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컬’을 사유하기 위해 ‘로컬’을 부정하다, 박형준 평론가 평론집 “로컬리티라는 환영"
[인터뷰] ‘로컬’을 사유하기 위해 ‘로컬’을 부정하다, 박형준 평론가 평론집 “로컬리티라는 환영"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5.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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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서울공화국’은 정치부터 경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서울에 집중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고도성장 시기, 개발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서울=중앙’과 ‘지방=주변’이라는 틀은 공고해졌다. 지역은 중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예비 지역이나 특수성을 탈색되어버린 공간, 중앙에 연료를 공급해주는 소비재가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서울공화국’의 시대에 집중은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문학이나 국어 또한 예외는 아니며,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방에서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비평을 하는 이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서울과 지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들의 목소리는 중앙중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때때로 중앙에 대한 동경 어린 탄식이나 무력감으로 끝나거나, 지방을 다양성의 원천이나 신성한 공간으로 여기는 관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로컬리티라는 환영 표지
로컬리티라는 환영 표지

문학평론가 박형준은 비평집 “로컬리티라는 환영”(두두, 2018)에서 이제는 새삼스러워진 것일지도 모를 ‘로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먼저 ‘로컬’의 환영을 부정한다. 박형준 평론가는 “지역에서 문학 창작/비평한다는 자의식”이 “지역이라는 존재 조건을 ‘신성 장소’로 숭배”하거나 “우리 안의 후진성을 옹호하는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지역에서 문학을 창작하고 비평하는 행위는 “중앙중심주의라는 권위적 문화주의와 대결하는 민주주의의 투쟁”이자 “우리 안의 토착적 기득권을 내파하는 자기 혁명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인 박형준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인터뷰 중인 박형준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로컬리티라는 환영”은 또한 그동안 본격적인 문학비평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사람과 사회, 즉 지역 문학공동체의 바람직한 방향을 이야기한다. 박 평론가가 말하는 지역 문학의 가치와 문학공동체의 방향이란 무엇일까. 뉴스페이퍼는 박형준 평론가를 ‘부산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환영과 낭만적 대상 넘어 로컬의 민낯 응시할 수 있어야’

비평집 “로컬리티라는 환영”은 총 3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언어의 평준화와 다양성의 소멸을 지적하고, 지역어의 자유로운 발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2부에서는 비평가의 소명과 책무를 살펴보고 ‘혁명’이라는 키워드로 장소와 재현, 신성화에 대한 생각을 작품을 해설하며 밝힌다. 3부에서는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지역 문학공동체의 침묵과 공모를 지적한다. 서울에 있는 소위 ‘중앙문단’이라는 것이 그 규모와 확장성으로 인하여 기필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면, 지방에서의 ‘문단’은 관계성의 그물이 더 끈끈히 옭아매는 암묵적 공모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게 된다. 박형준 평론가는 3부에서 지역 문학공동체의 응답과 무응답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로컬리티라는 환영”을 관통하는 핵심은 환영이나 로맨티시즘에서 벗어나 지역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응시는 ‘시좌(視座)’라는 키워드로 제시된다. 시좌란 어느 곳에 앉아서 어떻게 보는가를 의미하며, 네트워크나 커뮤니티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박형준 평론가는 로컬에서의 시좌야말로 로컬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의 가치를 우리는 무심코 ‘새로운 것’, ‘낯선 것’에서 찾고 만다. 이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중앙에 대립하는 가치로 내세우고자 하는 것인데, 지자체가 단절된 지 오래된 전통문화를 부활시키거나 시민단체가 지역의 특정 인물에게 화석화된 가치를 부여하는 등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형준 평론가는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것’은 정작 새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모든 삶의 흐름이 중앙중심주의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중앙은 자신이 가진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을 ‘표백’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중앙은 다시 그것을 ‘낡은 것’으로 표백해버리기 때문에 낯선 것, 새로운 것의 추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지역의 가치는 ‘시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은 중심부로부터 소외되고 네트워크에서도 단절되어 있다. 또 중앙의 인프라를 누리고 싶은 욕망, 중앙과 접속하고 싶은 욕망이 착종되어 존재한다. 박형준 평론가는 “네트워크 접속 의지와 인프라에 대한 욕망을 절단하며 우리가 놓여 있는 시좌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비평적 개입이 필요하다.”라며 “이것이야말로 로컬리티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로컬리티라는 환영”에서 제시하는 환영은 지역을 소비재나 유용성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중앙중심적 관점을 비롯해 지역을 낭만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행위 또한 포함하고 있다. 

“지역이 문화적으로 열악하고 인프라가 부족하니 서로 연대하여 타락한 중앙에 맞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표현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역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낙후함과 부족함, ‘찌질함’이나 불공평을 은폐시키고 쉬운 조화로움으로 해결하려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뭉쳐야 한다며 갈등을 봉합하고 연대만을 강조하는 것은 낭만적 태도이다. 박형준 평론가는 “지역, 로컬, 로컬리티라는 키워드는 거대한 중앙중심주의나 중심부 문화론에서 담지 못하는 다양한 목소리와 삶을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연대에 대한 자의식이 오히려 지역에서의 건강한 삶을 해치고 망치고 때로는 은폐하며 잘못된 환영을 생성하거나, 낭만적 지역성에 빠져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대한 낭만적 태도는 지역의 문학단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형준 평론가는 “지역에서 지역 내부의 사안을 비판하면 건강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공격’이나 ‘의리 없음’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역의 문제뿐 아니라 문학비평에도 이러한 인식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박 평론가는 “지역 문인단체라는 폐쇄적 커뮤니티 속에서 비판할 수 있는가, 비판이 부재한 커뮤니티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예술적 감수성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며 “지역사회에서 비판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검열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부산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박형준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진행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부산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박형준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진행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박형준 평론가는 3부 “비평의 불화不和와 연대의 (불)가능성”에서 지역의 문학단체를 ‘지역문인공동체’와 ‘지역문학공동체’로 구분한다. 지역문학공동체는 자조적인 상태를 넘어서 상호소통하고 문학적 장의 생산력을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구분되는 지역문인공동체는 ‘지역을 물리적 권역으로 나누어 각자의 이념과 스타일에 맞추어 소유하고자 하는 데만 골몰하는 집단’이다. 전자가 ‘연대’와 ‘소통’을 중요시한다면 후자는 ‘결속’과 ‘유대’를 중요시한다. 박형준 평론가는 “문학공동체라는 것이 이렇게 딱 잘라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도 비판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문인공동체를 통해 각자가 문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면서 하나의 폐쇄적 섹터를 구축하여, 사실상 지역문화의 민주화와 공공적 가치 구현에는 기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형준 평론가의 이 같은 비판이 특정 문학단체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문인단체에서 2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았다는 박형준 평론가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하며 문화 혁신을 시도했지만 큰 공허감을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문인 단체에서 행사를 열고 대담이나 토론회를 열더라도 ‘(지역주민과) 정말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잇따랐다고 한다.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콘서트를 열었지만 정작 시민의 참여를 크게 이끌어내지 못했고, 문학 텍스트를 두고 집담회를 열더라도 치열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문학이라는 것이 건강한 문화를 확산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박형준 평론가에게 있어서 비평과 비평가의 위치는 “자신이 위치한 ‘삶/자리Location’의 다양한 조건과 가능성을 힘껏 사유하면서도, 그것을 자기 한계로만 규정하지 않는 능동적 태도”에서 시작한다. 박 평론가에게 주어진 ‘부산 비평의 시좌’는 “중심부 문화론의 시각에서는 포착하거나 담지하지 못하는 ‘주변부 삶의 양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차”의 구성을 요구한다. 아울러 문학이란 “순수한 언어적 형상을 창안하는 아름다운 조형의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특수한 장場의 생산물”이며 문학장이란 “이전투구하는 문화판의 논리와 권력의 벡터 속에서 생산되는 전장의 공간”이다. 박형준 평론가는 자신이 속한 장에서 자기 한계의 돌파와 문학의 본질 추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고, 문인 조직의 집행부 임기가 끝난 이후에는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문인공동체’에 대한 비판은 특수한 예술공동체에 안주한 자신을 향한 ‘자기 비판’인 것이다. 

현재 박형준 평론가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지만, 또 시민단체인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지식과 마음을 나누며 시민과의 접촉면을 넓혀 가고 있다. 박 평론가는 “문학의 수행성이란 자신과 세계를 바꾸는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위상을 위해 문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그럴 바엔 문학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며 “시민사회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로컬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거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락한알'에 걸려있는 문구
'나락한알'에 걸려있는 문구

부산의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은 시민과 연구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자서전 쓰기, 독서 모임, 인문학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박형준 평론가는 “철학, 역사, 문학, 경제 등을 전공하신 분들이 시민과 만나 함께 책을 읽고, 시민들이 그걸 바탕으로 자기 생산, 자기 쓰기 활동을 창조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건강한 문학공동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지식인과 예술인이 지역사회를 위하여 기여하고 헌신하며, 시민은 그것을 바탕으로 삶의 저변을 확대하게 된다. 

박형준 평론가는 이러한 활동이 일상생활의 변혁을 만드는 감성 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진다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지식인의 역할, 연구자의 소명, 비평가나 작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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