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생각의 여름, <활엽수>
(11) 생각의 여름, <활엽수>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7.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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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한그루 활엽수여

그 둥근 잎새같은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오

뾰족한 아픔들이 돋아나네

뾰족한 아픔들이 자라나네

그대여 더 늦기 전에

-생각의 여름, <활엽수>

 

여름 숲은 풀내를 품은 바람이 숲보다 먼저 사람을 설레게 한다. 나뭇잎을 용케 피한 햇살들로 인해 몸이 따가워진다. 잠시 뒤, 구름은 오고 하늘이 밤처럼 어두워진다. 소나기를 품은 적란운이 기둥처럼 위로 뻗어있는 구름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이윽고 비는 비를 몰고 오고, 비가 장대처럼 또 하나의 숲을 이룬다. 숲 곁에서 물이 또다른 숲을 이루고 있었다. 냇물은 흙탕물에 넘치고, 계곡은 급류를 만든다. 그렇게 내려간 물은 아랫마을에서 홍수를 이룰 것이다. 그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도 우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니, 옷이나 얼굴에 비 한 방울 안 묻히고 다닐 수는 없다.

고등학교 때 나는 걸핏하면 소나기를 맞고 집까지 걸어가는 버릇이 있었다. 때로는 비에 젖은 채로 버스 좌석에 탔을 때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철없는 객기였다. 의자가 젖을 것을 전혀 고민하지 않은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조그만 이슬비 하나에도 우산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전에는 곧 그칠 비나 소나기는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맞아도 상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내일 입고 나갈 옷을 생각하고, 내일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내일 건사할 건강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신중함은 때때로 도움이 되지만, 때때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생각만 그렇게 자라나고, 그렇게 모가 난다.

생각의 여름. 특히나 저 곡이 실린 앨범은 특이하다. 오로지 기타와 목소리로만 담겨있다는 점이 그렇고, 그렇게 실린 앨범이 고작 30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그는 곡을 짧게 쓰는 편이라, 가사라고 해보았자 저게 다다. 그러나 곡의 울림은 결코 러닝타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틀즈의「Yesterday」 같은 곡도 원곡은 2분 4-5초 되는 짧은 곡이다.) 생각의 여름은 대신 그 안에 자신의 말을 아끼고 생략한다. 역설적으로 이 점이 그의 곡을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 두 대의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은 활엽수의 모양을 포옹하는 존재로, 침엽수의 모양을 뾰족한 아픔으로 비유한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화자는 활엽수의 마음에 대고 간절하게 안아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뾰족한 아픔에 찔리기 전에 안아달라는 진심이 저 짧은 가사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시각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또 청각적으로도 생각의 여름은 심플하게 자신만의 공감각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자신의 간절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자신이 간절할 수 있는 순간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무력감이 그 간절함으로 인해 순식간에 불붙기도 한다. 다만 불붙을 때 내 가슴에 얼마나 마른 장작처럼 되어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참혹할 뿐이다. 그 고통없이 글을 쓰는 일은 있을 수 없으리라. 기실 저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건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아픔을 낫게 하는 연고는 ‘서로’라는 사실을 비바람 속에서 깨닫는다. 나무와 나무가 모인 숲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내듯.

당신의 포옹을 받기 위해 나는 좀 더 넓은 가슴이나마 되어야 하리라. 그칠 기미가 없는 비를 바라보며 나는 당신의 표정을 기다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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