시비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전 예술가의집 뒤편에 위치한 한성기 시비 [사진 = 김상훈 기자]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待合室)에는 
의지할 의자(椅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急行列車)가 어지럽게 경적(警笛)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 
비가 오고 …… 

 

아득한 선로(線路)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驛)처럼 내가 있다. 

 

- 한성기, 시 ‘역’ 전문

- 오전 10시, 대전문학관(대전 동구 송촌남로11번길 116)

대전 예술가의 집을 떠나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대전 지역의 문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전문학관이다. 대전문학관은 대전의 문학사를 정리하고 문인들의 작품과 문학 사료를 보존, 관리하는 곳으로,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다목적강의실, 문학사랑방 등 총 1,102.89 제곱미터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적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의 문화적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 

기획전시 대전문학프리즘을 관람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기획전시 대전문학프리즘을 관람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기획전시실에서는 중견 작가 전시전인 “대전문학 프리즘 다양성의 세계”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기획전시에는 강신용, 김명아, 김명원, 박순길, 송영숙, 전민, 정진석, 신웅순, 이건영, 연용흠, 최중호, 정순진, 하인혜 등 13명의 작가가 참여하였으며 작가들의 개성있는 전시를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장을 관람 중인 탐방단 [사진 = 김상훈 기자]
전시장을 관람 중인 탐방단 [사진 = 김상훈 기자]

상설전시실은 대전의 근현대 문학 연보와 대표 문인들, 대전의 문학적 자산을 망라한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권선근, 최상규, 정훈, 한성기, 박용래 등 다섯 명의 문인은 대전 지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들로, 이들의 작품과 연보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대전문학관 실내 전시를 살펴본 이후에는 실외로 나가 금당 이재복 시인의 시비에서 시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재복 시인은 태고종 승려이자 대전 충남 현대문학의 초석을 다진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20대 초 육당 최남선의 서재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당대 최고의 문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혜화전문학교 시절 서정주, 오장환, 신석정, 조지훈, 김구용, 김달진 등과 교류해 시 창작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동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38세에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장으로 선출되고 이듬해 동인지 “호서문단”을 창간했다. 

금당 이재복의 시비 앞에서 설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금당 이재복의 시비 앞에서 설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시비에는 이재복 시인의 대표시라 할 수 있는 ‘꽃밭’이 새겨져 있다. ‘꽃밭’은 노란 꽃과 하얀 꽃 모두가 어우러지는 꽃밭의 모습을 그려낸다. 마지막 연에서 ‘나뉘인 슬픈 겨레여’를 통해 통일을 노래하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오전 11시 ~ 11시 30분, 옛 대전형무소(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및 옛 충남도청(대전 중구 중앙로 101)

대전문학관을 거친 탐방단은 대전 지역의 역사와 비극이 숨겨져 있는 옛 대전형무소와 대전의 근현대사 특별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옛 충남도청으로 향했다. 

옛 대전형무소 망루 [사진 = 김상훈 기자]
옛 대전형무소 망루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전 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졌던 건물로 현재는 망루와 우물만이 남아있다. 대전 형무소는 올해로 지어진 지 100년이 되는 해인데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점과 맞닿아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3.1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에 붙잡히게 되었고, 수감시설을 확충시키고자 1919년 5월 중촌동 현대아파트 자리에 형무소를 개소하게 된 것이다.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이관술, 김봉한 등 독립운동가 및 사회주의자들이 대전 형무소에서 수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설을 맡은 김영호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과 사상범들이 수용되었으며, 70년대에 오면 비전향 장기수, 양심수가 이곳에서 생활했다.”며 작가이자 교수였던 신영복 선생 또한 대전 형무소에서 약 15년간 복역했다고 설명했다. 

옛 대전형무소 우물 [사진 = 김상훈 기자]
옛 대전형무소 우물 [사진 = 김상훈 기자]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가두고자 지었던 대전 형무소는 훗날 끔찍한 학살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시기 인민군이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해 6,000여 명을 무참하게 학살한 것이다. 순례길 탐방에 나선 시민들은 스산하게 남아있는 망루와 우물을 살펴보았는데, 대전 형무소 자리 중 일부는 평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역사적 비극을 겪은 장소가 평화를 기원하는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인상 깊었으나, 공원 내에 대전 형무소의 역사에 대해서는 설명 등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옛 충남도청에서 진행 중인 "1919 대전감옥소" 전시. 대전감옥소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옛 충남도청에서 진행 중인 "1919 대전감옥소" 전시. 대전감옥소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옛 대전 형무소를 살펴본 이후에는 옛 충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옛 충남도청 건물은 1932년부터 2012년까지 행정 업무에 활용되었으며, 2012년 이후부터는 활용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현재에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며, 대전근현대사 전시관이 마련되어 대전의 근현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1932년에 지어져 오래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이며, 전시관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1919 대전감옥소”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전 형무소의 역사적 비극과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오후 2시, 사정공원(대전 중구 사정동 산1-36) 시비 탐방

사정공원은 대전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공원으로 각종 레포츠 시설과 정자, 광장이 마련되어 대전 시민들의 휴양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사정공원에는 시인들의 시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는데 탐방단은 사정공원에서 한성기, 김관식, 박용래 등 시인들의 시비를 둘러보고 이들이 누구인지 설명을 들었다.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우는 박용래 시인은 1956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은 뒤 같은 해 ‘황토길’, ‘땅’으로 3회 추천이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제5회 충청남도 문화상, 현대시학사 제1회 작품상, 제7호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싸락눈”, “강아지풀”, “백발의 꽃대궁”이 있다. 시비는 ‘저녁눈’으로 꾸며져 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 저녁눈 전문

이은봉 시인이 박용래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은봉 시인이 박용래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박용래 시인과 생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는 이은봉 시인은 “제가 살던 집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박용래 선생 댁이 있었다. 당시는 말 수레가 매우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는데, 선생의 집 뒤로 말집이 쭉 있었다. ‘저녁눈’의 배경은 자기 집 뒤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관식 시인은 1934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1952년 첫 시집 “낙화집”을 출간하고 1955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했다. 김관식 시인은 번역가로도 활동했는데 1968년에는 “서경”을 번역하기도 했다. 사정공원에는 시 ‘다시 광야에’가 적힌 시비가 세워져 있다. 호방한 성격과 남다른 기행으로 5, 60년대 시단에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른 창문을 열어놓고 당신의 그림자가 어리울 때까지를 가슴 조여 안타까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그러면 저의 옆에 가까이 와 주십시오. 
만일이라도…… 만일이라도…… 
이승 저승 어리중간 아니면 어데든지 당신이 계시지 않을 양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몸뚱어리는 
암소 황소 쟁기결이 날카론 보습으로 
갈아헤친 논이랑의 흙덩어리와 같습니다. 

 

따순 봄날 재양한 햇살 아래 
눈 비비며 싹터 오는 갈대순같이 
그렇게 소생하는 힘을 주시옵소서. 
- 김관식, 다시 광야(曠野)에 전문

사정공원에서는 이밖에도 최원규 시비, 만해 한용운 시비를 살펴보았다. 

- 오후 3시, 단재 신채호 생가(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신채호 선생은 개화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문학 작품을 다수 남긴 문학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으나 이승만의 외교독립론과 미국의 위임통치 주장을 비판하며 임정에서 탈퇴, 이후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했으며, 1929년 일제에 피검되어 1936년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다.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 12편, 시 8편, 한시 17편, 시조 3편과 다수의 문학평론이 있는데,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국민의 심성을 바로잡고 국가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사진 = 김상훈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전시는 1999년 생가터를 생가지로 복원하였고 2015년에는 홍보관을 개관하였는데,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등과 관련해 신채호 선생을 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채호 선생 생가지를 찾은 탐방단은 단재홍보관에서 신채호 선생에 대해 들은 후 생가지를 찾아 선생의 정신을 되새겼다. 

- 오후 4시 30분, 산내 골령골(대전광역시 동구 곤룡로 93)

이번 탐방의 마지막 장소는 대전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내 골령골이다. 대전 ‘산내학살’ 사건은 1950년 7월 초부터 중순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최고 7,0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된 사건으로, 희생자 중에는 4.3사건이나 여순사건 관련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학살 사건은 1992년 월간 “말”지에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으로 공론화 된 후 1999년 12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던 학살 관련자료가 공개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골짜기 전체가 학살의 장소로 쓰였으며 한국전쟁 전후 남한지역 내 단일장소로는 최대 학살지인 것이다. 

대전형무소 정치범 및 민간인 집단1학살지 비석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전형무소 정치범 및 민간인 집단1학살지 비석 [사진 = 김상훈 기자]

산내 학살과 관련된 사람으로는 김성동 작가가 있다. 김성동 작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6.25 전쟁 이후 사상범으로 몰려 대전형무소에 수감 됐고 산내 골령골에서 총살당해 유해조차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령골에는 비석만이 놓여 있는데, 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잡혀 있지만 아직 유해발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비석마저 군데군데가 파여있는데 극우 단체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 추정됐다. 

김영호 시인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김영호 시인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이번 행사에서 탐방단은 대전 지역의 시민 학살 장소와 대전 지역의 문인들의 흔적, 신채호 선생 생가 등을 찾아다녔다. 김영호 시인(문학평론가, 대전민예총 이사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신동엽 시인이 노래했던 중립의 초례청에서 아사달, 아사녀가 권력의지를 떨쳐버리고 민족의 하나된 세계, 몽양 여운형 선생이나 신채호 선생이 꿈꾸었던 대동세상”을 확인하고 “좌나 우, 사상가나 시민을 떠나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서 추모하며,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이상과 꿈을 이어받아 민족의 하나됨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취지를 이야기했다. 

골령골에서는 혼란 속에서 희생된 영령을 위한 위령제가 진행됐다. 위령제에 앞서 추모시 낭독이 진행됐으며, 제주작가회의 홍경희 사무국장이 김경훈 시인의 시 “그날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 대전작가회의 김희정 시인이 시 “벌초”를 낭독했다. 낭독 이후에는 묵념과 제사가 진행됐다. 

제사가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제사가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위령제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으며,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이번 행사를 찾은 주영국 사무국장은 “현장에 와서 보니 숙연해지고 마음이 참담해진다. 광주도 현대사의 비극을 송두리째 안고 살아가는 곳인데, 대전도 이렇게 아픈 역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꼈다. 아무쪼록 역사의 진실이 빨리 밝혀지고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이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대전형무소 보도연맹 산내 학살 현장을 알리는 표지 앞으로 개나리가 만발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대전형무소 보도연맹 산내 학살 현장을 알리는 표지 앞으로 개나리가 만발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끔찍한 학살의 장소인 골령골로 찾아가는 길은 개나리와 목련이 만발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답사를 통해 탐방단은 산내 골령골 학살과 옛 대전 형무소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나아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나 문학인들이 이야기한 아름다운 세계를 확인하고, 진정한 치유와 평화, 화해와 상생을 위한 첫걸음을 뗀 셈이다. 대전작가회의는 추후 골령골 장소에서 신동엽 시인 50주기 추모 전국문인시화전을 열고, 전국문학인대회에서도 골령골 탐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전 지역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대전작가회의의 행보가 주목된다.

탐방단 단체사진 [사진 = 김상훈 기자]
탐방단 단체사진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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