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의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천장 한쪽 구석이 열리면서 햄스터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녹색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자 작은 로봇의 등이 열리고 도시락 가방을 든 햄스터가 내렸다. 햄스터는 문을 닫고 뽈뽈뽈 거실을 가로질렀다. 걸어가다가 방석 위에 앉아있는 강아지를 보더니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수고했어. 잘 들어가.”
강아지가 앞발을 흔들었다. 햄스터는 캣 타워에 있는 고양이에게도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어.”
“근데 허리는 좀 어떠세요?”
“아까 무리했는지 지금도 아프네.”
고양이가 허리를 두드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게 갑자기 그렇게 뛰어. 나도 깜짝 놀랐잖아.”
강아지가 궁금하다는 듯이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관심 좀 끌어보려고 그랬지.”
“그러다 허리 나간다.”
“그러게 말야.”
“병원 안 가봐도 돼?”
“한 며칠 이러다 말겠지.”
강아지와 고양이의 대화를 지켜보던 햄스터가 물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러다 금방 나아.”
“뭐, 지난번도 하루이틀 그러다 말았으니까.”
강아지가 방석에 엎드리며 말했다.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햄스터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어, 잘가.”
“잘가. 낼 봐.”
햄스터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지나쳐서 벽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벽을 삑삑 누르고는 문을 열었다. 햄스터는 문을 닫고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인사했다.
“오셨어요? 오늘 좀 늦으셨네요.”
“사람들이 오늘 좀 늦게 자더라고.”
햄스터가 식탁에 도시락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떻게 씻으실래요?”
“아니, 저녁부터 먹을래.”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내가 바쁘게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햄스터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펼쳐 들었다.
“어, 토리는?”
“학원에요. 이제 올 시간 됐어요.”
아내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저녁 같이 먹겠네.”
“아마 그럴 거예요.”
“요새 학원 공부는 잘된대?”
“요즘 열심이에요.”
“그래? 저번에 같이 옆집 애 따라 운동한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때는 러닝머신에 필 꽂혀서 그랬던 거죠. 러닝머신에 취직한다고. 애들 어렸을 때는 다 그렇잖아요.”
“애들이 힘든 건 모르고 폼나는 것만 알아가지고.”
햄스터가 신문을 넘기며 끌끌 혀를 찼다.
“뭐, 그래도 러닝머신도 괜찮지 않아요? 딴 집들 얘기 들으면 처음 며칠만 힘들고 나머진 편하다는데. 뭐, 사람들이 안 쓴다면서요?”
“그것도 사람 잘 만나야지. 저 위에 위에 집 얘기 못 들었어?”
“아, 거기 매일 같이 뛴다는데?”
“거기 지금 4교대도 모자라 5교대 들어갔잖아.”
“그래요?”
“응. 보통 햄스터도 안돼서 이번에 달리기 선수들 데려왔잖아.”
“그렇게 힘들대요?”
“요즘 들어 속도가 더 빨라졌대.”
“어휴, 우리 토리 그런데 걸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
아내가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니까. 애들이 그런 걸 몰라요. 운동한다고 폼나는 것만 알지.”
“그러네요.”
“세탁기 돌려봐. 3교대에 맨날 찬물 뒤집어쓰지. 에어컨은 또 어떻고. 찬바람 일으키려면 얼음 날라야지, 부채질해야지.”
“그래선지 요새 토리가 학원 공부 열심이더라고요.”
“그치. 뭐니뭐니해도 기술있는 게 최고야.”

문소리에 돌아보자 아들 녀석이 학원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냐.”
“어, 그래? 저녁은.”
“안 먹었어요.”
“빨리 씻고 와라.”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는 음식을 보더니 아들이 소리쳤다.
“잘 먹겠습니다.”
“요새 학원 공부는 잘돼가?”
햄스터가 아들에게 물었다.
“예.”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데?”
“요새 보이스 배워요.”
“보이스 그거 잘해야돼. 그거 시험에 꼭 나온다.”
“안 그래도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실기에서 점수 제일 높은 게 조종하면서 보이스 같이 하는 거야. 그게 점수 젤 높아.”
“아아.”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빠를 존경스럽게 쳐다보았다.
“그거 안 되면 무조건 떨어지는 거야. 무조건 해야돼.”
아들이 입에 가득 밥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항상 보이스는 연습해야돼. 이럴 때 어떡하라고 배웠어?”
“아아아~”
“끝이 흔들리면 안돼. 그것보다 더 올라가야지.”
“아아아-”
아들이 턱을 들고 높게 소리를 뽑았다.
“그치그치. 평소에도 그 소리 내는 연습해야돼. 언제든지 나올 수 있도록.”
“아, 그렇구나.”
“그리고 너 목 관리 잘해야된다. 감기 걸렸다간 큰일 나. 언제 소리 낼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돼.”
“전 아빠가 면허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래?”
“학원 애들이 다 부러워해요. 우리 학원 애들 중에 1종 면허 있는 아빠는 우리 집 밖에 없어요. 아빠, 최고!”
하면서 아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옆에서 아내가 말을 보탰다.
“이 동네 전체에서 네 아빠밖에 없잖아.”
“그래, AI가 대세야. 열심히해.”
그 말에 아들이 열심히 머리를 끄덕였다.
임정연
소설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았다. 소설집 『스끼다시 내 인생』 『아웃』과 장편소설 『질러!』 『페어리랜드』를 펴냈다. 2016년 출간한 장편 『페어리랜드』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되었다.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re_etc&ps_boid=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