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 “더 이상 새로운 소재 없어… ‘어떻게’ 쓸지를 고민해야” 시인보호구역에서
하린 시인, “더 이상 새로운 소재 없어… ‘어떻게’ 쓸지를 고민해야” 시인보호구역에서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06.12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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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쓴 다음 단단함을 말해야 해요. 메이저에 투고하더라도 일단 잘 써야 해. 중심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9일, 대구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시인보호구역’에서 하린 시인(이하 하 시인)의 특강이 열렸다. 스스로 ‘단단한 아웃사이더’라 칭하는 하 시인은 이날 총 다섯 편의 시를 읽고 시 창작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강연에 참석한 이들은 주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하 시인은 이번 강연의 테마를 크게 ‘공감과 실감’으로 꼽았다.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올 3월 세 번째 시집 “1초 동안의 긴 고백”을 낸 시인은 “시클”이라는 신개념 시 창작 안내서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시집 첫 장을 차지한 ‘통조림’이라는 시로 낭독을 시작했다. 시 ‘통조림’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사물을 하나의 공간으로 구축하고 그 안에 갇힌 자아를 그려낸 시다.

겨울잠 자기에 가장 좋은 곳은 통조림 속이다

이렇게 완벽한 밀봉은 처음

모든 수식어가 바깥에 머문다

 

- 시 '통조림' 일부

시인은 시 창작에 앞서 가장 먼저 삶의 기척을 담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을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해야 할 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다. 그러나 이때, 시 속의 ‘나’와 ‘시인’으로서의 ‘나’는 철저히 다른 존재여야 한다. 이 둘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시적상상이 동반된다. ‘나’와 화자를 분리한 다음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정서를 그려내야 한다. 시인은 또한 번뜩이는 소재나 아이디어를 잡은 후 객관적 거리가 생길 때까지의 ‘숙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때, 그 거리는 시간과는 상관없다. 단 하루라도 ‘통조림’과 같은 사물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탐구한다. 사물과 관련한 요소나 단어들을 나열하고 메모하는 일, 이후 작가가 담고 싶은 정서를 극적 상상력으로 체험하는 과정. 무엇이든 극단까지 파헤친 후 하나의 장면을 남기는 것이 하 시인이 제안하는 창작법이었다. 

하린 시인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하린 시인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하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1초 동안의 긴 고백" 표지.
하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1초 동안의 긴 고백" 표지.

다음으로 낭독된 시는 같은 시집에 실린 ‘푸시’였다. 시인은 ‘변방에서 오래 소외된 사람이 자살의 욕구를 느낀다면?’ ‘표현적인 관점에선 어떻게 접근할까?’와 같은 질문들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직접적인 푸시’와 ‘간접적인 푸시’가 있다.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자살’과 ‘간접적인 자살’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내는 사회 구조 자체가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작용을 한다. 시의 끝에서 등장하는 ‘불편한 프랑켄슈타인을 끝장내 볼래, 진짜로 폴짝’ 하는 구절은 ‘모두 각자 안에 살아가는 괴물을 끝장내자’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그것이 ‘폴짝’하는 만큼의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리란 암시이다. 

낭독 중간중간 하 시인은 시 창작 자체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소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표현, 구조나 어법 같은 부분들에서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비단 시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하 시인은 이른바 ‘무릎을 탁’ 칠만큼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에, 구십 퍼센트 정도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인이 강조한 나머지 하나는 ‘동시대성’이다. 그에게 문학이란 우리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확정적인 건 의미가 없고 여러 관계성을 통해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들에 대한 수만 가지 층위와 시대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단단한 아웃사이더’라 칭하며 우리 모두 아웃사이더의 중심축을 구축하자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내면 무조건 2쇄는 찍는다.”, “첫 시집을 메이저에서 내야 두 번째도 낼 수 있다.” 등의 문학계 구설과 권력을 언급하며 그 사이에서도 최대한 시적 역력을 길러 메이저에게 무시 받지 않는 ‘단단한 아웃사이더’가 되자고 의지를 다졌다. 

하린 시인이 강연을 진행 중이다. [사진 = 뉴스페이퍼]
하린 시인이 강연을 진행 중이다. [사진 = 뉴스페이퍼]

 

골고루 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시에 미친 놈, 간명하게 욕이 뱉어졌지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혁명을 흉내 내던 요절’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시 ‘엔딩극장’ 일부

세 번째로 낭독한 ‘엔딩 극장’ 또한 이러한 아웃사이더 감정이 많이 반영된 시였다. 시인 스스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쓰다 죽었을 때, 과연 누가 애도해 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시작된 시다. 시를 읽은 한 독자는 시인에게 ‘공간’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하 시인은 한때 대학가 원룸에서 살던 경험을 언급하며 1인 소외 공간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크고 총체적인 공간은 시가 안 되고 작고 단순한 공간, 그 외의 단순한 것들이 시의 소재가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맨홀이나 필터 같은 것, 단순한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사물과 공간이 시가 된다. 이어 낭독된 ‘투명’과 ‘흑맥주의 밤’에서 또한 이와 같은 ‘1인 정서’가 도드라진다. 두 작품 모두 혼자 남은 화자나 소외된 자아들의 이야기다. 

독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독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끝으로 하 시인은 “다음 시집에서는 좀 더 경쾌해지고 싶다”고 전했다. 암울한 정서나 맥락은 동일하게 가되, 경쾌한 리듬감을 살린 새로운 화법이나 작법을 연구 중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거듭 ‘방법’을 강조하고 고민했다. 시집을 세 권이나 낸 중견 시인임에도 젊은 시인과 나이 든 시인, 위와 아래를 넘나드는 경계자의 위치로 자신을 규정하는 하린 시인. 그의 다음 시집이 기대된다.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하린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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