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시인 특집] 2. 축하해 너의 생일을 - 양안다 시인
[신인 시인 특집] 2. 축하해 너의 생일을 - 양안다 시인
  • 양안다 시인
  • 승인 2016.08.28 21:19
  • 댓글 0
  • 조회수 122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하해 너의 생일을

 

너는 꿈을 꿨다

더 이상 내가 너를 바라보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오래 잡지 못하거나

혹은 남들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거나

너를 좋아했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남자들이 너를 왜 힘들게 했고

네가 죽고 싶을 때마다

그 마음을 숨긴 채 노래 가사를 적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꿈에 대해 말한 그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손을 오래 잡을 수도

걷는 동안 서로의 보폭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죽고 싶을 때마다

그 마음을 숨긴 채 너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나를 좋아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여자가 나를 얼마만큼 이해했고

나는 그 여자를 생각하며 어떤 시를 썼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그러지 않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였고

너는 이어폰을 꺼내며 나의 귀에 꼽고

아무런 주저 없이 음악을 틀었지만

나는 그때서야 내 생일인 걸 알았지

이 음악을 들으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고

너는 말했지만

이 거리의 순간에 서서

네가 나한테 음악을 들려주고

선물을 건네고 생일 축하해요, 말하고

축하 노래를 부르며 내 이름 앞에 사랑하는, 수식하는 것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너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언젠가 네가 지나간 꿈이 아닌 꿈으로 특별해질 수 있다면

나는 너의 꿈이 되겠다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되거나

죽고 싶을 때는 꿈속에서 오랫동안 다른 세계에 머물고

네가 적는 가사의 일부가 되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음악이 계속 흐르는데

우리는 이 사람 가득한 거리에서 제외된 유일한 악몽이었다

 

시작노트

너라면 이 시를 기억하고 있겠지.

축하해 너의 생일을, 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여태 3편의 시를 썼다. 내 생일을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 매년 생일마다 쓴 시들이다. 사실 나는 생일에 대해 별생각이 없다. 그래도 혼자 기념하고 스스로를 축하하곤 했다. 축하해 너의 생일을, 그런 제목의 시를 올해 생일에는 쓰지 못했다.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쓰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축하를 받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지만, 이상하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생일뿐만 아니라 모든 축하가,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축하를 받거나 누구를 축하해줄 때마다 떠오르는 몇 개의 장면이 있다.

우리는 평생 만날 관계가 될 거야 네가 싫더라도 그렇게 될 거야 난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 그 애가 말했다. 나는 평생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가능하다고는 믿고 싶었다. 혼자서 바라고만 싶었다. 그럴 수 없을 거야 네가 원하더라도 우리는 그럴 수 없을 거야 난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그 애에게 말했다. 그 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젠가 생기게 될 작별을 미리 우려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헤어질 일을 왜 미리 언급 하냐고, 그렇게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지. 그 친구 역시 평생 만날 수 있는 관계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지금 그 친구와 나는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젠가 헤어질 사람에게 축하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그 사실을 잊게 된다는 게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축하라는 행위가 특별하거나 부질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축하하는 일을 즐긴다. 받는 것 역시 즐겁다. 두렵지만. 우려가 되지만.

3월이었다. 겨울 외투를 벗을 수 없는 날씨였다. 늦은 새벽, 그 애의 집 앞까지 한참을 걸어가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꿈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 선명했다. 북극곰이랑 남극펭귄 중에 뭐가 더 마음에 들어? 그런 대화를 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애는 뭐가 좋다고 했더라. 기억나는 건 입김과 체온과 텅 빈 거리, 사람도 차도 없는 곳을 걸어가며 대화했다는 사실뿐이었다. 우리가 영원히 걸을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진 채.

그리고 이 시는 축하해 너의 생일을, 이라는 제목을 가진 마지막 시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스스로를 축하하지 않을 것이다. 축하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요즘 뭐하고 지내? 이 시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너에게 말했었지. 우리가 그때 했던 다짐들이 계속 무너졌으면 좋겠어. 다시 만나게 되면 옥상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거나 아무도 없는 거리를 오래 걸어도 좋겠지. 네가 이 글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냥 나 혼자만의 바람이야. 잘 지내길 바라진 않을게. 건강하게 지내.

어느 날은 꿈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들었다. 그 애가 쓴 가사를 읽었다. 내가 쓴 시를 읽어주었다. 그 애와 만나지 않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양안다

2014 《현대문학》 추천 등단.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