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 / 감각의 총화- 송기원 시인의 회복기의 노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 / 감각의 총화- 송기원 시인의 회복기의 노래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4.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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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현대시는 대체로 감동이 없습니다. 억압을 벗어난 의식은 ‘분열’의 모습으로, 희망이 없는 현실은 ‘자폐’의 모습으로 기호화되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독자들에게 현대시는 암호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암호를 푸는 방법을 따로 익혀서 시를 읽어야 한다면 누가 시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현대시의 특징인 ‘모호성’이 너무나 강조되는 바람에 비시(非詩)가 되어 온 시적 실험은 이제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미로를 헤매는 실험쥐가 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독자는 이제 낯선 시보다는 내 마음을 움직인 시를 원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힘들게 하는 시를 놓고 극찬하는 문학평론가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당신에게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얄팍한 언어유희 재주로 시를 짓는 시인이 상을 연이어 받으면서 시단의 총아인 양 군림하는 풍토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1년 동안 365편의 시를 읽고자 합니다. 평일에는 시를, 토요일에는 시조를, 일요일에는 동시를 읽고서 감상문을 쓰겠습니다. 시가 독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시와 평론을 쓰고 있는 저는, 시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시 배달부의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 감각의 총화.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 감각의 총화.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 / 감각의 총화

 

회복기의 노래 

송기원
 
 

무엇일까. 
나의 육체를 헤집어, 바람이 그의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꺼내는 것들은. 육체 중의 어느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시간에 차라리 무섭고 죄스러운 육체를 바람 속에 내던졌을 때, 그때 바람이 나의 육체에서 꺼낸 것들은. 
거미줄 같기도 하고 붉은 혹은 푸른 색실 같기도 한 저것들은 무엇일까. 
바람을 따라 한없이 풀려나며 버려진 땅, 시든 풀잎, 오,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날려가는 것들은. 
저것들이 지나는 곳마다 시든 풀잎들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꽃무더기가 흐드러지고, 죽어있던 소리들이 이슬처럼 깨쳐나 나팔꽃 같은 귓바퀴를 찾아서 비상하고……
 

누님 저것들이 정말 저의 육체일까요? 저것들이 만나는 사물마다 제각기 내부를 열어 생명의 싱싱한 초산 냄새를 풍기고 겨드랑이 사이에 젖을 흘려서, 저는 더 이상 쓰러질 필요가 없습니다. 굶주려도 배고프지 않고, 병균들에게 빼앗긴 조직도 아프지 않습니다. 저의 캄캄한 내역(內譯)마저 젖물에 녹고 초산 냄새에 스며서, 누님, 저는 참으로 긴 시간 끝에 때 묻은 시선을 맑게 씻고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봅니다.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노래합니다. 
  
격렬한 고통의 다음에는 선명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 
오랜 주검 위에서 더없는 생명과 빛은 넘쳐 오르지. 
깊이 묻혀 깨끗한 이들의 희생을 캐어내고, 
바람의 부드러운 촉루 하나에도 
돌아온 사자(死者)들의 반짝이는 고전을 보았어. 
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구절들을. 
익사(溺死)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 
모든 허물어진 관련 위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질서를. 
  
내가 품었던 암흑의 사상은 반딧불 하나로 불 밝히고 
때 묻은 환자들은 밤이슬에 씻어냈어. 
수시로 자라는 번뇌는 은반의 달빛으로 뒤덮고 
눈부신 구름의 옷으로 나는 떠오르지. 
  
포도알들이 그들 가장 깊은 어둠마저 빨아들여 
붉은 과즙으로 융화하는 밤이면, 그들의 암거래 속에서 
나도 한 알의 포도가 되어 세계를 융화하고.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 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무서운 저 광채 때문에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나는 한 마리 야광충이 되어 깨어 있어야 하지. 저 광채 때문에 내 모든 부끄러움의 한 오라기까지 낱낱이 드러나 보이고, 어디에도 감출 수 없던 뜨거운 목소리들은 이 밤에 버려진 갈대밭에서 저리도 뚜렷한 명분으로 나부끼지. 두려워 깊이 잠재운 한 덩이 뜨거운 피마저 이 밤에는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 병든 나를 휩쓸지, 캄캄한 삶을 밝히며 가득히 차오르지.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 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동아일보」(1974. 1. 1)

 

<해설>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이 이상의 칭찬을 들은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심사위원 이형기와 김우창은 이런 시를 읽을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심사평에다 썼었다. 

「회복기의 노래」는 감각적이고 언어미학적이다. 몽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다. 탐미적이고 격정적이다. 송기원은 보들레르와 랭보와 베를렌의 시를 읽었겠지만 흉내를 내지 않고 종합하고 극복하였다. 

회복기이니 오래 병마에 시달리다가 밥맛도 조금씩 돌아오고 기력도 점차 회복되어 가는 시점이다. 고열에 시달리거나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이라면 ‘몸’이라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지 잘 알 것이다. 병마로부터 막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의 그 아련하고 몽롱한 상태를 시인은 마치 「만물조응」으로 ‘감각의 제국’을 세운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처럼 시각과 청각으로, 즉 공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제1연에서 세상 만물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회복기의 신비로운 몸 상태를 노래하고 있다. 제2연의 화자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환자다. 그는 이 세상 뭇 생명체의 환희의 송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포도 한 알이 익어가는 과정을 밤의 암거래라고 했는데 그만큼 은밀하고 불가사의하다. 제3연에서 여전히 환자인 화자는 밤의 병실에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감격하고 감동받는다. ‘지금 나는 살아 있어. 앞으로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살아갈 거야’ 하고 생각했겠지만 시인은 이 신비스러운 몸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평이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 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이라고 표현한다. 감각의 총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상하게도, 이 시를 읽으면 내 어머니가 잘 드시던 두통약 ‘뇌신’을 몰래 한 봉 먹어봤을 때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독감이 도무지 낫지를 않아 약을 지어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다가 한밤에 깨어났을 때의 기분을 느끼게도 된다. 비몽사몽간에 어렴풋이 보이는 빛, 그 빛은 우리를 어둠의 세계(저승세계)로 데려가지 않고 밝은 세계로 인도해주는 구원의 빛이다. 병실에서 한밤중에 깨어나 희미한 외등 불빛에 의지해 화장실을 찾아가 본 경험을 한 이는 이 기분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같은 해 송기원은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경외성서」로 당선된다. 같은 해에 신춘문예 시와 소설 두 분야에서 함께 당선된 예는 송기원이 처음이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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