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 /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 여종하의 '강가강에 울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 /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 여종하의 '강가강에 울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5.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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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 /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 여종하의 '강가강에 울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 /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 여종하의 '강가강에 울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 / 인도 갠지스 강가에서 - 여종하의 '강가강에 울다'

 

강가강에 울다

여종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낯설고 먼 곳으로 두려움처럼 떠나왔던가,
내가 그대여라고 부르며 손 내밀거나
머물렀던 자리마다 악취로 썩어갔던가
내가 병(病)이고 독(毒)이었던가
그러나 다시 연민이여,라고 부르면
문드러져 툭 떨어진 손가락이거나
발가락을 뒤에 남기고
붙잡는 이 아무도 없던 세상과의 지독한 결별을 떠올리며
죽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떠나왔던가
죽음보다 멀리 혹은 죽음 언저리
저물어가는 강가강(江) 가를 배회하는 저 개들
입가에 피를 묻힌 저 비루먹은 개가
나였던가, 저 눈빛 속의 나
죽음보다 깊은 상처의 우울은 광기와 분열을 지나
내가 낳은 아이 또한 길 위에 버려두고
망 연 자 실 넋 나간 날들을 지나, 낯선 길 위에서의 잠
다시 돌아가 몸 누일 집은 간 곳 없고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서성이는 개,
다 버리고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시(詩)마저 간 곳 없는 낯선 길 위에서 독한 쓸쓸함의 허기는
이빨을 드러내고 내 살점을 내가 뜯어먹으며
내 뼈다귀를 입에 문 채
문득, 저물어가는 강가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
나도 저들처럼 강가강에 죄 씻듯 나를 씻으면 정화될 수 있을까
죽음을 마시고 새로 몸을 얻는 몸이 될 수 있을까
모독처럼 문드러지기만 하는 세월의 문둥병도 다 나아
늦었지만 우리 화해하자며 새로 시작하자며 내가 먼저
세상에 반듯한 손 내밀 수 있을까, 
도무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나는 
배낭 속의 해골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두워진 강가강 위로 무슨 알지 못할 눈물 같은 그리움이
한 점 꽃등(燈)으로 흐르고

—『강가강에 울다』(한국문연, 2013)

 

<해설>

갠지스 강을 산스크리트어로 하면 강가(Ganga) 강이다. 바라나시에 가본 이는 알 것이다.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인도 여행은 편안한 관광일 수가 없다. 입가에 피를 묻힌 비루먹은 개에게 자기 자신을 이입했을 만큼 시인은 그때 무엇인가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가 보다. “죽음보다 깊은 상처의 우울”은 광기와 분열을 지나, 시인이 낳은 아이 또한 길 위에 버려두고, 자신은 먼 인도의 낯선 길 위에서 잠을 자곤 했다. 

버릴 것 훌훌 다 버리고 여행길에 나선 것은 그렇다 치고, 다시 돌아가 누울 집이 간 곳 없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다고 할지라도 사람에게는 안식할 거처가 있는 법인데 화자는 돌아갈 집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비루먹은 개에게 자기 존재를 이입했던 것이리라. 주인 없는 떠돌이 개의 신세나 자기 신세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인데, 그 여행길도 “다 버리고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시(詩)마저 간 곳 없는 낯선 길”이다. 

이 시의 화자는 “도무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다. 그녀는 배낭 속의 해골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강가강을 바라본다. 어두워진 강 위로 흐르는 것은 눈물 같은 그리움이다. 어디를 향한, 누구를 향한 그리움일까? 강가강은 몹시 불결한데, 그 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영혼이 정화되는 체험을 한다. “죄 씻듯 나를 씻으면 정화될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지만, 시인도 그곳에서 심신의 정화를 경험하고서 귀국했으리라.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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