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4) / 제헌절에 읽는 시-홍완기의 '함무라비 법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4) / 제헌절에 읽는 시-홍완기의 '함무라비 법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7.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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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4) / 제헌절에 읽는 시-홍완기의 '함부라비 법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4) / 제헌절에 읽는 시-홍완기의 '함부라비 법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4) / 제헌절에 읽는 시-홍완기의 '함부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

홍완기

 

이라크 패하다. 
무모한 자, 무법자 사담 후세인 망하다. 
핵 만들려다 저주받다. 
그 저주로 초강대한 미국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말하고 
천둥처럼 으르렁거리고 번개처럼 들이치니 
말의 진위(眞僞)가 어디 있든 간에 
드디어 올 것이 와 
이 봄 어느 하루 흐린 날
바그다드 함락으로 망하고 패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초연(硝煙) 속에서 죽어갔고 
어린애가 어른 틈에 끼여 
잿더미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아, 함무라비 법전 떠나다. 
아, 함무라비 법전 어찌할꼬? 
아, 함무라비 법전! 
다음은 북한 차례로 북한 패하다. 
무모한 자, 무법자 김정일 망하다. 
핵 만들려다 저주받다. 
그 저주로 초강대한 미국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말하고 
천둥처럼 으르렁거리고 번개처럼 들이치니 
말의 진위가 어디 있든 간에 
드디어 올 것이 와 
이 봄 어느 하루 흐린 날 
평양 함락으로 망하고 패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초연 속에서 죽어갔고 
어린애가 어른 틈에 끼여 
잿더미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아, 함무라비 법전 떠나다. 
아, 함무라비 법전 어찌할꼬? 
아, 함무라비 법전! 
핵 만들려다 저주받다. 
그 저주로 초강대한 미국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말하고 
천둥처럼 으르렁거리고 번개처럼 들이치니 
말의 진위가 어디 있든 간에 

드디어 시간은 막을 내려 
이 봄 어느 하루 흐린 날 
그것으로 이라크 박물관과 도서관이 
송두리째 약탈당하다. 
그 가운데 하나 역사의 가장 기념비적인 것 
정신의 금으로 있는 광휘(光輝) 
약탈자가 누구건 간에 
이라크 부서지다. 
아, 함무라비 법전 떠나다. 
아, 함무라비 법전 어찌할꼬? 
아, 함무라비 법전! 

-『문학과 창작』(2003. 6)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

  <해설>

  오늘이 제헌절이다. 시는 시종일관 화자의 횡설수설로 진행된다. 이라크가 패한 것을 함무라비 법전이 떠난 것으로 간주한 화자는 이라크처럼 핵을 만들다 저주받을지 모를 북한을 떠올린다. 말의 진위와 상관없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닐까. 이라크는 한사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했지만 미국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시인은 이 시가 발표될 당시 국제정세를 이렇게 보았다. 미국이 북한을 다음 공격 목표로 삼고서 “어린애가 어른 틈에 끼어/ 잿더미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즉, 이라크에 대한 진지한 걱정과 미래의 한국전쟁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교묘하게 뒤섞어 이 시를 썼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함무라비 법전인가. 법전은 “정신의 금”인데 미국이 그것을 약탈해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로 나는 이 시를 반전을 주제로 한 현실풍자시로 본다. 아무튼 김정은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미국을 협박하다가 잘 안 되자 화해 무드로 가보고 있다. 북한 인민의 굶주림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자신의 생명줄이라고 생각하는 핵을 버림으로써 인민을 기아에서 구해낼까? 한반도 주변 상황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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