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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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박미산

 

부챗살처럼 펼쳐든 패를 읽는다
어이쿠, 박홍조 씨 오셨네
엄마가 매조를 내리친다, 찰싹 
경로당 화투 치냐?
엄마의 재촉에
에라, 어차피 효도 화투인데
껍질을 남기고 알맹이를 가져온다
내가 패를 미처 뜨기도 전에 엄마는 
흑싸리부터 친다
따닥 새들이 찰싹 붙는다
싹쓸이한 화투판
아버지 보우하사 엄마 날이네
판이 끝날 때마다 
똥이 왔다 간다
엄마 앞에는 파란 돈이 수북하고
홍조 띤 엄마 얼굴 위로 
팔공산이 떴다 
껍질만 먹고 알맹이를 남긴 엄마
화투패가 잦혀지며
네 엄마 저세상 갈 때 
좋은 화투목 열 개쯤 
관에 넣어주라던 박홍조 씨 
번쩍, 광을 내며
판에 들어온다

-『문학나무』(2009. 겨울)      

        

<해설>
  
대머리 박홍조 씨는 화자의 아버지다. 화투만 쥐면 엄마는 신바람이 난다. 딸까지 오게 해 화투판을 펼친다. 화자는 껍질을 남기고 알맹이를 가져오는데 엄마는 껍질만 먹고 알맹이를 남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하염없이 퍼주고 세상의 많은 딸은 염치 좋게 가져가기만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느덧 엄마 앞에 파란 돈이 수북하게 쌓여가고, ‘효도화투’의 결과 “홍조 띤 엄마 얼굴 위로/팔공산이” 뜬다. 이렇게라도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가족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이 시의 재미는 은유에 있다. 시행 하나하나가 돌려서 하는 말인데 그것이 우리말의 독특한 재미이기도 하다. 대머리 박홍조 씨가 “번쩍, 광을 내며/판에 들어온다”는 결구는 이 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마지막에 이르러 시를 확실히 빛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하고 싶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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