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의 데뷔 50주년 기념, "문정희 시집" 복간본 수제본으로 출간
문정희 시인의 데뷔 50주년 기념, "문정희 시집" 복간본 수제본으로 출간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6.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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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文貞姬, 1947년 ~ ) 시인이 1969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의 역정을 건너온 세월이 50년에 이르렀다. 고교생 시절에 전국 백일장의 장원을 휩쓸며 천재 소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인은 1969년 대학 4학년 때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올곧은 시의 세계를 걷고 있다. 50년의 세월 동안 온갖 세상의 변화와 폭압을 맞닥뜨리며 시가 도달할 수 있는 보편과 공감의 어느 한 정점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삶은 단 한순간도 치열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여성에서 생명으로,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성찰과 진화하는 대지적 초월성으로 나아가는 문정희 시인의 시세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그 첫 시집을 다시 펼쳐본다.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출간되었던 문정희 시인의 첫 시집이 <청색종이>에서 수제본으로 출간되었다. 이제하 소설가의 글씨를 표제로 디자인한 초간본을 그대로 살렸으며, 금박 대신 금사로 수를 놓은 특별한 시집이다.

문정희 시인 수제본 시집 표지 [사진 = 청색종이 제공]

문정희 시인 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곳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신촌의 신혼집부터 뉴욕에 유학을 갔을 당시의 할렘을 거쳐 “자유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세계의 여러 도시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쩌면 그 이야기들이 이 세상의 좁은 구석을 조금은 넓히고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도, 춘천에서도, 보성에서도, 삼성동에서도 시인의 이야기는 멀리서 내리는 눈처럼 스며들곤 한다. 그럴 때면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오는 이야기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그대 슬픔이
저 강물의 흐름이라 한들

내 하얀 기도가 햇빛 타고 와
그대 귓전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나 그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대 또한 내 꿈을 열 수 없으니

우리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 문정희, 「노래」(『문정희시집』)

시집을 펼치면 첫 번째로 수록된 시다. “그대 귓전에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다가설 수 없는 슬픔은 살아가는 이의 운명인가 보다. 쉽게 사는 건 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랑 없이 사는 게 어려운 것처럼.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는 이들이 있다. ‘노래’하는 이들이다. 들어갈 수 없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다가설 수조차 없으면서도 그리워하는, 그런 이들이 시를 짓는다. 문정희 시인은 만날 때마다 많은 이야기들을 정열적으로 내게 들려주셨다. 문득 그것이 ‘노래’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의 생생한 목소리다.

문정희 시인은 이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시인일 것이다. 그 어느 그늘에도 숨지 않았던 시인은 오로지 자신의 삶과 세계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길을 나서고 있다. 산문집 『치명적 사랑을 못한 열등감』에서 “나는 진실로 한순간 한순간을 섬광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나만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질주하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나만의 향기로 피어나고 싶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외로운 질주가 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시인의 ‘노래’는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자기가 되어야 그 누군가에게 다가설 수 있다. 자기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가 되지 않으면 다가설 수도 스며들 수도 없다. ‘노래’는 저 먼 곳에서 돌아온다. 그리고 자기가 된다. 그렇게 다시 ‘노래’로 돌아간다.

이번 수제본 시집에서는 표제를 자수로 제작했다. 천연염색한 천에 금사로 수를 놓아 만든 양장 수제본 시집은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고요한 아름다움이 더욱 빛날 것이다.  세로쓰기 등 초간본과 동일한 본문 편집 방식을 유지했지만, <청색종이 수제본 시선> 시리즈에 맞게 판형을 B6판으로 구성했다. 내지 제본은 사철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실로 바느질을 하는 선철제본 방식을 사용했다. 하드커버와 실제본 방식으로 제작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 상태가 좋다.

문정희 시인 수제본 시집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https://www.tumblbug.com/bluepaper11/)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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