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3) / 가슴 아픈 이별 - 강형철의 '출향'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news/photo/201907/55279_32444_5311.jpg)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3) / 가슴 아픈 이별 - 강형철의 '출향'
출향出鄕
강형철
치매 앓는 어머니
집 떠나네
구부러진 허리 펴지 못하고
비척비척 걸으며
딸네집 인천으로 떠나네
백구란 놈 두발 모아 뜀뛰며
마당을 긁고
어머니 세멘 브로크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고
백구야
백구야
부르며 우네
무명수건 한 손에 쥐고
백구야
백구야
부르며 섰네
담벼락의 모래 몇 개
이러시면 안 되잖냐며
무너져 내리네
-『문학나무』(2008. 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3) / 가슴 아픈 이별 - 강형철의 '출향'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news/photo/201907/55279_32441_5011.jpg)
<해설>
치매 노파가 자기를 따르던 개와 이별하고 있는 장면이다. 화자의 어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시골에서 더 이상 혼자 살 수가 없는 형편, 인천에 있는 딸네집으로 가게 되었다. 줄에 매어 있는 개(백구)는 노파가 집을 나가려고 하자 두 발을 모아 뜀뛰며 마당을 긁고, 어머니는 “세멘 브로크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고” 운다. 개와의 이별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어머니는 백구야 백구야 부르며 울더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그예 담벼락에 머리를 찧는다. 개에게는 노파가, 노파에게는 개가 가장 다정스런 벗이었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는데 운명이 둘을 갈라놓게 되었다. 아무리 치매에 걸린 환자라도 개와의 이별은 사람과의 이별 이상으로 슬픔을 안겨주었다. 개와 사람의 이별 장면을 이렇게 가슴 뭉클하게 표현한 시를 본 적이 없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