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9) / 귀한 자리 - 김우린의 '다른 이유'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9) / 귀한 자리 - 김우린의 '다른 이유'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6.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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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9) / 귀한 자리 - 김우린의 '다른 이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9) / 귀한 자리 - 김우린의 '다른 이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9) / 귀한 자리 - 김우린의 '다른 이유'

 

다른 이유 

김우린

 

터미널로 향하는 시외버스 안 
남도의 사투리가 손님 수만큼 가득하다.
마지막 오르는 커다란 고무대야 안에는
반짝이는 비늘이, 언뜻 보이는 생선 몇 마리가
회색 보자기천 밑에 숨어 있다.
검은 봉지 뭉치를 허리춤에 매달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
고무대야를 버스 가운데로 밀어 넣으며 
손에 쥔 신문지 한 장을 펼쳐 계단 위에 걸터앉는다.
등을 돌리고 앉은 할머니 뒤로 기사는 올라오라고 소리를 치지만
할머니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계단 모서리를 꽉 붙들고 고개를 돌린다.
몸에 밴 비린내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염려에

그 자리는 할머니의 지정석이 된다.
흔들리는 버스는
딱 버티고 있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는다.

—『문학에스프리』(2019. 여름)

 

<해설>

아직도 시골이 있고 아직도 시외버스가 있고 아직도 인심이 있다. 시인은 본인이 목격한 장면을 별다른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 담담히 들려준다. 문예사조 중에 상징주의ㆍ모더니즘ㆍ주지주의ㆍ초현실주의 같은 것들이 있는데, 시인이 본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기에 이 시는 전형적인 사실주의 시다. 기교적 측면에서는 낙제점인 이 시가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리가 오늘날 놓치고 살아가는, 사람 사이의 인정과 배려에 대해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고무대야를 들고 탄 할머니가 계단 위에 앉으니 위험하다.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할머니는 사람들과 거리를 조금이라도 두려고 그곳을 고집한다. 기사도 ‘다른 이유’가 있는 할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이윽고 출발하는 버스. 모든 승객이 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안전과 생선 떨이 판매를 기원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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