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 평론] 살아남은 자의 사과 -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하여
[문화다 평론] 살아남은 자의 사과 -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하여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6.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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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 평론] 살아남은 자의 사과 -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하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문화다 평론] 살아남은 자의 사과 -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하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1994년 여름, 소설가 요시유키 준노스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의외의 인물’이 장례식장을 방문합니다. 요시유키는 문단에서 나름 영향력도 있고 존경도 받았던 인물인지라 많은 문인과 편집자들이 와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문상을 다 오셨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의외의 인물’은 다른 사람들의 관혼상제만이 아니라 아예 문단 자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외의 인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신세를 많이 져서요.” 대체나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요시유키는 신인상 때부터 그를 옹호했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가 심사위원일 때마다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문상을 간 것은 문단어른에 대한 예의 때문도, 또 그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주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바로 ‘그 일’에 대해 비록 늦었지만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을까요. 뜻밖에도 그것은 ‘문학 전집’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가 주로 외국에서 살던 무렵(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됩니다) 한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번에 자기 출판사에서 『쇼와문학전집』이라는 것을 출간하려고 하는데, 그의 작품 중 A를 수록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작품을 수록해준다니 영광이지만 A가 아닌 다른 작품을 넣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상대방(해당 기획의 담당 편집자)이 매우 난감해 하면서 이미 작업이 진행 중에 있으며 길이로 보아 A가 적당하다고 말합니다.

이때 그는 상대방의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 봅니다. 일단 자신의 작품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았으며, 전집에 넣어주겠다는데 왜 그리 까다롭게 구냐는 식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는 나중에 “악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래 말투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아무튼 그는 작품을 변경할 수 없다면 아예 자신을 전집에서 빼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편집자는 당황하면서 이미 전집출간을 알리는 팸플릿에 그의 이름을 인쇄해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폭발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미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팸플릿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닙니다. 작품을 바꿀 수 없다면, 없었던 일로 하지요.” 그리고 전화를 끊습니다.

이후 해당 편집자로부터 같은 내용으로 전화가 몇 번 더 왔습니다만, 이야기는 헛바퀴만 돌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부탁을 받았는지 이번만 어떻게 안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유’를 설명한 뒤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러자 다음에는 요시유키가 사람을 통해 이번만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큰 신세를 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지만, 실무 차원의 문제를 인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을 용납할 수 없다는 판단하고 단칼에 거절을 합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담당 편집자는 투신자살을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전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지목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마음고생의 몇 퍼센트는 자신이 만들어준 것일 수도 있기에, 만약 그게 원인이었다면 죄송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와 같은 내용을 한 편의 에세이로 쓰면서, 하지만 지금 다시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똑같은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무에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어차피 치고받는 난투극의 세계와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할 수도 없고, 본의 아니게 피를 흘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책임은 내가 양어깨에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 에세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무라카미아사히도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村上朝日堂はいかにして鍛えられたか)』(1997)이라는 책에 수록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98년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동문선)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07년 출판사를 옮겨 『비밀의 숲』(문학사상사)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가 최근 문학동네에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시장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제목 때문인지 표지 때문인지 광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장수 고양이의 비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결과에 대해 무심합니다. 의도적으로 해를 가한 게 아니라면, 개인적 신념 내지 사회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모두에게 싱글벙글할 수는 없으며 본의 아니게 피를 흘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루키는 편집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과거로 돌아가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같은 행동을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은 지겠다고 말합니다.

이 에세이를 함께 읽은 많은 학생들(예술 전공)은 예술가로서의 자부심, 태도의 심플함, 고집스러움, 단호함을 멋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작가 역시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이 에세이를 썼을 것입니다. “창작과 관련하여 나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작가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창작 활동과 무관한, 단순히 재수록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실무를 원활하게 진행시키지 못한 편집자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연락을 취해 양해를 구하지 못했고(당시 장기 해외체류 중이었던 터라 연락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또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까지 주었으니까요.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의 이야기만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실제 필자 중에는 자신의 원고를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편집자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즉 자신의 원고에 애정을 갖고 저자인 자신에게 잘 대해주기(때에 따라서는 존경하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측면에서 편집자는 선생님들을 보좌하는 감정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저자를 대면/비대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편집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익명의 고객을 비대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콜 센터 직원들의 그것에 못지않습니다. 실제 저자관리의 실패는 곧 ‘편집자 실격’으로까지 간주되니까요. 

편집자의 실무는 예술가의 창작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실무적 관점에서 보면 편집자가 굳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규모가 작은 출판사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규모가 큰 출판사라면(전집과 관련하여 전화를 건 출판사는 7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대형출판사였습니다) 항상 작가가 만족하는 편집자만을 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편집자의 입장에서 보면 경향과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작가를 상대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즉 항상 싱글벙글 할 수는 없지요. 

물론 하루키가 수록 제안을 거절한 것은 편집자가 자신의 작품에 우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도 자신은 결코 편협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까지 하고요.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하루키가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원인으로 편집자가 A라는 작품(『1973년의 핀볼』) 대신 다른 작품을 싣고 싶다는 하루키의 요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점을 듭니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날아가는 비행기도 떨어뜨릴 정도로’(사이토 미나코) 인기 작가였던 하루키의 요청을 왜 받아주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것은 우문(愚問)입니다. 『쇼와문학전집』(1990년 전35권 별책 1권으로 완간, 쇼가쿠칸小学館)이란 쇼와시대의 일본문학을 문학사적으로 정리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집에 어떤 작가를 수록하고 개개의 작가에게 얼마만큼의 분량을 배정할지 그리고 어떤 작품을 수록할지는 일반 편집자들이 아니라 문단이나 학계에서 명망이 있는 평론가나 작가, 연구자들로 구성된 편집위원들이 논의하여 결정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핀볼
1973년의 핀볼

즉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1973년의 핀볼』을 수록하기로 한 것은 ‘실무’선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름의 ‘문학사적/문단적 평가’ 가운데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즉 애당초 편집자가 작가의 요청에 따라 임의로 수록 작품을 바꿀 수는 없었던 문제였습니다. 해당 전집에 수록되는 수백 명의 작가들이 모두 그와 같은 요구를 했다고 가정을 해보지요. 예를 들어 나는 이 단편은 수록하기 싫고 그 대신에 이 장편을 수록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루키는 편집자가 ‘길이’를 운운한 것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지만(예술을 길이로 운운하다니!), 전집에서 작가별 분량에 대한 고려도 문학사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채 합니다. “작가가 다른 작품을 싣고 싶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하고 다그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지만요. 

그런데 하루키가 과연 그런 구조를 몰랐을까요? 만약 알았다면(어렸을 때부터 전집을 애독했다고 하니 그럴 확률이 매우 높지요), 그것은 거절의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편집자의 비우호적인 태도나 서툰 일처리가 싫어서 거절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키가 『쇼와문학전집』에서 빠진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작가가 빠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쇼와문학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대표작가가 빠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이지문학전집』을 만드는데 유족들의 반대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수록되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런 전집출판은 힘은 힘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 기획으로(한국에 제대로 된 전집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이처럼 많은 인적 물적 자본이 투여되어 진행하던 사업이 한 작가의 작품변경 요청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편집자가 감당해야 할 심리적 압박이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하루키는 창작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적 작업으로, 난투극의 세계와 같으니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말일까요? 자세한 내용은 씌어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요시유키 준노스케가 죽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 때문에 문상을 갑니다. 평생 문상 같은 것을 안 다니는 그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나는 요시유키라는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별하려 가서 “대단히 죄송했습니다.”하고 합장하고 절을 올렸다. 내 심정을 이해해주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사실은 생전에 찾아뵙고 사과했어야 마땅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요시유키 씨 역시 결코 좋아서 중간에 끼어들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키는 이 에세이에서 두 명에 대해 죄송해 합니다. 문단어른인 요시유키와 투신자살한 편집자가 그들입니다. 사실 이 두 사람 모두 『쇼와문학전집』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한 사람은 『쇼와문학전집』에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넣을지를 결정한 8명의 편집위원 중 한 명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의 실무를 담당하던 편집자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죄송하다’의 성격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문단어른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매우 잘해주었는데 무례하게 부탁을 거절해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투신자살이 안타깝고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만, 당시 나의 판단은 옳았고 똑같은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더라도, 그러니까 그로 인해 누군가가 죽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술가적 신념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요.

하루키는 결코 편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매우 관대하기도 하고요. 그는 어떤 주의나 주장을 개개인의 취향, 취미판단으로 간주하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지요. 하지만 이해심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여 자신의 작가로서의 신념을 이야기하기 위해 안타까운 죽음을 가십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편집자의 유족이 이 글을 읽는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충분히 솔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날 그는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위세로 전집에 들어갈 작품 정도는 고를 수 있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는 흘렸지만 난투극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사가 증명하듯 항상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법이니까요.  

 

 

조영일.
1973년생. 문학평론가. 
저서에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한국문학과 그 적들』, 역서에 『근대문학의 종언』 등이 있음. esthlos@hanmail.net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letters_en&ps_boid=62&ps_mode=mod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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