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시세계의 근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학의 집 서울에서 독자들과 만나
문태준 시인, 시세계의 근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학의 집 서울에서 독자들과 만나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5.22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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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맨발”과 “가재미” 등 다수의 시집을 펴내 문학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문태준 시인으로부터 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가 있었다. 3월 20일 문학의 집 서울에서는 188번째 수요문학광장 '이 작가를 말한다'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문학의집 서울이 주최했으며 서울특별시와 유한킴벌리가 후원했다. 초청 작가는 문태준 시인이며 사회는 김태형 시인이 맡았다. 

문태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문태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시가 유년시절 기억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의 기억과 생각, 가난했던 생활이 현재에도 영향을 끼쳐 시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의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로 ‘가족’을 꼽았다. 

문태준 시인은 작년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진행한 시상식에 참여한 바 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 문태준 시인은 왈칵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시상식장 객석에는 팔순을 앞둔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이 전부 모여 문태준 시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보는 순간 문태준 시인은 가슴이 무너지듯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뭉클함은 문태준 시인이 가진 과거의 기억과 가족에 대한 추억에서 기인했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시에 외할머니, 큰누나, 어머니와의 추억이 어떻게 서려있는지를 각각 말해주었다. 

문태준 시인 강연이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문태준 시인 강연이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유년 시절 문태준 시인의 부모님은 다른 집에서 일을 해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정구지(부추)를 경작하는 작은 채마밭이 하나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집에서 일하는 데에 썼기 때문에 자주 풀을 매러 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그 작은 밭에서 정구지는 잘도 자라났다. 어렵게 사는 부모님을 딱하게 여긴 외할머니가 옆 마을에 살면서도 매일 새벽같이 찾아와 밭을 매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태준 시인에게 외할머니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존재였으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는 외할머니가 시 외는 소리를 듣게 된다. 시를 욀 거라 생각도 못 했던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는 문태준 시인에게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다가왔다. 이때의 경험은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라는 제목의 시가 됐다. 시에서 외할머니는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이”시를 외다가 “남세스러워라, 남세스러워라”하며 자신이 쓴 시를 주워 담는다. 

문태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문태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첫 기억’이라는 시는 문태준 시인이 스스로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에 대해 쓴 시이다. 3~4살 때 큰 누나가 문태준 시인을 업고 가난한 집 흙 마당을 빙글빙글 돌던 기억이다. 문태준 시인은 어린 시절에 누나가 자신을 업고 노래 비슷한 것을 흥얼거리는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시로 썼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누에치는 방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식구들에 대한 기억은 “마치 기숡의 흙이 흘러내리듯 가슴이 흘러내리는 기억”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태준 시인은 “무척 할 말이 많다.”며 어린 시절 크게 아팠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열이 펄펄 끓는 문태준 시인은 알고 시인의 어머니는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동네 의사로부터 자식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자식을 살리고자 병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때의 체험이 어려 있는 시 ‘소낙비’에서 화자는 “앓는 나를 들쳐업고 뛰던 어머니처럼 소낙비는 뛰네/곧 떨어질 것 같은 꽃모가지를 업고 뛰던 내 어머니처럼 소낙비는 뛰네”라고 이야기한다. 문태준 시인은 이때 이후 자신은 “죽음의 세계를 갔다 온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크게 아팠던 기억이 있었기에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각별하다고 전했다.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비밀,  문태준 시인에게 듣다

김태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태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태형 시인은 20여년 전 ‘요즘 실험시는 길게 쓴다.’는 생각으로 문태준 시인에게 “시를 길게 써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문태준 시인은 그 조언을 듣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시를 써나갔다며, 오히려 “제 조언을 들어서 장황하게 시를 썼으면 지금의 문태준 시인이 없었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세계를 처음부터 꿋꿋하게 지켜가는 시인”이라고 칭했다. 

그런 문태준 시인에게 김태형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비밀을 말해달라”고 청했다. 이는 같은 세계에 살면서도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비결, 그것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시를 쓰는 비결을 물은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이 작업을 하는 방식에 대해 말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문태준 시인은 “제 책상에는 돌도 있고 시골에서 가져온 석류, 유자 같은 것도 있다.”며 “색감이 있는 아주 원색의 사물이나 작물, 열매 같은 것을 보려고 제 책상에 두는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주로 새벽에 작업을 하지만 새벽에 많은 시간 작업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두세 시간 시도 읽고 새로 발간된 잡지에 실린 시인들의 시도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며 “그럴 때에 어느 날 돌이 각별해진다.”고 말했다. 외롭고 쓸쓸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생명 없는 정물들 각자가 어떤 존재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이 글을 읽거나 쓰는 동안 함께해주는 그런 것들이 글 쓰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적적함을 달래준다고 말했다. 사물을 가까이 두고 그것과 함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문 시인의 시를 쓰는 비결이다. 

문태준 시인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문태준 시인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끝으로 문태준 시인은 “출항할 때에 시작과 끝이 같이 있다고 한다.”며 “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출항에서부터 역경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문태준 시인은 “저도 그렇고 시 쓰고 계신 분들이 그 역경을 이겨내길 바란다.”며 “제일 위안이 되는 것은 나 혼자 (새벽에) 깨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선가 선후배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