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 통일을 준비하는 젊은 작가 심포지엄 성공리에 개최
광주전남작가회의, 통일을 준비하는 젊은 작가 심포지엄 성공리에 개최
  • 윤채영 기자
  • 승인 2019.06.2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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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광주전남작가회의는 오후 2시부터 광주교육대학교 매체관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젊은작가 심포지엄으로 "문학, 분단을 넘어 통일을 말하다"를 개최하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통일문학의 정립을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분단문학에서 통일문학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작가회의는 "분단과 통일에 대한 제반적 문제는 사회적인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하나의 민족이 둘로 나뉜 아픈 역사는 문학작품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나며, 남북한의 문학 장르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후세대들의 감성적 연대가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날, 행사의 사회를 이송희 시인이 맡아 진행하였다. 행사는 기조발제, 발제와 토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송희 시인. [사진 = 윤채영 기자]

이어서, 김완 전남작가회의회장이 환영사를 해주었다. 김완 회장은 "올해는 대한민국이 독립한 지 100주년이 되었으며,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뜻 깊은 날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이 시간을 통해서 좋은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 멀리서 오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사진 = 윤채영 기자]

이어서, 채희윤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이 축사를 해주었다. 채희윤 고문은 "19년 만에 두 정상이 다시 만나서 손 잡고, DMZ를 왔다갔다 했던 작년의 일이 생각난다. 통일은 반드시 와야하는 우리의 사명이 있고, 또 성취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긴 하지만, 그건 쉽게 빨리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며,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거기에 대비를 해야할 것 같다. 특히, 문학을 통해서는 훨씬 빠르게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광주전남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광주의 많은 시민들이 와서 많이 들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축사를 마쳤다.

채희윤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사진 = 윤채영 기자]

기조발제는 원광대학교 교수인 김재용 평론가가 '갈림길에 선 북한 문학'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김재용 교수는 "북한은 2017년에 핵무력화를 공식으로 선언했다. 북이 수립된 이후 건군걸은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설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1978년부터 수령체계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이 만들어졌던 1932년 4월 25일로 바꾸었다. 그런데 2018년부터 2월 8일로 바꾸어 기념하고 있다"며 북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서술했다. 이어서 "김정은을 주인공으로 삼은 수령형상문학 중 눈에 띄는 작품이 2014년 1월에 발표된 김하늘의 단편소설 「들꽃의 서정」이었다. 이 작품의 문제성은 그 소재에 있다고 본다. 소설 속의 탈북자가 다시 돌아온 계기가 김정일의 사망이라고 설정한 대목을 보았을 때, 탈북한 이들 중에서 다시 북으로 귀환하려고 하는 이의 신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탈북한 이가 다시 북으로 돌아오는 여부의 문제에서 김정은의 결심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하며 북한 김정은 시대의 특징에 대해 서술했다. 또한, 정현철의 장편소설 「구기자꽃」을 예시로 들어 김정은 시대 문학의 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구기자꽃」은 고난의 행군을 배경삼아 발표한 것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고난의 행군 시절 고아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김재용 교수는 끝으로 "통일 자체보다는 어떤 통일인가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며, 최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화체제의 모색은 그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문학에는 국가의 입장과 시선을 그대로 해석하는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 문학도 존재하기에 평화체제의 과정에서 더욱 중요하다. 김재용 교수는 마지막으로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북의 문학인들은 더욱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하고, 남한의 문학인들도 이런 노력을 읽어내는 식견을 가져야 할 것이며, 힘들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길이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발제를 마쳤다.

김재용 교수. [사진 = 윤채영 기자]

기조발제를 마치고, 참여한 작가회의 회원들과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재용 교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채희윤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사진 = 윤채영 기자]

첫 번째 발표는 평택대학교 교수인 박진임 평론가가 '북한의 민족문학론 연구 : 시조문학론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박진임 교수는 첫 번째로 '북한문학사에서의 시조의 위치'에 대해 발표했다. "조규익과 박미영의 연구가 북한의 문학사와 문학연구에서 고전 시조 작품들이 연구되어 온 경향을 고찰한 것"이며, "조규익의 「북한문학사와 시조」의 북한의 이념이나 미학은 주체사상의 등장을 경계로 그 앞 시기와 뒷 시기가 구분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박미영은 북한에서의 시조 연구사와 창작시조의 현황을 모두 연구하였으며, 북한은 1957년경까지 시조 창작이 이루어져오다가 이후 단절되었으며 주체사상의 등장과 함께 시조 창작이 부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가 확인한 북한 창작 시조는 총 10 여 수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북한 시조 연구사'에 대해 발표했다. "북한은 현재 시점에서도 현대 가사집이 간혹 발간되고 있으며, 남한에서는 최남선, 이병기 등의 영향 하에서 현대 시조의 맥이 계승되어왔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현대 시조 창작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가사 문학 부흥을 위한 시도의 흔적은 1970년대 초반에 간행된 「시조문학」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어서, "북한에서 김삿갓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것은 일견 당연한 사실이다. 그는 철저히 기존 정치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자세를 보여주었고, 그를 문학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시조의 발생 자체를 사대주의사상으로부터 탈피하고 민족 고유의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계기로 보고 있는 것이며, 우리말을 질료로 삼아 민족 고유의 문학 형식을 발생시켰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시조 명칭의 유래와 시조의 발생 시기에 대한 논의'에 대해 발표했다. "북한에서는 신조, 신성, 시절가, 시절단가 등의 이름이 시조에 선행하여 사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발생 시기에 관해서도 남한에서의 연구는 려말선초 발생론 단일론으로 귀납된다"고 하면서도 "10세기 고려시대로 시조의 기원을 앞당기고 있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헌 사료적 근거들로 볼 때 시조의 발생 년대는 최충의 시조들을 기점으로 하여 10세기 말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정홍교는 주장하며, "그 주장은 민족 고유의 시가 형식으로 향가가 발생하여 존재하다 소멸한 이후 그를 대체할만한 시가 형식이 부재한 상태로 수백 년이 지속되다가 고려말기에야 비로소 시조 형식이 등장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조 형식 논의와 남는 문제들'에 대해 발표했다. "북한 문학사에서도 남한에서와 마찬가지로 3.4조나 4.4조를 중심으로 한 3장 6구 형식이 시조의 기본적인 형식이라고 보고 있으며, 시조 형식이 과연 3.4조와 4.4조의 음수율을 기본으로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작품을 개별적으로 살펴서 다시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진임 교수. [사진 = 윤채영 기자]

이에 대한 토론을 출판사 걷는 사람 대표인 김성규 시인이 진행하였다. 김성규 시인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등장을 전후로 시조 창작의 경향이 달라졌다는 기존의 연구논문이 지닌 맹점을 김하명과 고정옥의 저작을 통해 다른 의견을 제시한 면이 잘 설득되었"고, "'문화건설분야에서 자기의 것은 다 나쁘고 보잘 것 없다는 민족허무주의'를 비판하는 김하명의 글이 남북 문학의 장 모두에게 유효한 지적같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주차사상 등장 전후로 북쪽에서 창작된 시조들에 대한 자료가 더 있어야 논의나 창작이 활발했는지에 대한 실증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성규 시인은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추앙되는 최남선, 이병기보다 조운 시인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조운 시인의 월북을 북쪽에서 환영해 그렇게 평가한 것인지, 월북 이후 북쪽에서의 활동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그의 시조가 지닌 음악적 요소나 민중의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시조 형식을 혁신했는지, 북에서 다른 이유로 시조의 장에서 높이 평가 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며 토론을 마쳤다.

김성규 시인. [사진 = 윤채영 기자]

두 번째 발표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인 송승환 시인이 '오장환 시의 모더니티'를 주제로 진행하였다. 송승환 교수는 "시인이 바리케이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좋은 일 이상이다―그러나 시인이 바리케이드를 향해 나아가면서 동시에 바리케이드를 노래할 수는 없다"라는 피에르 르베르디의 말을 인용하며 발표를 시작했고, 첫 번째로, '사운드의 공습'에 대해 발표했다. 오장환의 시의 모더니티, 즉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모더니티를 성찰할 수 있는 한 편의 영화, 라슬로 네메시 감독 作 <사울의 아들>을 이야기했다. 영화 속 이미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로즈업 된 사울의 흔들리는 얼굴과 소년의 시신이 선명한 것과 달리 어둠 속 다수의 유태인들은 대부분 흐릿하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선명한 현존은 가시적인 프레임 바깥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운드 속에 있다. 그들은 프레임 바깥에서 끊임없이 프레임 안으로 공습하는 사운드의 폭력 속에 놓여있다. 송승환 교수는 "그런 점에서 '사운드의 공습'을 통해 아우슈비츠, 그 역사적 사태에 대응하는 영화의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언어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 라슬로 네메시의 영화 <사울의 아들>은, 식민지 시기와 해방 공간에서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응전으로써 시쓰기를 실천한 오장환의 시를 비춰보고 성찰할 수 있는 다초점 렌즈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두 번째로, '오장환 시의 모더니티'에 대해 발표했다. 오장환은 1947년 9월 이후, 인민 주권이 실현된 국가에 대한 열망을 가진 채 월북한다. 1949년 스탈린 탄생 70주년 기념출판으로 간행된 영광을 「스탈린에게(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라는 공동시집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1950년 5월에는 제5시집이자 소련 기행시편들을 수록한 「붉은 기(문화전선사)」를 북한에서 출간한 바 있다. 1937년 1월 28일~29일에 걸쳐 조선일보에서 발간된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에서, 오장환은 20살 나이에 이미 "문학을 위한 문학", 즉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인간을 위한 문학"이 '신문학'임을 강조하고 있다. 삶과 역사의 모순을 반영하는 비판적 사실주의와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삼는 사회주의 문학임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는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미 정치적 전위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소년기를 회상한다. 동화(童話)의 세계로 배회한다." 오장환이 백석론(1937)에 실은 내용 중 일부이다. 오장환은 "백석 씨에게서 많은 장점과 단처(短處)를 익혀 배웠다"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백석을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라고 평하면서 그의 시를 "현실을 그냥 변화시키지 않고 흡수하기 쉬운 자연계의 단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오장환은 "시는 무엇인고. 언어에는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최상급의 것이다. 우물쭈물들 하지를 마라. 목적의식을 똑바로 표현하라."고 말하며 시와 문학을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이자 매개체로써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송승환 교수. [사진 = 윤채영 기자]

이에 대한 토론을 경기대학교 교수인 김남규 시인이 진행하였다. 김남규 시인은 "영화 <사울의 아들>이 '증언과 기록'을 초과하는 말할 수 없음의 불가능성까지 표현하며, '사운드의 공습'이라는 감각적인 것의 재배치와 새로운 표현 형식을 통해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감응을 어떻게 동시에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는 점에 있어 적절한 예로 보이지만, 오장환의 자굼과 산문이 그에 적절한 지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장환은 8.15 해방 이전부터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습득이 되어 있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실천을 삶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장환의 미학적 입장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정치적 입장을 토대로 성립한다"는 송승환 교수의 말에 대해 "시적 형상화도 빈약하고, 선동적 구호에 가까운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오장환의 후기 시는, 마치 백석처럼 통시성의 분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장환의 사회주의로의 경도가 '정치적 올바름과 정치적 전위로써의 입장'이라면 오장환의 시와 산문이 이를 뒷받침하며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길항과 과제'에 적합하겠으나, 그의 후기 시의 미학적 결여를 정치적 선택으로 보충하려는 어쩔 수 없는 의도나, '정치적 올바름'으로 보려는 욕망에 의한 것이라면, 오장환의 전기적 요소와 더불어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듯 하다"고 주장하며 토론을 마쳤다.

김남규 교수. [사진 = 윤채영 기자]

세 번째 발표는 목포대학교 교수인 김개영 소설가가 '분단 소설의 한 가능성, 절대적 환대 공간으로서의 샤머니즘'을 주제로 진행하였다. 김개영 교수는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하였고, 첫 번째로 '손님과 주인'에 대해 발표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는 '주인이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절대적) 환대'가 바로 그것이다. 「손님」에 등장하는 '손님'은 근대 이후 한반도, 특히 북한지역에 들어온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의미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무속의 '손님신'으로 설정한 것은 '외부로부터 도래했다는 것', '불가항력의 힘을 가졌다는 것', 마지막으로 '주인의 지극한 환대에도 불구하고 큰 희생이 발생했다는 것'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시기, 황해도 신천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살사건인 신천사건에서 약 35,000 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는데, 이 학살의 주체와 관련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주체가 누구든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외부 이념에 의해서 내부의 주민들이 큰 희생을 치른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동일자의 폭력과 동일성의 윤리'에 대해 발표하였다. 「손님」의 주요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신천사건은 아직 그 주체가 불분명하지만 작품 내에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과정 속에서 기독교도들에 의한 무차별적 살상사건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또한, 서로 다른 동일자적 욕망이 충돌한 결과로 생겨난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배의 욕망이자 '삼킴'의 욕망이며, 동일자적 욕망 속에서 타자는 포섭되거나 배제될 뿐 주제적 입지를 획득할 수 없다. 「손님」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기독교 세력의 광기는 동일자적 욕망의 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기독교도의 동일자적 욕망은 더 강력한 동일자적 욕망과 만나게 되는데, 김일성의 공산주의가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하나님을 믿으라"는 김일성의 교시는 공산 세력의 동일자적 욕망을 잘 드러내준다. 여기서 '조선의 하나님'이란 북한 체제의 이념적 지향에 저촉되지 않는 마르크스의 얼굴을 한 신의 모습과 다름없다. 「손님」은 이러한 동일자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들이 만나 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을 되짚어보는 의미로 '짚어보는 것'이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유령은 현전으로써의 존재가 은폐하고 몰아내려고 하는, 존재보다 더욱 근원적인 사태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종교적 신념 내지는 권력의 기호에 맞게 왜곡된 사건의 국면은 이들 유령의 대화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난다. 진실의 드러남이 가능한 것은 이들 영혼들이 더 이상 동일자의 욕망에 포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떠도는 헛것들과 완전한 죽음'에 대해 발표하였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인 지젝에 의하면 죽음은 탄생과 성장, 죽음과 부패, 그리고 생태계의 순환 법칙에 의한 지속적인 변형을 뜻하는 '자연적인 죽음'과 생성-죽음-변화라는 자연법칙을 무화(無化)·단절시켜 완전한 무(無)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형태를 획득하는 '절대적인 죽음' 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 '자연적인 죽음'이 일반적인 물리적 죽음을 의미한다면, '절대적인 죽음'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생의 행위가 현생의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불교의 업보론이나 믿음과 죄의 여부에 따라 천국/지옥행이 결정되는 기독교의 구원관은 '절대적인 죽음'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일종의 사후 심판론으로 살아생전의 삶이 사후의 삶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단절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손님」에서 저승은 정확하게는 저승으로 가는 관문인데, 여기에서 저승을 생명의 근원공간으로 보는 무속의 사후관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곳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속죄의 의식을 치르지 않고서는 저승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저승은 그 누구라도 환영받는 곳이지만, 이승에 미련을 가진 자는 저승으로 건너갈 수 없다. 스스로 이승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비로소 저승은 두려움의 공간이 아닌 새로운 삶의 공간, 환대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죽음을 '돌아감'으로 인식한다. 완전한 죽음은 귀향인 동시에 귀명(歸命)이며 신생(新生)이기도 한 셈이다.

김개영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바리데기」는 한반도라는 지역적 규모를 넘어, 세계사적 시야에서 전쟁이나 테러, 난민, 이주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바리의 생명수는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약물이자 타인을 위한 눈물이고, 고통 받는 이들의 한을 씻는 정화수"라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바리'는 망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는 소설 속 류요섭 목사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며 발표를 마쳤다.

김개영 교수. [사진 = 윤채영 기자]

이에 대한 토론을 대전대학교 교수인 황정산 평론가가 맡아 진행하였다. 황정산 교수는 "우리 민족에게는 '손님'이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한반도에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은 경우이며, 주인을 생각하지 않은 손님이 우위에 선 이 절대적 환대가 결국은 이 땅에 갈등과 혼란을 그에 따른 증오와 불행을 야기했다. 또한 동일성의 윤리가 작동하는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시작하자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환대의 상한을 높게 설정하여 서로에게 절대적 환대가 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라는 발표자의 의견에서 "증오와 대결에서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는 절대적 환대의 장이 열릴 것이다"의 부분에 대해 모순되었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 굿의 형식을 빌고 있어서 그런가, 작가나 이 작품을 해석하시는 발표자나 굿이 가지고 있는 치유와 해원의 효과를 우리 민족 분단의 상처를 극복할 중요한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며, "그것을 동일성의 윤리로 설명하고, 그것은 동일자의 욕망을 가진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서, "'예전부터 살아왔던 사람살이'라는 말로 샤머니즘을 포함한 우리의 전통적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듯 한데, 자칫 모든 외래적인 것을 다 포괄해내는 우리 전통 샤머니즘의 부활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고 있고, 그럴 경우 너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는 생각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서 쓴 굿 형식이 가져온 성과도 있겠지만, 그런 형식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또한 있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하였다. 이어서 "굿이 과거를 치유할 수는 있으나, 미래의 삶을 바꿀 수 없듯이 이 소설 역시 우리의 분단의 역사와 거기에서 파생된 갈등과 원한을 돌아보고 거기에 연루된 억울한 죽음들을 위로할 수는 있지만 역사의 방향을 바로잡을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밝히며 토론을 마쳤다.

황정산 평론가. [사진 = 윤채영 기자]

 이 날, 심포지엄에는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박진임 교수의 발표를 듣는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들. [사진 = 윤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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