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낭독회 열어...
최영미 시인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낭독회 열어...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8.1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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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조은이책방에서 최영미 시인의 낭송회가 있었다. 이번 낭송회는 최영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판 기념을 겸했다. 이 시집은 지난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괴물’을 발표하고 1년 6개월만에 출간됐다. 그리고 6년만에 나온 새 시집이기도 하다.  

최영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은 모두 4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최영미 시인은 시집을 낼 때마다 ‘마지막 시집이다’라고 생각할 만큼 공을 들여왔는데, 이번 시집 역시 자신을 모두 쏟아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는 최영미 시인이 “등단 소감” 같은 20여 년 전에 쓴 시와 “괴물” 같이 미투 주제로 쓴 시들, 시집 출간을 준비하며 쓴 시를 총망라했다. 

이번 시집은 최영미 시인이 출판사를 차려 직접 낸 시집이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6월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시집을 내고 싶어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답이 없었다며, 한국 문학 출판사에서 자신의 시집을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느껴 자가 출판을 하게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고은 시인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자율실천문인협의회의 창간 멤버이자 대표 간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문단 내 고은 시인을 지지 세력이 두터웠으며, 한국의 대표적 문학 출판사들은 이러한 고은의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출간하기 어려워한 것이다.  

최 시인은 이날 낭독회에서 출판사 대표로서 출판사 로고를 직접 제작하고 책 표지를 고른 이야기를 했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의 책 표지는 제임스 휘슬러라는 화가가 20대 후반에 그린 ‘야상곡’이라는 그림이다. 제임스 휘슬러는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제임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최영미 시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예술가라는 점에서 자신과 제임스 휘슬러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또 제임스 휘슬러가 평론가와 재판을 하며 힘들어한 경험이 있었다며, 자신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제임스 휘슬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 ‘야상곡’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 ‘야상곡’

최영미 시인은 제임스 휘슬러가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못한 점을 공통점으로 여기고, 자가 출판을 해야 할 만큼 문단 내에서는 외로운 상황이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시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날 낭독회는 보통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다른 낭독회들과는 달랐다. 최영미 시인만이 낭독을 한 것이 아니라 낭독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최영미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인, 그리고 다른 독자들과 함께 감상을 나눈 것이다.  

최영미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참가자
최영미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참가자

한 참가자는 최영미 시인의 시집 “도착하지 않는 삶”에 실린 ‘내집’을 낭독했다. “도착하지 않은 삶”은 2009년 발간된 시집이다. 시를 낭독한 이는 오래전에 이 시를 읽었지만, 이 시가 아직도 자기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다른 참가자는 이번에 출간된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담긴 ‘간병 일기’를 읽었다.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 
내가 모르는 똥은 더러워, 

 

(중략) 

 

엄마- 힘 좀 줘 봐 
안 나온다 
그래도 1분만 더 앉아 있어

 

1분을 못 참고 일어나 워커를 잡은 당신에게 기저귀를 채워주려는데 가래떡처럼 뽑혀 나오는, 내가 모르는 어미의 몸을 돌아다니다 세상에 나온 푸르스름한 덩어리를 내 손으로 받으며 출렁이는......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이여. 

 

-'간병 일기' 일부

시를 낭독하던 참가자는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어왔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갔다.  

최영미 시인의 대표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낭독한 참가자도 있었다. 이 참가자는 낭독 후, 이 시를 쓴 배경을 묻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은 이 시가 본인의 대표작이 돼버렸지만, 시인으로서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리 잘 쓴 시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시는 자신이 33살 때쯤 모임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모임에 갔을 때의 풍경들이 생각나 쓴 시라고 말했다. 신발이 어지럽혀져 있고, 어색하고, 얼굴이 달라진 친구들,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80년대의 뒷모습이랄까, 돈 계산 할 때의 쭈뼛하는 모습들을 떠올라 단숨에 시를 썼다는 사실을 말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낭독회를 진행하는 최영미 시인
낭독회를 진행하는 최영미 시인

이날 최영미 시인은 1993년에 쓰고 이번 시집에 실린 ‘등단 소감’을 낭독했다.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멀쩡한 종이를 더럽혀야 하는 

 

(중략) 

 

내가 정말 여,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등단소감' 일부

이 시가 쓰인 1993년은 최 시인이 데뷔한 직후이다. 최 시인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자, 미투 운동에 편승하려 했다는 비난이 있어왔지만, 최영미 시인은 일찍이 문단 내 부조리와 성폭력을 시로 폭로하며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서 최영미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한 페이지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긴 시집을 읽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낭독회를 마쳤으나, 행사 후에도 최 시인은 독자들과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인회를 진행했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현재 고은 시인과 법정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성추행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최영미 시인이 승소했고, 2차 항소심이 8월 말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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