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7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③ 소크라테스와 회의정신
[연재]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7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③ 소크라테스와 회의정신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9.04.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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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7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③ 소크라테스와 회의정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7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 ③ 소크라테스와 회의정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3회에 걸쳐 ‘텍스트에 담긴 인문정신’을 분재한다.

③ 소크라테스와 회의정신
 
머 대체로 보아왔지만 물가의 뜬풀을 살짝만 걷어내도 거기 놀라운 물속 풍경이 펼쳐지듯, 꼭 그렇게 서구의 정신을 살짝만 걷어내도 거기에는 불굴의 저항정신과 도저한 탐구정신이라는 놀라운 인문정신이 흘러 왔음을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구의 인문정신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소크라테스를 얘기하게 되는데, 왜냐하먼 바로 여기에 하나의 프로토타이프한 원형으로서 죽음을 불사한 인문정신 고유의 회의정신이 저류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그는 철학사상 가장 '문제적인problematic' 철학자였다. 그가 그렇게도 문제적이었던 이유는 시대의 금기taboo에 도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건드렸다. 그가 권력자들에 의해 고발당해 독배를 마시고 죽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신앙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신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하 ‘변명’)

이런 사실을 잘 보먼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당대에도 청년들을 가르쳤던 어떤 신념체계와 형식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이것이 국가신이라는 대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그가 이런 국가신을 믿지 않았던 최초의 문제적 철학자였음을 미루어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대체 문제적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게 했던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를 고발한 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를 고발함으로써 이득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시인 밀레토스였다는 사실이다. 

“밀레토스는 시인들을 대신해서 나와 싸우고 있습니다.”(‘변명’)

즉 운명이 갈린 법정에서 대화하는 두 당사자는 고발자와 피고발자, 원고이자 피고인 밀레토스와 소크라테스다. 두 사람은 지금 시인계급과 철학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암시한다. 즉 시인 밀레토스가 체제순응적인 입장에서 체제비판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이에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변론을 벌이는 역사적인 법정공방을 통해 우리는 시인과 철학자의 문제를 넘어, 바로 여기에 시와 철학이 하나의 시대의 형식이자 제도로서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시가 지배담론을 상징한다면, 철학은 대항담론을 대변한다. 이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이르게 한다. 즉 시의 어떤 부분이 체제순응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고, 철학의 어떤 부분이 이와 다르게 체제비판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는지. 이는 다시 시와 철학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긍극적인 목적을 밝혀야 할 것을 주문한다. 이와 동시에 시와 철학의 충돌은 하나의 역사적 충돌이자 문화적 충돌의 하나로서 당대의 그리스가 ‘문화의 이중적 위기’(루카치)에 처해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중요한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시에 대해 적의hostility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국가])에게 계승되어, ‘시인추방론’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왜 시에 적의를 품었을까. 이는 공자가 소설에 공포(반고, [한서예문지])를 느꼈던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문체사에서 매우 날카로운 문제 중의 하나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운명을 내건 시인과 철학자의 싸움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시와 철학(소설)이 단순한 형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 형식이 어떤 무엇에 복무하고 있느냐라는, 그러니까 효용성과 관련하여 형식과 권력은 매우 긴밀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문체의 이데올로기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다른 신들에게는 시인들이 찬송가와 찬양의 노래를 바치면서도~”([향연])라며 에로스에 대한 찬양을 제언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시의 전통적인 기능이 바로 '신의 찬미'([신통기])에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무사이 여신들은 불멸의 선율로 노래를 부르며/우선 신들의 고귀한 자손들,/즉 가이아와 광활한 하늘이 낳은 신들을 찬양하며,/그런 다음 신들의 자손인 선을 베푸는 자들을 찬양한다./그리고 계속하여 이 무사이 여신들은 노래의 시작과 끝에/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모든 신들 중에서/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힘이 엄청난지 찬양한다” 
 
시인들이 신들을 찬양했던 근본 이유는 그들이 힘이 센 자들이고, 선을 베푸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선한 자들, 그들은 참나무와 바위투성이뿐인 숲에서 살고 있던 자연신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숲에 살고 있는 자연신들은 천둥과 번개, 비와 바람, 구름을 몰고 다니는 괴력을 지녔다고 보는 신들이었을 것이다. 하늘의 신 제우스가 바로 그런 자연신들의 대표신이었다. 곧 당대에 시는 이렇게 제우스로 대표되는 자연신들을 찬양하는 하나의 찬미의 형태로 기능하였던 이데올로기 형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찬미의 시적 서사의 형식을 띠고 나타난 것이 바로 기원 신화이고 영웅 서사이다. 다시 말해 시는 하나의 부족 신화로 당대의 지배계급인 귀족, 영웅들을 찬미하는 기능을 떠맡았던 이데올로기이자 제도로서 아무도 건드려서는 안 될 신적 위엄을 지닌 하나의 지배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산악지역에서 해안도시로 내려오고, 나아가 하나의 해양국가로, 다시 아테네를 동맹의 축으로 하는 그리스 해양제국으로 발돋음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의 관심은 자연보다는 도시가, 신보다는 인간이, 신성보다는 이성이, 시보다는 철학이, 즉 집단적 동일성보다는 개별적 차이를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 아고라의 문제적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타났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상징되는 그리스 희랍철학의 배경이 바로 도시의 시장바닥agora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나는 자연에 대한 사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변명’)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전통적으로 신을 대변했던 시인이 아니라 시장의 상인-요즘말로 부르주아, 부르주아의의 어원이 된 ‘bourg’는 도시라는 뜻이다-을 대변했던 장똘뱅이 철학자였다는 것은 왜 그의 철학이 이성철학인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암시를 주고 있다.  
 
시인은 왜 철학자를 고발하였나, 문제적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시인의 고발은 형식과 권력에 관련된-‘한 시대의 지배적인 형식은 언제나 그 지배계급의 형식이었다’-대논쟁이자 지배적 형식에 대한 래디칼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체사적 대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본다. 
 
......

 

김상천 문예비평가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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