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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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아지매는 할매 되고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 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먹을라 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 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북랜드, 2019)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15) / 구수한 농담-허홍구의 ‘아지매는 할매 되고’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인물시의 대가 허홍구 시인이 시선집을 냈다. 전에 읽었던 이 시,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대구시 중구 남성로에 가면 염매시장이라고 있다. 그 시장통 술집에서 술과 안주를 팔면서 늙어간 아낙이 이 시의 주인공이다. 단골손님이기에 농담도 가능한 것이리라.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 넘길 줄 아는 아낙의 지혜가 이 시를 살리고 있다. 마지막 연은 입가에 미소가 감돌게 하면서 얼굴을 살짝 붉게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매집’ 같은 이름의 술집이 전국 어디에 가나 있었다. 두 아낙이 식당이나 술집을 하면 남자는 이상하게도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에 가게 된다. 두 여인 중 젊은 여인을 유심히 보면서 요상한 생각을 하는 것인데, 10년을 가봐야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는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 집으로 발걸음을 하는 이 세상의 순 엉터리 사내들. 그런데 ‘단골’이라는 것은 결국 정의 산물이다. 일본에 가면 단무지 몇 조각도 돈을 더 받는다. 우리네 인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줌마!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하면 다들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온다. 그럼 그 반찬을 반도 못 먹고 남기지 않았는가. 인심이란 결국 착한 마음이다. 요즈음 문을 닫는 시장통의 오래된 식당과 선술집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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