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스웨덴 작가와 함께하는 작품 낭독, 스웨덴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 한국 김이듬 시인 참여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스웨덴 작가와 함께하는 작품 낭독, 스웨덴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 한국 김이듬 시인 참여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6.24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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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에서 스웨덴 아테나 페로크자드(Athena Farrokhzad) 시인, 한국 김이듬 시인, 자의 작품을 낭독하고 작품세계에 대해 대화 나눠

[뉴스페이퍼 = 김지현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이 이틀째인 6월 20일 오후 2시 코엑스 B홀 이벤트홀1에서 ‘한-스웨덴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 행사가 있었다. 이번 행사는 서울국제도서전 ‘스칸디나비아 포커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스칸디나비아 3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되었다. 최근 디자인과 교육, 라이프스타일 등 북유럽 문화가 주목받는 가운데 도서 분야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하여 북유럽 작가와 도서를 조명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스칸디나비아 포커스 [사진 = 김지현 기자]
서울국제도서전 스칸디나비아 포커스 [사진 = 김지현 기자]

서울국제도서전 ‘스칸디나비아 포커스’ 프로그램 중 첫 번째 행사는 양경언 문학평론가 사회로 진행되는 ‘한-스웨덴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이었다. 한국과 스웨덴의 유명 시인과 소설가가 각자의 작품을 낭독하고 작품세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행사이다. 그 중 스웨덴 아테나 페로크자드(Athena Farrokhzad) 시인과 한국 김이듬 시인의 시 낭독이 우선 진행되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과 김이듬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과 김이듬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먼저 시를 낭독한 아테나 페로크자드는 스웨덴에서 시인이자 극작가,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스웨덴 이주민들의 경험을 포착하고 이민 가정과 그들의 문화 충돌을 생생하게 재현한다는 평을 듣는다.

시를 낭독하는 아테나 페로크자드 [사진 = 뉴스 페이퍼]
시를 낭독하는 아테나 페로크자드 [사진 = 뉴스 페이퍼]

아테나 페로크자드는 자신의 시집 ‘백색 타격’ 일부 구절을 낭독했다. ‘백색 타격’은 책 한권 전체가 한편의 긴 시의 독특한 방식으로 출판되었는데, 이주민 가족들이 겪는 인종차별과 가족 내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은 속삭이는 듯 천천히 시를 낭독했다. 시에 운율이 실려 마치 슬픈 노래처럼 들렸다. 다음은 ‘백색 타격’의 일부이다.

백색 타격

우리 가족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전통을 따라 여기에 왔다

어머니는 자잘한 산타 장식품으로 재빨리 집을 채웠다

마치 자기 문제인 듯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의 득실을 따져보았다

낮 동안 어머니는 장모음과 단모음을 분별하였다

입 밖으로 내뱉은 그 소리들이

살갗의 올리브 기름을 씻어내리기라도 할 듯

어머니는 구문 속으로 표백제를 부었다

구두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의 음절들은

노르란드의 겨울보다 더 하얘졌다

어머니는 삶의 양으로 미래를 지어 올렸다

마치 전쟁을 대비하듯

교외 지하실 안에 통조림 제품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마치 그녀의 역사가

얀손의 유혹 캐서롤 요리법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저녁마다 요리법을 찾았고 감자 껍질을 벗겼다

저 젖꼭지를 내가 빨았다니

내 입속으로 어머니가 그녀의 미개함을 처넣었다니

어머니가 말했다: 도무지 생각해보지 못한 듯 하구나

네 이름에서부터 문명이 유래한다는 것을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통달한 유일한 어둠은 내 뱃속의 어둠

어머니가 말했다 : 너는 곧은 눈들을 비스듬히 기울이기 위해 태어난 몽상가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정상 참작을 고려해 본다면

호락호락 나를 봐줄 텐데

중략

아버지가 말했다: 난 내 삶을 살았어, 난 내 삶을 살았어

난 내 몫을 다 했어

이제 청춘의 평온한 날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구나

어머니가 남동생에게 말했다: 낯선 사람들을 조심하렴

만일 그들이 해를 끼치려 든다면

명심해 너는 되돌려 줄 것이 없다는 걸

동생이 말했다: 이상한 꿈을 꿨어

잠이 사라지기도 전에 새벽이 내 눈 안에서 죽었어

설탕과 살육의 인간성

빛에게 작별을 고했을 때 나는 전부 알았지

어머니가 말했다: 세포분열에서부터

유전물질에서부터

네 아버지의 머리에서부터

그런데 나는 아니야

이에 이어 김이듬 시인이 자신의 시 중 다섯 편을 추려 낭독했다. 이날 김이듬 시인은 2007년 발간된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에 실린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2014년 출간된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에 실린 ‘히스테리아’, ‘시골 창녀’, 2017년 발간된 “표류하는 흑발”(민음사)에 실린 시 ‘마지막 미래’와 ‘행복한 음악’을 낭독했다.

김이듬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김이듬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김이듬 시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할 때 몹시 부끄럽지만 ‘누군가 나의 슬픔이나 기쁨, 이 시대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면 아주 기쁜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비딱하고 삐뚤어진 시선을 가진 한국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니 입양 여성이나 버려진 사람들, 주변부적 인물들, 소수자들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있다고 밝혔다. 이날 낭독한 시 중 ‘행복한 음악’은 프랑스에서 만난 입양아와 대화를 나눈 후 쓴 시며, ‘마지막 미래’에는 사유지에 침범했다가 주인의 총에 죽은 어느 흑인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또 ‘히스테리아’는 지하철에서 치한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쓴 시로 그런 사람 조차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애쓰게 되는 시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히스테리아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중략

곯아떨어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일 놈을 한 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김이듬 시인은 이날 함께한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의 작품이 본인의 감성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에서 소개했듯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 ‘백색 타격’은 스웨덴 이주민 가정의 갈등과 소외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아테나 페로크자드가 좋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시에 운율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대화체가 많아 극본처럼 들리는데, 이 점이 새롭고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들어 자신에게 자극이 된다 밝혔다. 또 시에 파울 첼란의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신다’ 같은 시가 인용 문구 없이 들어가는 점이 흥미롭다고 자신의 감상을 전했다.

이에 대해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은 ‘백색 타격’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고 이 시가 극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하며, 사람들의 언어나 대화 이면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나 철학적인 관점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또 시의 인용에 대해서 ‘백색 타격’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인데 다른 시인의 시를 갖고 와서 활용했을 때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의미가 확장된다고 생각해서 많이 인용했다고 전했다.

아테나 페로크자드 시인도 김이듬 시인에게 시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물었다. 시를 읽으면서 신성 모독에 관한 고귀한 가치를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페미니즘, 가부장적 비판을 다룬다고 느꼈고,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철학적인 어조가 느껴졌는데 이러한 어조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김이듬 시인은 자신의 철학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늘 철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쓴다며, 좋게 봐줘서 기쁘다고 답했다. 또 신성모독과 관련하여 말로만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사랑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이 것이 신성모독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조에 대하여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사람의 심리를 시적 화자가 되어 썼다고 전하며, 시를 쓸 때 자신은 시 속에서 말하는 존재, 페르소나로 몰입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 독특한 어조가 생긴다고 했다.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내 열쇠는 피를 흘립니다 내 사전도 피를 흘립니다 내 수염도 피를 흘리고 저절로 충치가 빠졌습니다 내 목소리는 굵어지고 주름도 굵어지고 책상 서랍의 쥐꼬리는 사라졌습니다 소문대로 난 일 년의 절반을 지하실과 지상에서 공평하게 떠돕니다

나의 눈에서 물이 흐릅니다 한쪽 눈알은 말라빠졌습니다 두 다리의 무릎까지만 털이 수북합니다 음부의 반쪽에선 피가 나오고 오른쪽 사타구니엔 정액이 흘러내립니다 백 년에 한 번 있는 일입니다만

하하하 농담 그냥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라는 말을 요즘 유행하는 환상적 어투로 지껄인 겁니다 말도 하기 귀찮다는 예 바로 그 말이죠

중략

내게 없는 걸로 주세요 가령 고통이니 절망 허무랄까 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전에만 있는 그 말뜻이 통하게요 안 될까요 그럼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흔해빠진 문구를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랄까 혹은 질투라는 단어에 적합한 대상을 보내주세요

누가 봤을까요 나도 날 못 봤는데

그러나 나는 아름다워요

이날 서울국제도서전 한-스웨덴 작가와 함께하는 시 낭독 행사는 한국과 스웨덴이라는 물리적으로 먼 나라에서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어조로 시를 쓰는 공통점을 지닌 두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함으로써 청중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줬다. 시 낭독 행사 후 스웨덴 요나스 하센 케미리(Jonas Hassen Khemiri) 소설가와 한국의 한강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 중 일부를 낭독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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