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 (3) 전사(戰士) 김사이와 뜨겁게 대화하다
[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 (3) 전사(戰士) 김사이와 뜨겁게 대화하다
  • 문종필 문학평론가, 김사이 시인
  • 승인 2019.06.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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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 (3) 전사(戰士) 김사이와 뜨겁게 대화하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인터뷰]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 (3) 전사(戰士) 김사이와 뜨겁게 대화하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일시 : 2019년 6월

참석자 : 문종필(인터뷰어, 문학평론가), 김사이(시인)

“온전히 일하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묶는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달라붙어 미친 듯이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그것 또한 내 삶의 조건이었으니 아쉬운 대로 가야지요. 세 번째 시집에 대한 내용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여성의 노동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여성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무엇일지 생각하는 중입니다.” -김사이 詩人

김사이 시인의 첫 시집에서는 두 힘이 공존한다. 살기 위해 밑바닥을 거닐었던 구로공단 이야기와 아버지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가족사가 그것이다. 구로공단에서 보낸 닭장 같은 생활은 그녀에게 부조리한 세상의 민낯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고, 시인이 운용하는 언어를 악착같이 만들었다. 또 하나의 힘은 복잡한 가족사에서 시작된 ‘나’의 정체성 문제이다. ‘나’에 대한 지독한 타자화는 그녀의 몸을 차갑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간혹 따뜻한 시편들도 확인되었지만, 이 시들은 시집을 통과하는 두 힘이 잠시 물러날 때 꿈틀거리는 순간의 여유일 뿐 지속적이지 않았다.

반성하다 그만 둔 날 책 표지.
반성하다 그만 둔 날 책 표지.

그녀의 두 번째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는 서정적인 문체를 바탕으로 부조리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다. 이 힘에 오염된 ‘나’를 회피하지 않고 표면에 드러낸다. 이 싸움은 첫 시집에서부터 예고되었다. 「살갗으로부터 오는 긴장」에서 시인은 “마르크스도 레닌도 주먹도 법도 주변일 뿐 / 남자들의 철옹성 같은 연대에 / 홀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가 / 지난하고 더딘 시간으로부터 / 맞짱을 뜨며 진정 고독하게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무관하지 않다.

며칠 전 나는 그녀의 신간을 읽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웹진 <문화 다>에서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라는 주제로 특집을 준비하고 있으니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때 그녀가 나에게 했던 첫 대답은 “오늘 짤렸어요. 시간 됩니다”였다.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올까.

그녀를 만나 보았다.

 

10년

문종필 문학평론가.
문종필 문학평론가.

문종필: 첫 번째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이 2008년 9월 12일에 발행되었고, 두 번째 시집이 2018년 12월 7일에 발행되었습니다. 10년 만입니다. 10년 동안 무엇을 하시면서 지내셨나요?  10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김사이: 여전히 먹고살 궁리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죽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10년의 시간이 까마득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왔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시도 쓰면서 지냈지요. 어떤 때는 한없이 안으로 침잠하다가 또 어떤 때는 거리에서 농성장에서 놀기도 하면서, 사회가 변하는 시간에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시 쓰기  
 
문종필: 시인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시집을 자주 내거나 늦게 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펼쳐 보인 예술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빠르게 시집을 펴내는 시인들에 비해 속도가 늦어 보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작법과 관련이 있나요?

김사이: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제게 특별한 습관이나 기교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어서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서 영감을 얻자마자 바로 쓰지는 못합니다. 또 규칙적이지도 않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몸에 들어와야 시가 쓰이는 것 같습니다. 언어를 잘 다루는 시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제가 그러지를 못하니 말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점들은 제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방식과 시 쓰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종필: 시작과 관련해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을까요?

김사이: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 수 있고, 글을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이 보이듯이 나와 내 시는 어수룩하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융통성 없는 점들이 닮았다고나 할까요. 나는 조직에 걸맞은 인간형이 못 됩니다. 예전에 조직 부적응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듯이 관계를 맺는 데에도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를 많이 괴롭히며 사는 편인데 시어에 그런 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합니다. 시어가 경직돼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부분들이 사유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여성

찬밥 남은 밥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는다
내 밥 구하려고 남의 밥을 하러 와서
쉴 틈 없이 밥을 해도 내 밥은 불안정한데
나는 언제 사장의 가족이 되었을까

이모 띵동 엄마 띵동 아줌마 띵동 여기요 저기요 띵동
일용직 아줌마나 돈 벌러 온 이주민 아가씨나
어이 띵동 여보 띵동 미스 김 띵동 야 띵동
시간을 떠도는 대기번호
허공에 떠 있는 가족

삶이 근육통 관절통으로 
삐거덕거리고 절룩거린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왜 아파야 하는지
이브가 여자로 기록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되었는지 몰라
여자의 노동은 속절없이 떠도는 뜬구름 같은 사랑일지도

사랑 없는 섹스 같은 앨리스의 노동
아버지나라에서 찬밥 남은 밥처럼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는 
성실한 날들

- 「성실한 앨리스」 전문

문종필: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에서 가장 묵직한 힘은 ‘여성’의 소외를 다루는 지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주제에 힘을 쏟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사이 시인.
김사이 시인.

김사이: 어쩌면 이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여성들은 수십 번 비슷한 생각을 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물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각을 못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나는 나로 살고 싶은데 자꾸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성’임을 일깨우며 끊임없이 강제하고 억압하면서 금을 긋고 있지요. 그래서 ‘나’는 ‘나’가 아닌 대상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끊임없이 분열한다는 것이지요.

문종필: 「내 죄는 무엇일까」, 「예감」, 「너의 오랜 습관인 나」, 「성실한 앨리스」, 「보통 날들」, 「사랑하니까」, 「보온도시락통」, 「아무도 없었다」, 「균열」, 「교양의 나라」, 「단풍」 등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편들 중 「너의 오랜 습관인 나」는 긍정과 부정 ‘사이’에 있는 ‘습관’의 영역을 다루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아도
살아남은 세포들이 습관처럼 깨어나
용모를 단장해서 나를 지우고 너의 습관으로 간다

오늘은 나라는 시간이 무참하지 않기를 
오늘은 내 여자씨가 무사하기를 
오늘은 또 오늘은 그리고 늘 오늘은,

너의 오랜 습관이 된 일상
내 하루의 노동과 사랑도 오르가슴도 없는 
원나이트 스탠드를 한다

 - 「너의 오랜 습관인 나」 전문

김사이: 습관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바른 행동이나 좋은 생각의 습관은 본받을 일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잘못된 습관들이 만들어낸 문화나 풍토가 상식이 되고 도덕이 되고 제도가 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또한 같은 시간에 살고 있으니 내 행동이나 생각들에도 그런 습관들이 무의식중에 녹아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문종필: 선생님의 말씀처럼 부조리한 기계의 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세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씁쓸합니다.

 

아버지

문종필: 시집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양가적인 감정에 놓여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김사이: 바람둥이였습니다. 고인이 된 지 꽤 지났어도 애증이 뒤섞여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어떤 일들이 있건 없건 간에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가장 폭력적이기도 하고 가장 아프게도 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풀어가기도 하지만 사랑만으로 풀 수 없는 아주 이상한 구성체인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한다 표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표지.

문종필: 첫 번째 시집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억세게 그려졌던 반면에 두 번째 시집에선 「틀니」나 「이부자리」처럼 연민과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가족은 정말로 이상한 구성체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생사를 넘나들다 한 고비를 넘기자 
병상에 일어나 앉은 아버지 
틀니를 쏙 빼서 닦는다
이웃집 마실 갔다 돌아온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정성껏 닦는다

어린 시절에 늘 배가 고팠다고
난리 중에 피란 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먹고 보자던 
그 긴 시간들이
신념처럼 굳게 들러붙었는지
정신 들자마자 틀니부터 닦는

달달 떠는 어눌한 손놀림
손가락이 자꾸 엇나가는데도
하나하나 정성들여 기도한다
살겠다고
한참을 바라보다 밥 먹으러 간다
살겠다고, 나도 
- 「틀니」 전문

 

너-나

문종필: 선생님의 시편 중에 「나는 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여기」, 「묻지 마 따지지 마」의 경우, 외부의 부조리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타자화시켜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합니다. 진정한 괴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요? 어떤 존재인가요?

김사이: 나를 가만 들여다보면 대체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면(假面), 이중적인 마음, 위선, 욕망 등 그런 요소들을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아직 반백을 살고 있으니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가 죽은 현실을 만든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고, 누군가는 폭력이나 차별에 대해 글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또 누군가는 거리에 나가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런 저항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누군가들은 그 생각들이 실제 일상에서,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지켜지고 있는지는 스스로 지속적인 자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감각을 열어두지 않으면 조직이나 수직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익숙해지는 건 순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 자부심들이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도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더 아래로 밑바닥에까지 내려가 착취하면서 무시하거나 배제시키고 있지요.
괴물은 괴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로 만들어지는데 사회가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더 쉽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를 부쩍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죽어야겠는데 그건 무엇인지도 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동

문종필: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노동’은 무엇인가요?

김사이: 제 깜냥으로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대부분의 노동은 원래 고되고 피로한 것이지요. 태어나면 살아야 하는 것처럼 노동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여정이랄까. 세상으로 출근해서 무덤으로 퇴근하는 그런 것…….

한국사회는 더욱더 고단한 것 같습니다. 고용 불안에, 안전 불감증에, 최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다치거나 죽거나, 하루아침에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죽음

알맞은 체온으로 알맞은 꿈을 꾸며 알맞게 살고 싶었다
나는 누구의 무엇의 부제가 아니라 나였어야 했다
머뭇거림과 두려움 사이에 망각의 강이 흘러 
오랜 세월을 외면한 나는 뿌리 없는 씨로 떠돌았다
불행의 눈동자에 갇히니 삶이 대기발령이다

그늘의 딸로 태어나 그늘진 몸에 알록달록한 무늬들 
나를 걸어 잠근 이번 생은 글러먹었다
오롯하게 내 죽음을 누리는 것
스스로 죽어가는 시간에 내가 마침표를 찍는 것
글러먹은 생에 대한 저항으로

- 「저항의 방식」 부분

문종필: “오롯하게 내 죽음을 누리”(「저항의 방식」)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김사이: 살면서 내 의지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건 착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본주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무엇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끊임없이 감시하고 감시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거나 말거나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은 자유로울까요? 죽음 또한 계급적이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묻혀 산다면 행려병사나 고독사의 통계에 보태주고 가는 것 아닌가 싶어 내 죽음은 내가 정하겠다, 하는 소심한 저항이라고나 할까요. 아직 그 시기를 정하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포근함

문종필: 「가끔은 기쁨」을 읽으면서 무기력한 지금 이곳에서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의 창작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따뜻하고 포근해서 반가웠습니다.

검은 얼룩이 천장 귀퉁이에 무늬로 있는 것
곰팡이꽃이 옷장 안에서 활짝 피어 있는 것
갈라진 벽 틈새로 바람이 드나드는 것

더우나 추우나 습한 부엌에서 벌레랑 같이 밥 먹는 것
화장실 바닥에 거무스름한 이끼들이 익숙한 것
검푸른 이끼가 마음 밑바닥을 덮고 있는 것
드러나지 않고 손길 닿지 않는 곳에
끈적끈적함이 붉은 상처럼 배어 있는 것
삶 한켠이 기를 써도 마르지 않는 것

바람 한점 없이 햇볕 짱짱한 날
지상의 햇살 모두 끌어모아
집 안을 홀라당 뒤집어 환기시킬 때면 
기름기 쫘악 빠진 삶이
가끔은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져
고슬고슬해진 세간들에 고마워서
그마저도 고마워서 순간의 기쁨으로 삼고
또 열심히 살아가는

- 「가끔은 기쁨」 전문

김사이: 이 시는 지하방에서 살다가 옥탑으로 옮기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초고로 묵혀두었다가 한참 지나 쓴 것입니다. 지하방의 환경과 옥탑방의 환경이 아주 많이 다른 건 아니었습니다만, 햇살의 귀함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우중충하고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을 즈음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서 빳빳하게 말라 춤추는 빨래들과 바람이 왔다 간 집 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순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맑아지는 마음이나 감정들은 돈이 많다거나 내 명의로 된 집이라거나 그런 것보다는 비록 옥탑방일지라도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느꼈다는 것이지요. 제가 아마 이래서 돈을 못 버나 봅니다. 

그리고 고층빌딩과 고층아파트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낮은 층은 햇볕이 들지 않거나 또 건물들이 바짝 붙어 있어서 서로의 햇볕을 막아 늘 그늘져 있는 곳이 많지요. 이 햇볕 때문에 소송도 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자신이 일하는 공간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에야 나오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던 것 같습니다.

 

가난

문종필: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가난’은 무엇인가요?

김사이: 죄입니다. 더러운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비슷한 시점에서 묘한 느낌을 받은 일이 두세 번 있었습니다. 예로 노숙자에 대한 초등 저학년들의 반응은 더럽다였습니다. 일부 젊은 세대는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해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전염병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숙자들은 노동자를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일부분이라고 믿고 싶으나 그렇지 않은 것 같은 예감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죄가 아니라고, 더러운 것도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도 그 목소리는 세상 속으로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각자 방식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앞으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가난은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점잖게 말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바로 옆에 있습니다.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닌데 사회가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편할 뿐이니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는, 이 말은 정말 아무 쓸데없는 동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그냥 가난입니다.

 

나이

문종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사이: 글쎄요. 다만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나이와 성숙이라는 것이 비례하지는 않더군요. 학식이나 부 또한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비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픈 역사를 지녔다고 해서 성숙한 사회가 아니듯 말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본인의 경험치가 모든 판단의 기준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낍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절로 성숙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들이 많아졌습니다.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

문종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희망’은 어디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요? 

김사이: 사랑이라고 쓰고 염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염치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참,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세 번째 시집

문종필: 시집과 관련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나요? 세 번째 시집은 어떻게 꾸며질 수 있을까요?

김사이: 대부분 그렇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온전히 일하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묶는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달라붙어 미친 듯이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그것 또한 내 삶의 조건이었으니 아쉬운 대로 가야지요. 세 번째 시집에 대한 내용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여성의 노동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여성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무엇일지 생각하는 중입니다.

※ 김사이 시인의 말 속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시인의 글을 읽고 질문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이 몫은 독자들에게 열어두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시인을 인터뷰한 평론가가 바라는 것은 시인의 시집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것뿐이다. 그녀가 출간한 두 권의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2008)과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2018)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

※ 위 인터뷰는 웹진 "문화 다"에서 진행한 것으로, 웹진 문화 다와 뉴스페이퍼가 공동으로 게시하였습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power_interview&ps_boid=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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