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시인 비평문 대필 사실 인정... 차현지 소설가 ‘대필 제안 수락하는 후배, 신인 작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
김경주 시인 비평문 대필 사실 인정... 차현지 소설가 ‘대필 제안 수락하는 후배, 신인 작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9.05.3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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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 / performance / 2016.2.27.6pm @ space Haebang, seoul
VEGA / performance / 2016.2.27.6pm @ space Haebang, seoul

[뉴스페이퍼 = 이민우 기자] 지난 5월 27일 오후 미디어 아티스트인 흑표범(예명)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김경주 시인에 의한 비평문 대필 사실을 공개했다. 흑표범 작가는 김경주 시인에게 의뢰했던 원고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가 차현지 소설가가 쓴 것이며, 이를 김경주 시인이 고백하였기에 정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차현지 소설가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자초지종을 밝히며 “대필 제안을 수락하는 후배, 신인 작가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는 흑표범 작가의 개인전 “VEGA”에 대한 비평문으로, 개인전 “VEGA”는 영상작품과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자 했다. “VEGA”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관객이 퍼포먼스와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참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상실을 애도하여 주목을 받았다. 개인전 “VEGA”에 대한 내용은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에서 정성스럽게 묘사 및 해설되고 있다.

흑표범 작가 페이스북 갈무리
흑표범 작가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흑표범 작가는 2016년 개인전 “VEGA”를 열며 김경주 시인에게 전시 비평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원고를 전달받은 흑표범 작가는 이를 수록해 도록을 내고,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 및 미술 정보 사이트에 게시한다. 김경주 작가로부터 메일이 온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5월 초의 일이다. 비평을 쓴 줄 알았던 김경주 시인이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 ‘후배’가 대필을 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고백과 사과의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메일에는 내용 중 글을 썼다는 ‘후배’가 누구인지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흑표범 작가는 대필자 입장에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만약 그렇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대필자인 후배 작가의 연락처를 묻게 된다. 이후 대필자인 차현지 소설가와 연락이 닿은 흑표범 작가는 대필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한 후 글쓴이의 이름을 바꾸고 이를 정정하게 된 경위를 각주로 남기게 된다.

"시인 김경주에게 본 전시의 원고를 의뢰하여, 2016년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 원고를 받아 도록과 홈페이지에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 5월, 김경주 시인 본인의 고백으로 이 원고가 ‘대필’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원작자인 차현지 소설가와 직접 사실을 확인, 원고 게재 동의를 구하였기에, 본 글의 저자명을 김경주에서 차현지로 정정하였습니다." - 저자명 수정 각주

- 김경주 시인, ‘세월호 관련 감당할 수 없었다... 서로 돕는다고 합의 하에 한 일. 강권 없었다’

김경주 시인은 대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강권이나 강압적인 상황 아래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2016년 흑표범 작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김경주 시인은 “세월호의 상실에 대한 글이었고 써보려 했지만, 언어로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러는 사이에 마감이 지나버렸다.”고 설명했다. 이 일을 토로하자 차현지 소설가가 자신을 돕겠다고 나섰으며, 차현지 소설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원고료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감이 지난 시점에서 차현지 소설가를 소개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난감한 일이었다는 김경주 시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차현지 소설가가 도록 원고의 글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자 결정한 일”이며 “속이거나 강요한 일이 아니었으며 '대필'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이름을 밝히게 된 것은 과거에 약속되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원고를 작성할 당시 “차현지 소설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지 않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오히려 제가 나중에라도 흑표범 작가님에게 말씀드려 원고 작성자의 이름을 정정하자고 말했다.”며 “올해서야 늦었지만 흑표범 작가님께 사과를 한 후 사실관계를 말씀드렸고 차현지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연락드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차현지 소설가에게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경주 시인은 “마감을 펑크내고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논란과 작가로서의 신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며 “친구인 차현지 소설가의 글을 제 이름으로 갖고 싶은 마음도 없고, 제 이름으로 그 글이 남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뒤늦은 용기이지만 이제라도 원고 작성자를 바로 잡는 절차를 밟았다.”라고 밝혔다.

- 세월호에 관한 경험 잃어버린 채 살아... 대필 제안 수락하는 후배, 신인 작가 없었으면

그러나 비평문을 대필한 차현지 소설가는 김경주 시인과는 상반된 내용을 이야기했다. 김경주 시인이 먼저 대필을 제안했으며 거부하기 힘든 관계 안에서 제안과 수락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차현지 소설가는 당시 김경주 시인은 신인인 자신의 유일한 문학적 소통이자 창구였으며, 김 시인의 자질구레한 일을 돕거나 임금을 받아 일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하게 되는 소위 '열정페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차현지 소설가는 “김 시인은 본인이 추진하던 프로젝트에 저를 넣었고, 그에 대한 답례 혹은 보상으로 조연출을 제안했다. 도와달라는 표현이었지만 그건 착취였다.”고 지적했다. 일을 하며 ‘경험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차현지 소설가는 “김 시인은 본인의 영화, 뮤지컬 등의 작업에 저를 투입시키면서 경험이 될 거라고 말했으나, 그 경험이 소설가의 삶에 어떤 이력을 남겼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차현지 소설가는 대필 작업 또한 김경주 시인이 제안했으며 후배로서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차현지 소설가는 ‘써볼 수 있는 지면도 없고 이만한 분량의 원고를 써보는 것이 기회가 될 것이다’는 시혜적 태도 아래서 제안이 이뤄졌다는 것을 지적하며 “사람의 관계가 수평적일 수가 없다. 단순히 당장 돈이 필요해서, 당장 지면이 필요해서 적극적으로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매문하는 것을 기꺼워할까.”라고 반문했다. 또한 대필이 이뤄지던 당시에 ‘나중에 이름을 바꿔주겠다’고 들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대필의 경험은 차현지 소설가에게 가시처럼 꽂혀있었고 특히 세월호와 관련된 경험을 잃어버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차현지 소설가는 세월호 및 전시 “VEGA”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에 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글을 볼 때마다 너무나도 참담한 마음이었다고 토로했다. 의뢰자였던 흑표범 작가에게도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고통받던 차현지 작가는 4월 초 자신의 SNS 계정에 대필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한다. 과거에 돈을 받고 이름을 지운 원고를 썼지만 큰 후회를 하고 있다는 내용과 문학 권력에는 다양한 형태의 착취가 존재한다고 지적하는 글이었다.

김경주 시인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김경주 시인이 경고한 부분
김경주 시인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김경주 시인이 경고한 부분

해당 글은 인물이나 사건을 특정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5월 초 차현지 소설가는 김경주 시인으로부터 글의 정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김경주 시인이 흑표범 작가에게 대필에 관한 사과 메일을 보낸 시점과 맞물려 있다. 차현지 소설가가 반박 메일을 보내자, 김경주 시인은 SNS 계정을 전체공개로 유지하고 자신에게 사과문을 보낼 것을 요구했으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주변 사람에게 말 하고 다닐 것이다. 그 파급력은 너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를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흑표범 작가와 만난 차현지 소설가는 자신이 비평문을 대필했음을 밝혔고, 흑표범 작가는 필자를 수정하는 각주를 달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너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를 남긴다. 인스타에 올린 글을 내리고 사실관계에 오해가 있었다는 사과글을 내게 개인적으로 보내라.(인스타를 전체공개로 한달간 유지하고) 그럼 법적인 조치를 마지막으로 고민해 볼 것이며 공개는 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 역시 너가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이 글의 전문과 자료를 첨부해서 뿌릴 생각이다. 나 역시 너가 하듯이 이제 너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주변사람들에게 말 하고 다닐 것이다. 그 파급력은 너의 주변사람들과는 다를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 토요일에 변호사를 만나 최종자료를 확인하기로 했다. 기한은 그때까지 딱 하루 준다. - 김경주 시인이 보낸 경고문

차현지 작가는 “작가라는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없는 시절에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서글픈 마음이 컸다.”며 “정말 후배를 생각했다면 후배의 이름을 떳떳하게 명시해줄 수 있는 제안을 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대필을 수락하는 후배 작가나 신인 작가들이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흑표범 작가는 이번 사건에 대해 “'VEGA'는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하였기에 더욱 마음을 많이 썼던 작업이었다. 공간해방을 통해 가능한 전시이기도 했으며, 때문에 미학의 언어보다도 살아있는 문체로 작업을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김경주 시인에게 청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경주라는 사람의 감수성에 가지고 있는 기대가 있었는데 남의 글을 본인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며, 저와 독자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속였다는 것은 작가 윤리로서 변명할 수 없는 문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