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박도형 기자]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뜻을 모은 작가들이 촛불 문화제를 연다.
한국작가회의는 27일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의지를 결집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촛불문화제를 오는 30일 오후 7시 청계소라광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작가회의는 “군사독재 아래에서 우리가 어떤 교과서로 우리의 역사를 배웠는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말하며 "1970~1980년대 국정교과서에서 우리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구국혁명’이라 배웠고, 친일파들의 친일행위는 근대화를 앞당기기 위한 선택인 것처럼 배웠다”며 “ 이번 촛불문화제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 쿠데타’에 칼날같은 펜의 힘으로 맞서고자 하는 결의”라 밝혔다.
아래는 한국작가회의에 등재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문인 1217인 성명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문인 1217인 성명
‘역사를 해석할 자유’, ‘역사를 상상할 자유’를 위해 단일한 역사교과서에 반대한다.
지난 10월 12일 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가 선정한 집필위원들이 기술한 단 하나의 역사를 전국 중고교에서 가르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통합’과 ‘건전한 역사관’ 육성을 이유로 들었으나 궤변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친일․독재 권력이 민주․독립의 역사를 침탈하고자 하는 폭거일 뿐이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라는 역사적 과오를 지우고 미화하여 미래 세대의 정신을 볼모 잡으려는 술수이다. 우리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정권의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가 닿고 있다.
역사는 한줌의 권력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 이전의 시대를 살아왔던 선조들과 선배들, 그리고 지금 여기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다 우리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로 통합된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우리가 이렇듯 살고 나누고 싸우고 견디며 이루어 온 역사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면서 상상력의 원천이다. 사실에 엄정하고 거기에 숨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이 품은 무한한 진실들을 발굴해 왔다. 우리는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문학적 창조의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단일한 역사 만들기’의 책략은 현 정권 하에서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폭력적으로 시행된 문학예술에 대한 검열과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함으로써 현실의 모순과 가난을 말할 수 있는 문학예술의 가치를 박근혜정권은 일관되게 무시하고 차별해 왔으며, 이제 드디어 역사를 읽을 자유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사실을 해석하고 의견을 말하고 다른 생각들과 토론할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 소란과 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그 속에서 꽃핀다. 교육을 통해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의견이 옳은 만큼, 너의 의견도 옳으며 그러므로 함께 옳은 길을 가기 위해 그 의견들과 오래 만나고 견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론과 합의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비교육적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짓누르고 통합하려는 역사가 어떤 것일지 우리는 이미 내년부터 사용될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를 통해 확인했다. 일제의 쌀 ‘수탈’을 ‘수출’로, 의병 ‘학살’을 ‘토벌’로 표현하는 역사가 그들이 말하는 ‘국민통합’과‘건전한 역사관’의 역사이다. 식민주의의 지배하에 수탈당하고 학살당한 민중들의 고통에 결코 공감하지 않는 친일의 역사,약육강식의 논리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관점에 선 일본제국주의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우리 교실에서 일제 찬양의 교과서가 아이들의 배움책으로 쓰인단 말인가. 그 내용도 철저히 강자의 논리, 지배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역사 아닌가. 우리의 아이들이 이와 같은 교과서로 역사를 익힌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기억하라. 지금 당신들이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졸속으로 강행하고 있는 오늘의 모든 일들은 역사적 사실이 되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과오를 지우고자 하는 일념으로 한 나라의 역사와 교육을 좌우하려는 대통령과, 거기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정치인들, 수치도 양심도 없이 권력의 앞잡이가 된 어리석은 학자들 이야기는 당신들이 억지로 봉합하려는 ‘국정교과서’의 이면에서 오래도록 추문으로 출렁거릴 것이다. 그 추문을 역사로 기록하는 수고를 면하기 위해 우리는 통보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당장 그만두라. 함부로 통합되어도 좋을 만큼 우리의 역사는 빈약하지도, 허술하지도 않다. 질곡의 나날들을 거쳐 이루어낸 우리의 역사를 치욕 속으로 떨어뜨리지 마라. 겨우 이견의 자유를 얻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이상 상처 입히고 모독하지 말라.
이후 착오와 시기를 놓쳐 서명하지 못한 작가들이 서명에 참여하여 총 1,339명이 참여했다.
한국작가회의는 박정희 유신 정권 시절 1974년 창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모태로 현재까지 40년 넘게 이어져왔다.
시인인 정우영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의 물결은 이미 대세이며, 국정화를 강행한다고 해도 그 역사책이 얼마나 거짓과 미화로 점철될 것인지 널리 알려졌다. 우리는 그 점을 잊지 않고 외치며 기록하겠다. 그게 또한 문학의 할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