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 / 혁명의 날에 죽은 이들을 위해 -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 / 혁명의 날에 죽은 이들을 위해 -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4.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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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 / 혁명의 날에 죽은 이들을 위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 / 혁명의 날에 죽은 이들을 위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 / 혁명의 날에 죽은 이들을 위해 - 김춘수 시인의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김춘수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그대들 가슴 깊은 청정한 부분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
서울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대전에서도
강이 되고 끓는 바다가 되어
넘쳐서는 또한 
겨레의 가슴에 적시는 것을,
1960년 4월 19일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잔인한 달 4월에
죽었던 땅에서 라일라크가 피고
그대들 죽음에서 
천의 빛줄이 나래를 치는 것을,
죄 없는 그대들은 가고,
잔인한 달 사월에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이
메아리 되어
겨레의 가슴에 징을 치는 것을,
역사가 제 발로 달려오는 소리를……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사상계』(1960. 6)

 

오늘은 4ㆍ19혁명이 일어난 지 59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0년 4월 19일에 200명이나 되는 학생과 시민이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 이전에 3ㆍ15부정선거를 규탄하던 마산 시민 12명이 경찰의 발포로 숨을 거두었다.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고, 서슬 푸른 제1공화국을 12년 만에 무너뜨렸다. 삼가 그때 숨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아침에 김춘수의 시를 읽는다.

T.S. 엘리엇이 쓴 「황무지」의 유명한 첫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김춘수의 이 시는 이런 부정선거가 어디 있냐며 다시 하라고 목 터지게 요구하다 죽은 학생들의 영령을 추도하고, 총기 난사로 자신의 죄악을 덮으려 한 위정자와 경찰 수뇌부의 폭력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시는 후반부에 이르러 “그대들 음성이/ 메아리 되어/ 겨레의 가슴에 징을 치는 것을,/ 역사가 제 발로 달려오는 소리를……” 하면서 4․19혁명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장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춘수는 이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1957)처럼 주제의식이 뚜렷한 작품을 쓴 적이 있기는 하지만 분노에 사로잡혀 이런 시를 쓴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부정직한 선거를 다시 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나선 시위 대열을 향해 총기 발포를 명령한 이들을 시인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의 관념 편향은 존재론으로 바뀌었고, 절대순수를 위한 이미지 구축은 무의미시론으로 확대되었는데 이 시는 그 대척점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시 가운데 하나다. 바로 이런 특이성에서 이 작품의 의의를 찾을 수도 있다. ‘절대순수’를 지향하고 있던 시인이 격분에 사로잡혀 이런 시를 쓰게 했을 만큼 4ㆍ19혁명은 수많은 시민들이 피로써 이룩한 진정한 ‘혁명’이었다. 혁명 이후 그 정신이 다소 희석되어 박정희 장군이 정치일선에 나설 꿈을 꾸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4ㆍ19가 시세계를 바꾼 시인으로 김수영을 꼽지만 김남조ㆍ박목월ㆍ성찬경ㆍ조지훈 등 이른바 ‘순수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이 혁명을 예찬하고 데모대를 격려한 격정적인 시를 썼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사상계』는 그해 6월호를 ‘민중의 승리 기념호’로 발간하면서 이들 시인의 시를 실었고 4월혁명 기념시집인 『항쟁의 광장』은 일간신문과 대학신문, 잡지에 발표된 30편을 묶은 시집이다.

그해 4월 19일의 함성은 그만큼 컸었다. ‘무차별 사격 명령’에 의해 시작된 총소리는 서울 시가지를 피로 물들게 했지만 4월 19일은 광복 이후 이 땅에 처음으로 민주주의의 씨가 뿌려진 날이다. 김춘수는 그대들 음성이 “강이 되고 끓는 바다가 되어/ 넘쳐서는 또한/ 겨레의 가슴을 적신다”고 감격에 가슴 떨며 썼다. 김춘수의 시를 가슴에 새기는 4월 19일 아침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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