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5) / 시간을 조절하라-홍신선의 '누가 주인인가'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news/photo/201907/55453_32545_3732.jpg)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5) / 시간을 조절하라-홍신선의 '누가 주인인가'
누가 주인인가
홍신선
골동가게의 망가진 폐품시계들 밖으로
와르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지금은 제멋대로 가고 있는
시간이여
그런 시간이
인사동 뒷골목 깜깜하게 꺼진 얼굴의
망주석(望柱石)에 모른 척 긴 외줄금 찌익 긋고 지나가거나
마음이 목줄 꽉 매어 끌고 가는
뇌졸중 사내의 나사 풀린 내연기관 속으로
숨어들어
재깍 재까닥 가다가 서다가 하는
이 느림이 삶의 주인이다
우리의 정품이다
-『작가세계』(2003. 봄)
<해설>
시간이라는 것도 인간 발명품 중의 하나다. 고대사회에서부터 시간 개념을 만들어 썼던 인간이 지금과 같은 단위로 초, 분, 시간, 일, 월, 년을 정확히 개념화한 ‘자전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600년경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의 척도는 동양과 서양이, 고대와 현대가, 철학과 예술이, 뉴튼과 아인슈타인이 완전히 다르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늘여서 쓰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인사동 뒷골목에서 망주석을 보면서 느린 시간을 생각한다. “뇌졸중 사내의 나사 풀린 내연기관 속으로/ 숨어들어/ 재깍 재까닥 가다가 서다가 하는// 이 느림”이 삶의 주인이요 정품이거늘 우리는 어느새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게 되었다. 시간은 망주석에 긴 외줄금을 찌익 긋고 지나가기도 하고 가다가 서다가 하는 경우도 있으니,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 일이다. 시간의 주인이 될 일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