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0) / 옛날 동시 - 강항의 '다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0) / 옛날 동시 - 강항의 '다리'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6.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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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0) / 옛날 동시 - 강항의 '다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0) / 옛날 동시 - 강항의 '다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0) / 옛날 동시 - 강항의 '다리'

 

다리 

강항 

 

다리는 
만리를 간단다. 

만리를 가도록 시키는 것은 
마음이란다. 

-최향 엮음, 『우리 옛 동시』(글동산, 2000) 

 

<해설>

한자 원문은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으로 강항(姜沆, 1567~1618)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시를 짓자 서당 훈장님이 기절초풍했다. 마음이 다리에게 명한다고. 가자, 저 들을 지나 강을 건너 산을 넘어 가자고. 만리를 갈 수 있다고. 훈장은 강항의 총기를 알아보고 큰일을 할 거라 예언한다.

강항은 스물일곱에 장원급제, 형조좌랑을 할 때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이광정의 종사관으로 군량미 수송의 임무를 맡았는데 남원이 함락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순찰사 종사관 김상준과 함께 격문을 돌려 의병 수백 명을 모았다. 영광까지 함락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해로로 탈출하고자 했지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오쓰성에 유폐되고 말았다. 오사카를 거쳐 교토의 후시미성으로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후지와라, 아카마쓰 등과 교유하며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후지와라는 조선의 과거 절차 및 상례ㆍ제례ㆍ복제 등을 배워 그대로 실행,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강항은 일본 억류 중 두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그들의 노력으로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가족 등 38명과 함께 귀국할 수 있었다. 대구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며 곧 사직했고, 순천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일본에 억류되었을 때 쓴 16권의 경서와 성리학을 논한 『강항휘초』가 일본의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귀국해서 일본 억류기 『간양록』을 썼다. 입으로 일본인을 감복시켜 만리를 배를 타고 살아서 돌아왔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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