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로부터 듣는 장르작가의 삶... ‘작가로서 계속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고 싶어’
정세랑 작가로부터 듣는 장르작가의 삶... ‘작가로서 계속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고 싶어’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5.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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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진행된 안전가옥 스튜디오 라운지 [사진 = 김상훈 기자]
행사가 진행된 안전가옥 스튜디오 라운지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지난 18일 성수동 안전가옥에서는 장르&서브컬쳐 마켓 ‘최애전’ 행사가 진행됐다. ‘최애전’ 행사에서는 다양한 굿즈가 선보이는 마켓을 비롯해 강연, 토크, 쇼케이스 등이 진행됐으며, 오후 5시부터 정세랑 작가로부터 장르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보는 “장르 작가 10년 생존기”가 열렸다. 

정세랑 작가는 2010년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작품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저서로 "덧니가 보고 싶어", "이만큼 가까이",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 다수가 있으며 여러 작품집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2014년 제7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2016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고,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우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화가 예정되어 있다.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 저명한 문학상 수상, 유명 플랫폼에서의 드라마화까지. 행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순탄히 쌓아왔으리라 생각하지만, 정세랑 작가의 작가로서의 삶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이날 강연에서 정세랑 작가는 “시작부터 내가 장르작가라는 자각은 없었다.”고 운을 뗐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세랑 작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세랑 작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정세랑 작가가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07년의 일이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던 정세랑 작가는 시, 소설 등 문학책부터 철학책, 실용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직접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여러 편을 쓴 정세랑 작가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문학상 공모전에서 빈번히 낙마하는데, 심사평에서 ‘재미있고 발랄하지만 장르적 요소가 있다’, ‘장르작가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세랑 작가는 “불과 10년 전이지만 당시는 더 보수적인 분위기였기에 장르적 요소를 가진 작품으로는 상을 타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했으며, “다른 사람이 나를 장르 작가라고 부른다면 나는 장르 작가인가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문단 출판사, 신춘문예 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그만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당시 복간된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과 인연이 닿아 ‘드림, 드림, 드림’으로 작가로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판타스틱”은 곧 폐간에 이르게 되고, 작가로서 지속적인 지면이 없다는 불우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장르문학과 관련된 지면은 지난 수년 사이 웹소설 붐이 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오프라인 지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온라인 지면은 조금이라도 무겁고 진지하면 수익을 내기 어렵거나, 아예 수익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세랑 작가는 “문단 잡지는 생태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구조인데, 장르문학은 폐간되면 지면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았다.”며 출판, 번역, 연재, 문학상, 레지던스에 이르기까지 장르문학과 ‘문단문학’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정세랑 작가는 “번역의 기회가 문단문학에만 주어졌고, 해외 레지던스나 국내 레지던스 모두 문단 작가에게만 넘어갔다. 연재 지원이나 문학상도 없었고, 공적 자원이 장르문학계로 하나도 흘러오지 않는 상황이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에는 한 잡지에서 장르문학과 문단문학 작가 모두에게 청탁을 한 일이 있었다. 두 분야에 모두 친구들이 있었던 정세랑 작가는 같은 잡지의 청탁에 장르문학 작가와 문단문학 작가 사이에 고료의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의 2배에 가까운 차이였고 정세랑 작가가 항의를 하며 똑같은 고료를 받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세랑 작가는 “장르문학 작가와 문단문학 작가의 계약서가 서로 달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대담을 진행 중인 정세랑 작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대담을 진행 중인 정세랑 작가 [사진 = 김상훈 기자]

- 장르문학에서 문단문학상 수상에 웹소설 연재, 드라마화에 이르기까지...

2013년 정세랑 작가는 출판계에서 문학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였는데, 1,000~1,500부를 팔아서는 전업작가로서는 살 수 없었고 스스로를 더욱 알릴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학상은 주관하는 출판사에서 수상 작가의 이름을 알리고자 노력하기에, 신인 작가로서는 이름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정세랑 작가는 13년 말에 창비 장편소설상을 받으며 문단문학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정세랑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창작을 시도했는데 첫 번째가 문학상 수상이라면 두 번째는 웹소설 시도였다. 정세랑 작가는 “소설의 영역이 종이 잡지 연재에서 웹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며 “연재를 웹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형식적 고민을 시도해보았던 것이 ‘웨딩드레스 44’와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웹소설을 연재하는 것은 실패했는데 정세랑 작가는 “완전히 ‘폭망’했다.”고 웃어보이며 “장르 문법이 다르고 장르 작가라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에는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있은 직후 문학계에서 마음이 뜬 상태였고 잡지 촬영을 하며 문학계의 차별을 인식한 상황이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는 잡지 촬영을 위해 경력과 나이, 성격이 비슷한 여러 작가가 모인 상황에서 특정 지원금이나 특정 문학상을 자신만을 제외한 전원이 받은 것을 알게 되고 “나에게 흰자는 줘도 노른자는 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정세랑 작가는 “21세기 작가들이 할 수밖에 없는 모험이다. 업계가 잘 맞지 않을 때 영역을 바꿔보지 않으면 자신에게 잘 맞는 게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계속 작업을 해나가려면 돈을 주고 편견과 차별 없이 대해주는 업계로 넘어갈 필요성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각본가로 참여했던 드라마는 적절한 배우를 캐스팅하지 못해 제작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엎어졌지만 대신 “보건교사 안은영”의 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려오고, 결국 각본을 맡아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배우 캐스팅을 거쳐 지난 2월 26일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장르작가에서 시작해 소위 ‘문단작가’로, 웹소설가로, 드라마작가로 여러 시도를 해본 정세랑 작가는 “작가 한 사람으로서 계속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고 싶다.”라며 작년에 게임회사에서 연락이 왔었다고 이야기했다. 체력적 문제로 게임회사와 협업하기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새로운 매체를 시도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장르문학계에 대해서는 “업계에 변화가 생겨나며 장르지면이나 출판사가 약진하고 있다.”며 “안전가옥 같은 공간도 다시 생기는 등 장르의 부흥기인 것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면의 부족, 아직 이어지는 차별, 공적 자원의 편파적 분배 등의 문제는 여전하다. 정세랑 작가는 “장르문학계는 잘 됐다가 안 됐다가를 반복하기에 만약 작가로서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업계의 영향일 수 있다. 업계가 어떻게 하면 좋은 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가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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