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2) / 현대인과 열목어 - 최승호의 ‘열목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2) / 현대인과 열목어 - 최승호의 ‘열목어’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7.05 20:52
  • 댓글 0
  • 조회수 15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2) / 현대인과 열목어 - 최승호의 ‘열목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2) / 현대인과 열목어 - 최승호의 ‘열목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2) / 현대인과 열목어 - 최승호의 ‘열목어’

 

  열목어

  최승호

 

  서울에서 나는 저녁의 느낌들을 잃어버렸다
  스타빌딩에서 큰 네온별이 번쩍거리면
  초저녁이다
  저녁 어스름도 땅거미도 없이
  벌써 발광하는 거리, 발광하는 간판의 불빛들로
  눈은 어지러워진다
  수정체가 조금씩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눈에서 열이 날 때
  열목어를 생각한다
  눈이 태양처럼 벌게졌을 때
  안과의사가 벌건 눈을 까뒤집고 들여다볼 때
  의사 선생님,
  제 눈이 매음굴처럼 벌게졌나요?
  아니면 정육점 불빛처럼 불그죽죽합니까?
  눈의 피고름을 짤 때
  붕대로 공 같은 안구를 눌러대고 있을 때
  열목어를 생각한다
  서늘한 계곡에서 눈 식히는 열목어
  그 적막 깊은 골짜기에서
  멋모르고 얕은 서울로 내려왔다면
  열목어야, 네 눈구멍에서
  붉은 연기와 그을음 조각들이 치솟았으리
                                  
  -『작가세계』(2002. 여름)

 

  <해설>

  서울의 저녁에는 어스름도 땅거미도 없다는 표현에 ‘옳거니!’, 무릎을 친다. 그 대신 발광하는 간판의 불빛들로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수정체가 조금씩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눈에서 열도 난다. 안과에 가서 눈의 피고름을 짜고 붕대로 공 같은 안구를 눌러대고 있을 때, 화자는 열목어를 생각한다. 눈의 열을 서늘한 계곡에서 식히다 멋모르고 얕은 서울로 내려온 열목어가 당한 수모는 눈구멍에서 “붉은 연기와 그을음 조각들이 치솟”게 한다. 어느 독자인들 이 시에서 환경 파괴와 대기 오염을 연상하지 않을 것인가. 

  산골에서 살던 사람이 서울에 처음 와 거리에 즐비한 대형 전광판과 광고판, 간판들을 본다면 어지럼증쯤은 확실히 느낄 것이다. 이제 강에는 열목어가 없다. 그렇게 강을 방치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보니와 클라이드도 총알의 벌집이 되어 죽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문명의 총알받이가 되어 동강을 붉게 물들이며 우리 모두 죽어갈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