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지현 기자] 지난 15일 뉴스페이퍼 서포터즈 시민기자단을 위해 조동범 시인이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조동범 시인은 ‘아나키즘’은 먼 과거의 일로 알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사상이라고 말하며,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말했다. 아나키즘은 폭력적인 사상이나 운동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아나키스트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총칼을 들고 일제에 저항한다. 조동범 시인은 아나키즘에 이러한 폭력적 활동도 있었지만, 이는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을 뿐이고, 아나키즘 자체가 폭력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조동범 시인은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는 ‘무정부주의’라는 번역 때문이라고 보며, 무정부주의는 아나키즘 사상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시인은 ‘무정부주의’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 번역을 통해 들어온 것인데, 그 당시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 ‘무정부주의’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 테러리즘이라는 것은 잘못된 오해라고 밝히며, “아나키즘은 정부를 거부하는 것은 맞지만 정확히는 국민을 억압하는 중앙집중적 체계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아나키즘의 정의에 대해서 말했다. 아나키스트들은 100여 년 전부터 지방자치제, 분권, 유연한 정부를 주장할 만큼 상당히 민주적인 사상이라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은 아나키즘의 본질에 관해서 설명했다. ‘지배자의 부재’, ‘누구도 나를 억압할 수 없다’라는 것이 아나키즘의 본질이라며, 아나키즘을 정확히 번역하면 ‘무강권 주의’로, 모든 사람이 강제로 권하지 않는 세계가 아나키즘 세계라고 말했다. 조동범 시인은 아나키즘은 특별한 사상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지닌 보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동범 시인은 이날 강연에서 아나키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우리 삶 속에 아나키즘을 되새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동범 시인은 우리 역사 속에서 아나키즘이 어떻게 표면화됐는지 설명했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 계열은 민족주의, 마르크시즘, 아나키즘으로 나뉘며, 일제강점기 문학도 동일하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아나키즘과 마르크시즘은 같은 사회주의 계열이지만 결이 달랐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크시즘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체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마르크시즘이 ‘문학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당파성을 강조했다면, 아나키즘 문학은 예술성을 강조했다.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기 때에 아나키즘 문학인들은 최소한의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임화 시인은 마르크시즘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아나키즘 문학은 대중에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예술파적 소시민”이라고 비판한다. 이렇듯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은 아나키즘 문학 진영을 허구적, 관념적, 타협적 문학론이라고 비판하였고 민족 문학 진영은 아나키즘 문학이 진영이 불분명하다며, 기회주의적, 허무주의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우리나라 문학계는 민족주의, 마르크시즘 문학을 한 사람들이 패권을 잡아, 아나키즘 문학을 한 사람들이 1930년 이후로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교육 때는 아나키즘 문학을 가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문학 비평 책에 아나키즘 문학에 관한 분량도 적다. 조동범 시인은 이에 대해 아나키즘이 조직과 강령이 없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다 보니 체계적인 문학 이론이 없고, 역사적 입장이 없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맥이 끊겼다고 봤다.
김윤식 문학 평론가는 한국 아나키즘 문학에 대해서 “한갓 신기한 외래 사조에 대한 호기심, 민족 해방 현실 외면, 예술성만을 강조” 하였다고 했는데 조동범 시인은 이러한 비판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국 아나키즘 문학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극적인 현실을 인식하고 예술적 측면을 중요시하여 미적 완결성 추구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인간은 소외됐다. 물건들은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 됐다. 또한 우리 세계 근원인 자연의 세계, 신성의 세계, 철학의 세계를 버렸다. 이에 자연을 똑같이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이 예술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에는 자연은 예술의 본질이었다. 인간은 자연과 소통했고 자연에서 신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세기 이전에 예술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모사하고, 시인들은 자연을 이야기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삶의 본질을 찾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어서 조동범 시인은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들 중 아나키스트를 소개했다.
이육사 시인은 보통 민족주의자로 알고 있으나, 아나키스트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육사는 일본 유학 시절 아나키스트 단체인 흑우회 활동을 했으며, 아나키즘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육사 시인의 시의 다채로운 시 세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육사 시인이 개인적 감성을 노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 인식, 실향의식, 민족의식들을 아울러 서정 의식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동범 시인은 시 ‘깃발’로 널리 알려진 유치환 시인 역시 아나키스트라고 설명했다. 유치환 시인은 현재 친일 논란이 있으나,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한다. 친일파라 주장하는 이들은 유치환 시인이 만주 도적들에 관해 쓴 시 ‘수’라는 작품은 사실 항일군에 대해 썼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를 잘라’라는 구절이 있어 친일 문제 제기가 되었다고 한다.
조동범 시인은 이것으로 친일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봤다. 또, 친일 논란이 있으면 그것대로 연구해서 비판하면 된다고 밝히며, 유치환 시인에게는 친일 논란과 다른 면모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범 시인은 역사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유치환 시인이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단체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며, 이를 방증했다.
단주 유림이라는 우리나라 최초 아나키즘 독립운동가가 1946년 독립노동당이라는 아나키즘 정당을 세우는데, 이는 세계 유일한 아나키즘 정당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조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아픔으로 인해 조직이 필요하여 정당을 설립한 것이다. 조동범 시인은 유치환 시인의 형과 동생이 독립노동당 당원이었다며, 정황상 유치환 시인 역시 독립노동당의 당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조동범 시인이 유치환은 아나키스트 이진언 시인이 아나키즘 정신으로 설립한 안의중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안의중학교는 1946년 개교하여 체벌금지, 남녀공학, 이성 교제 허용, 아나키스트 언어인 에스페란토어 교육을 했던 현신하는 우리나라 학교다. 현재는 아나키스트 사상이 사그라들고 평범한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조동범 시인은 이렇게 유치환 시인이 아나키스트였을 가능성을 제시한 후 아나키즘적 관점으로 그의 시를 파악하면 전혀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시 ‘깃발’은 관념적이고 피상적으로 읽히며, 이상향에 관한 시로 배웠다. 그러나 유치환 시인이 아나키스트라고 상정하면 저 푸른 해원을 향하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명료하게 아나키즘적 사상을 말하는 형이상학적 시가 된다.

한편 이날 강연을 맡은 조동범 시인은 2002년 ‘그리운 남극’ 등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하였으며, ‘심야 베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세 권의 시집을 냈다. 또한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펴냈으며, 시 창작 방법론 ‘묘사’,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