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에선 만난 노르웨이와 한국의 SF 작가들, 잘 쓴 SF 소설은 ‘SF답지 않은 문학’이라는 편견 속상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선 만난 노르웨이와 한국의 SF 작가들, 잘 쓴 SF 소설은 ‘SF답지 않은 문학’이라는 편견 속상해...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06.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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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편견을 말하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과 함께 저자강연 열려
강연을 진행하는 정보라,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정소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을 진행하는 정보라,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정소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한국 SF 계에 이런 개그가 있더라고요. ‘한국 SF 팬 500명이 있으면, 한국 SF 작가랑 출판·편집 관계자랑 그분들의 가족과 친지를 합쳐서 500명이 된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첫 번째 질문이다. 이에 정소연 작가는 “굉장히 싫어하는 농담 중 하나다. 우선 너무 자학적이다. 실제로 판매되는 도서량과 불일치할뿐더러 너무 낡은 농담이라는 생각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노르웨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날 초청된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Torbjørn Øverland Amundsen) 작가 또한 “노르웨이에도 SF 소설이 많이 팔리면 ‘더 이상 SF가 아니라 문학’이라는 불쾌한 농담이 있다.”며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 통틀어 SF 장르가 가장 잘 팔리는데, 유독 SF에 관한 선입견이 있다. SF 장르로 데뷔한 작가들도 유명해지면 데뷔작을 숨기거나 부인하곤 한다.”는 말을 전했다. 전반적으로 그러한 편견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21일, 서울국제도서전 “국경을 넘어 SF를 말하다”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했으며 노르웨이 소설가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번역가 겸 소설가 정소연, 소설가 정보라가 함께했다. 이날 세 작가는 비단 SF를 향한 삐뚤어진 시선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편견에 대해 논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을 듣는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질문을 듣는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의 가장 주된 화두는 ‘아동 소설’ 또는 ‘청소년 소설’과 성인 대상 소설의 경계에 관한 의문이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자강연을 맡은 노르웨이 소설가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의 대표작은 “변신: 천년을 사는 아이들”로, 매해 열네 살이 되면 환생을 반복하는 ‘선택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가 쓴 “변신: 천년을 사는 아이들”의 경우, 한국에서는 성인 독자 대상 도서인 데 반해, 노르웨이에선 출판사에 원고를 건넸을 때부터 청소년 부서로 이관된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마케팅 방식이 달라졌고 도서관, 서점 등에 비치되는 위치가 달라지면서 ‘어떤 독자층과 소통하느냐’의 문제가 생겨났다고 한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는 본인 작품은 ‘15세에서 99세까지 아무나 읽을 수 있다.’며, “독자로서 내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친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작가는 이어 “노르웨이의 경우 성인 독자 대상 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구분이 매우 엄격하다.”고 덧붙이며 ‘한번 청소년 소설로 인식되면 그 틀 안에 갇히는 편’이라고 밝혔다. 최근 노르웨이 내에서도 이 문제가 가시화가 되어 특히 출판 노조와 작가 노조, 편집자 등이 뜻을 모아 인위적인 장벽을 허물어뜨리려 노력하지만, 변화가 느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 ‘성인 도서란 무엇이고 어린이 도서란 무엇인가?’ 는 100년 가까이 논의되어 온 문제라고 한다. 이어 작가 개인적으로 ‘어째서 성인용 도서가 더 많은가?’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작가님께 아동, 어린이란 무엇인가.”라는 한 관람객의 질문에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는 “중세 유럽, 인간의 기대수명이 30세였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열네 살이라면 이미 절반의 삶을 산 것이다. 중년에 가깝다. 실제로 어린이의 사회적 제약도 크지 않았다. 몇 십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많은 부분이 달랐다. ‘사춘기’나 ‘10대’ 등의 정의는 오육십 년 동안 상업적 목적에 의해 규정된 거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어린이’라는 게 그리 명확하지 않다. 정의가 항상 변한다.”며 ‘어린이’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명확히 밝혔다.

 

질문을 건네는 정소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질문을 건네는 정소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반면 함께 강연을 진행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 정소연 소설가와 정보라 소설가는 젠더적 이슈에 큰 관심을 가졌다. 두 사람은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에게 소설 속 정착화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 또는 성비에 관한 질문을 서슴없이 건넸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의 소설 속 아이들은 환생을 거듭하면서도 성별이 유지된다. 관련한 정보라 작가의 질문에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는 “성별을 고정한 데에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컸다. 현재 이 자리에도 젠더퀴어인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소설 속 개인들을 어떤 식으로 정체화할지 고민해보니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너무 거대한 작업 같았다.”라는 후일담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이상적인 세계라면 어린이들이 모든 걸(다양한 성별을 가진 삶을) 경험해보게끔 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소설 속 인물들은 영원히 살면서 사회의 모든 계층을 다 겪어 보았다.”라면서도, “다시 돌아간다면 해당 부분을 가장 먼저 바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부적으로는 “소설 속 여성 의사와 남성 간호사의 설정은 젠더이슈적인 부분을 고려하신 거냐”는 질문에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가 “여성 의사와 남성 간호사가 노르웨이에선 일반적이라 그런 것이다. 물론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성비나 공정성을 고려하긴 하지만. 이건 단지 의대 내 여학생들의 점수가 더 좋아서 그렇다.”라는 솔직담백한 대답을 건네 서울국제도서전 관람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강연 중 웃음을 보이는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강연 중 웃음을 보이는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처럼 기성의 편견에 대한 대담을 이어간 세 작가는 ‘SF’와 ‘국경’이라는 틀을 넘어 작가론적인 이야기들도 자유롭게 나눴다. 

“작가란 이래야 한다, 하는 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작가는 “작가로서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누군가 ‘난 그냥 썼어. 가치관 따위 집어넣지 않았어.’라는 말을 할 때 화가 난다. 글을 쓸 때 개인의 가치관이 들어가지 않을 순 없다. 본인이 글을 썼을 때 누군가 읽을 거라 생각하고 공감해주길 원한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어떤 식으로 전달될지 의식하고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국경을 넘어 SF를 말하다”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나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의 3개국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의 작가와 함께한 “스칸디나비아 포커스”의 일환이다.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3개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진행된 해당 프로그램은 여러 저자강연 외에도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휘게(Hygge)에 걸맞은 독서 라운지를 운영하는 등 북유럽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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