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인기념상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 폐지 촉구 집회 열려
친일문인기념상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 폐지 촉구 집회 열려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06.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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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친일 인물 김기진을 기리는 한국일보사, 수상자는 김진수 교수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집회 현장 [사진 =김보관 기자]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집회 현장 [사진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11일 오후 5시 동숭동 ‘예술가의 집’ 2층에서 문단의 대표적 친일문인기념상인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팔봉비평문학상’은 팔봉 김기진(이하 김기진)을 기리기 위해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올해 제30회를 맞았다. 이번 ‘팔봉비평문학상’은 심사위원장 정과리 연세대 교수 외 운영위원장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 서영채 서울대 교수, 우찬제 서강대 교수, 오형엽 고려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상자는 김진수(57) 강릉원주대 미술학과 겸임 교수로 수상작은 비평집 “감각인가 환각인가”(2018)이다. 

이날, 해당 친일문학상 폐지 집회는 시상식장 앞이 아닌 5분 거리에 위치한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이루어졌다. 경찰이 시상식장 앞 공원의 집회 신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집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주최했으며, ‘친일 친독재 친일문인기념문학상 폐지를 위한 작가·시민 일동’ 또한 함께했다. 시상식 장소인 ‘예술가의 집’ 입구에서는 1인 시위가 진행됐다.

‘팔봉비평문학상’ 홍정선 운영위원장 [사진 = 김보관 기자]
‘팔봉비평문학상’ 홍정선 운영위원장 [사진 = 김보관 기자]

‘팔봉비평문학상’이 기념하는 김기진은 조선의 근대문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나, 사상 전향 후 적극적인 친일 문필 활동을 전개한 문인이다. ‘팔봉비평문학상’ 홍정선 운영위원장은 최근 문단에서 제기된 김기진의 행적 논란에 대해 “당시에 언론사에 몸담으며 쓰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몇 편의 글과 관용구를 두고 대단한 친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변호했지만, 집회 현장에서 읊어진 글을 들여다보면 김기진의 친일 협력 수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기진의 시와 산문을 낭독하는 장면 [사진 = 김보관 기자]
김기진의 시와 산문을 낭독하는 장면 [사진 = 김보관 기자]

가라! 아들아, 군기 아래로!/ 신국일본의 황민이 되었거든/ 동아 190억의 전위(前衛)가 아니냐./불발(不拔)의 의기, 필승의 신념이 네 것이로다./ 대동아전쟁은 침략의 전쟁이 아니다.//국민정부와 체결한 일화(日華) 기본조약 같은 것이 과거의 어느 전사(戰史)에 일찍이 있었던 일이냐./(중략)/길은 한 가지, 구원히 사는 길은 궁극 한 가지이니/가라! 아들아, 군기 아래로 활발히 나가라!
―‘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 중에서, “매일신보”, 1943.11.05.


대장부 칼을 짚고 일어서니 장하고나/천만 명 몰려온들 두려울 것 하나 없네/조선의 씩씩한 학도 용약출전 합니다.// 신전(神前)에 맹세하네 무엇부터 맹세할까/ 열 가지 백 가지를 한목 용서 못 하리라/ 천황께 이 한 몸 바쳐 뒷일 걱정 안하오./(후략)
―‘신전(神前)의 맹세’ 중에서, “매일신보”, 1944.01.19.

김기진의 시와 산문을 낭독하는 장면 [사진 = 김보관 기자]
김기진의 시와 산문을 낭독하는 장면 [사진 = 김보관 기자]

생전 김기진은 약 17년간 일제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위와 같이 침략전쟁, 징병과 학병을 선전, 선동하는 내용을 다수 남겼다. 그의 글은 “전반적으로 구체적인 해석이나 분석이 필요 없을 만큼 노골적인 친일, 즉 군국주의 파시즘을 충동하는 시와 산문”이라는 게 집회 측 의견이다. 김기진은 이 외에도 조선총독부 외곽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조선문인보국회’ 평론수필부회평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보도특별정신대 강사, 일본 내 파쇼단체인 ‘대일본흥아회 조선지부’ 총무위원 등 총 여덟 직책을 아우르는 친일 단체 인사로 활동해왔다. 이러한 까닭에 친일인명사전에는 김기진의 이름이 남겨져 있다. 그는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반민족 인사로 수배되었음에도 체포되지 않았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 문단의 원로로 ‘한국펜클럽’ 고문과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 측은 “문학상을 시행하는 일은 단순히 작가의 업적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문학 역사에 위인을 새기는 행위”라 주장하며 한국일보사에 조속한 해당 문학상 폐지를 요구했다. “김기진과 같은 신문학의 개척자이면서도 명백한 친일 문인의 경우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라는 성명문도 함께였다. 이어 “문학 독자들과 문인들 자신을 위해서도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친일문학상의 폐지가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3.1백주년 임시정부 백주년 문단 적폐 친일 문학상 청산’을 요구하는 임성용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3.1백주년 임시정부 백주년 문단 적폐 친일 문학상 청산’을 요구하는 임성용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시상식 장소인 ‘예술가의 집’ 앞 공원의 집회 신고가 거절된 탓에, 혜화역 인근 집회가 이루어진 동 시간대에 1인 시위를 진행한 임성용 시인은 “보수언론 조선일보사와 중도적 언론임을 표방하는 한국일보사는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사에서 주최·주관한 ‘동인문학상’은 물론 서정주의 친일·친독재 논란 후 2017년 이후 일시 중단된 ‘미당문학상’의 예시도 함께 언급하며 거듭 친일문학상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어 임 시인은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위원 중에는 이른바 ‘문학과지성’ 동인들이 다수이며, 그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돼왔다는 주장 또한 내세웠다. “특정 문예지 또는 출판사 인사들이 한국 문학비평계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게 시인 및 집회 측 입장이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이동하는 집회 인원들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내리쬐는 햇볕 아래 이동하는 집회 인원들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팔봉비평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는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집회 대부분은 사전 신고된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조형물 앞 인도’에서 이뤄졌다. 집회 말미엔 시상식 장소 ‘예술가의 집’ 앞을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예술가의 집’ 앞은 집회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서울혜화경찰서’에서 ‘구청에서 관리하는 공원’이라는 이유로 집회 신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술가의 집’ 앞에서는 임성용 시인의 1인 시위만이 가능했다. 1인 시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신고 없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경찰 측은 ‘관할 구청에서 공원 집회를 불허한다’는 핑계로 애초 집회 측이 원했던 시상식장 앞 공원의 집회 신고를 거절했다. 물론 ‘집시법’에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집회나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는 조항이 있긴 하다. 그러나 뉴스페이퍼가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 박찬홍 주무관에게 확인해 본 결과 해당 장소의 경우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 구역이며, 집회일 전후로 ‘서울혜화경찰서’에서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6월 11일 마로니에 공원 ‘예술가의 집’ 앞 공원 구역에서 예정된 행사 또한 일절 없었다.

현장 취재 후, 확인차 ‘서울혜화경찰서’ 정보계 최우영 경장에게 거듭 연락했으나 매번 답변이 달랐다. 행사가 이루어지는 공공장소였기 때문이라거나 관할 구청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끝에 본인은 현장 없었어서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들을 수 있었다. 더욱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담당 경찰관 권경문 경위와 임승수 경위와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 입구 [사진 = 김보관 기자]
열리지 않는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 입구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날 ‘팔봉비평문학상’ 행사는 폐쇄적으로 진행됐다. 건물 내부 안내 팻말 두 곳을 제외하고 선간판이나 포스터 등을 찾아볼 순 없었다. 2층 시상식 내부의 경우 일반인과 취재를 온 기자에게 역시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다.

최근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는 “내게 문학은, 당신에게 가 닿으려는 절박한 열망의 몸짓”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굳게 닫힌 ‘팔봉비평문학상’ 시장식장 앞에선 유리문을 지키는 한국일보 관계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 너머로는 소규모의 인원과 차려진 만찬 등이 보였으며, 추가로 진행된 취재에서 임성용 시인은 “문학상을 숨어서 잠가 놓고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라면 초대장을 가진 소수가 아닌 일반인도 모두 참여 가능해야 하지 않냐. 친일문학상 자체도 말이 안 되지만, 문학을 기념하는 행위를 그런 식으로 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