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race)은 없다. 인종 차별(racism)은 사회적 산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 별세
“인종(race)은 없다. 인종 차별(racism)은 사회적 산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 별세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08.09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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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삶과 예술
1994년 뉴욕의 성 요한 성당에있는 토니 모리슨 [사진 출처 = Kathy Willens / AP]

미국 현지 시각 기준 지난 6일,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녀는 미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되어왔다.

39세에 첫 소설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을 발표한 토니 모리슨은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빌러비드(Beloved)”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예술가와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끈 작가이다.

토니 모리슨은 작품을 통해 미국 인종 차별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다문화주의를 재고하는 데 이바지했다. 영국 언론 가디언(The guardian)이 올린 한 영상에서 그녀는 “인종(race)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인간이라는 존재(human being)가 있을 뿐이다.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인종 차별(racism)은 사회적 산물(social construct)이다.”라고 말하며 인종 차별의 사회적 원인과 그 불합리함에 대해 지적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외곽 철광 생산도시에서 태어난 토니 모리슨은 스스로 읽고 사유하기를 권장한 용접공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녀는 워싱턴 D.C. 하워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하워드 대학은 HBCU(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 가운데 하나로 흑인 사회 지도자를 다수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HBCU란 1964년 이전 미국 내 흑인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설립된 대학을 통칭한다.

작가가 되기 전엔 워싱턴에 있는 세계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Random House)의 선임 편집자로 일했으며 작가가 된 이후에도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교육과 창작에 꾸준히 힘써왔다. 

2008년 연설 중인 토니 모리슨 [사진 출처 = Angela Radulescu / Wikimedia Commons]

사회·정치적인 소신을 밝히거나 자신이 쓴 소설과 삶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 토니 모리슨의 성향은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초기작인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의 경우 자식을 학대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검은 눈이 파랗게 변할 것이라 믿게 되는 소녀가 나오는 소설이다. “가장 푸른 눈”은 토니 모리슨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한 인물이 겪는 차별과 비애를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흑인들만의 공동체와 수녀원 이야기를 담은 “파라다이스(Paradise)”는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간 대립 및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술라(Sula)”에서는 개성적이고 현실적인 흑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며 둘 사이의 우정과 배신에 관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린다.

1992년에 발표된 “재즈(Jazz)”는 ‘재즈 시대’로 불린 1920년대 뉴욕 할렘가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사회 현실을 생생히 표현한다. 이듬해인 1993년 토니 모리슨은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2012년 버락 오바마는 그녀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1998년 한 인터뷰에서 토니 모리슨은 “나는 (노벨문학상을) 대표성을 띤 것으로 여겼다. 나는 ‘미국인(American)’임을 체감했다. 나는 ‘오하이오주의 사람(Ohioan)’임을 체감했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검게 느껴졌다. 나는 그 어떤 때 보다 크게 ‘여성’임을 느꼈다.”라고 밝힐 만큼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정체성에 관한 생각이 확고했다.

이런 토니 모리슨을 찬미하는 이들은 동료 작가, 대학생, 노동자부터 오바마 전 대통령과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셀 수없이 많았다. 수많은 독자가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억압받는 현실을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던 토니 모리슨의 행보는 비단 ‘흑인’과 ‘여성’뿐 아니라 일상 속 차별받는 다수 독자에게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은 세상에 남아 어두운 과거를 조명하는 동시에 많은 이들을 위로할 것이다. 

한편, 토니 모리슨은 짧은 투병기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의 가족들은 “토니 모리슨은 지난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원숙한 작가로서 그녀는 그 누구의 글이든 소중히 대했으며 열렬히 글을 읽었다.”라고 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