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6.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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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권태 72

김영승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뻐기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고 만원 버스를 타봐라. 만원 전철을 타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 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 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 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댓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오.”
“그러지요.”  

―『권태』(책나무, 1994)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7) / 제복을 입은 사람 – 김영승의 ‘권태 72’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김영승 시인이 자신을 권태롭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죽 나열해본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무례함이었다. 제복―예컨대 하얀 가운과 검은 법복, 성직자가 입는 옷, 경찰복과 군복. 아파트와 건물을 관리하는 수위 아저씨도 택시와 버스를 모는 기사 아저씨도 제복을 입고 있다. 제복은 그 사람에게 공적인 의무의 짐을 지운다. 예의를 지키게 하고 절도를 갖추게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 그런가. 법질서는커녕 기본적인 예의도 안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이 손가락을 깊이 베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환자를 얕잡아보고 반말을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대응했는가. 을의 처지에 놓여 있는 환자임에도 의사에게 반말로 대응하니까 얼른 존댓말로 바꾸지 않는가. 하하, 왠지 통쾌하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위세를 부릴 때, 나도 참지 말아야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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