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쓸 때는 대상에 흠뻑 젖을 정도로 깊이 관찰하라. 길상호 시인, 동서문학회 특강에서 시를 말하다
시를 쓸 때는 대상에 흠뻑 젖을 정도로 깊이 관찰하라. 길상호 시인, 동서문학회 특강에서 시를 말하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5.1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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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동서문학회가 주관하는 길상호 시인 초청 문학 특강이 지난 3월 21일 신사역 인근에 위치한 MG타워 유심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날 길상호 시인은 동서문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며, 시를 쓸 때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강의했다. 길상호 시인은 시를 쓸 때에는 흠뻑 젖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쓰고자 하는 대상을 깊게 관찰하라고 이야기했다.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은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여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모르는 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를 펴냈다. 현대시동인상과 천상병 시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질마재해오름문학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이다.

​길상호 시인은 이번 강연에서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었다. 가장 먼저 길상호 시인은 ‘만들 듯이 쓴 시’와 ‘상상을 통해 머릿속에 떠올리고 쓴 시’는 한눈에 봐도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만들 듯이 쓴 시’에는 시인의 감정이 많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길상호 시인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상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정보가 들어가 있기 마련이며, 시를 쓸 때도 자연히 대상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 시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상호 시인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던 대상들도 언젠가는 내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시를 제대로 쓰려면 그런 대상들을 쉽게 지나치지 말고 대화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의 이러한 생각은 대학 시절 선배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대학 시절 선배는 길상호 시인에게 “시를 만드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고, 일상이 시가 되게 하라.”는 충고를 했다.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길상호 시인은 하루에 만나는 스무 가지 사물들과 이야기를 하고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민들레가 눈에 들어오는 날에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민들레에 대한 것들을 쭉 질문하며 관찰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길상호 시인은 “학교에 가는 데에 두 시간이 걸리더라.”며 “나중에는 연못가에서 점 보는 할아버지, 책 팔러 다니는 아저씨와 함께 학교의 삼대 명물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현재 길상호 시인의 관심은 기르고 있는 세 마리 고양이를 향해 있다. 박지웅 시인의 집에 모여 있을 때, 한 지인이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뽐내는 길상호 시인을 향해 “길상호 물어!”라고 농담을 한 것이 유래가 되어 첫째 고양이의 이름은 ‘물어’이다. 나중에 입양한 둘째와 셋째 고양이의 이름은 운문이와 산문이이다. 길 시인은 “시적인 것들을 많이 보여주는 동물 중 하나가 고양이”라며 자신의 고양이들이 시의 감각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길상호 시인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은 어느 밤에 슬며시 깨어나 고양이들이 귀뚜라미를 죽인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시 ‘그늘에 묻다’로 썼다. 시에서 화자는 “식은 귀뚜라미를 주워/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고는/그늘로 덧칠해놓은 창을 닫았다.”고 말한다. 길상호 시인은 죽은 귀뚜라미가 안타까워 묻어줘야 할 것 같은 생각과, 고양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고 전했다. 고양이에게는 흥미로운 장난이 귀뚜라미에게는 생이 끊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상호 시인은 고양이와 귀뚜라미의 삶은 ‘자연의 삶’이라며 거기에 자신의 입장을 앞세워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순리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길상호 시인은 이때 서로를 잇고 있는 관절이란 얼마나 약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이야기했다. 길상호 시인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시를 통해 세상의 슬픔을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슬픔이란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가 슬픔을 털어내는 도구도 아니었다. 길상호 시인은 자신에게 ‘시’란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 연결된 관절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울음을 옮겨놓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대상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그들의 감정에 흠뻑 젖어야 하는 것이다.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길상호 시인은 시를 쓸 때에는 오래 걸어보시라고 추천했다. 이어폰을 꽂거나 핸드폰을 보지 않고 귀와 눈을 연 채로 걷는 것이다. 이때 매일 다니는 길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아야 한다. 길상호 시인은 “결국 시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며 골목길이나 시장길을 일부러 다니며 평소 볼 수 없던 풍경과 사람을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강연을 마치며 길상호 시인은 시를 쓰는 동서문학회 회원들에게 “우리가 못 보던 것들을 새롭게 계속 쌓아가야 한다.”며 “그러려면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아다닐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동서문학회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
동서문학회 단체사진. 사진 = 육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